요즘 월드컵 열기로 지구촌이 뜨겁다. 그런데 예전의 월드컵과 조금 다른 점이 발견된다. 경기를 보고 있으면 중국을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름 아닌 광고를 통해서다.
남은 경기 시간이 표시되는 화면에는 중국의 가전기기 업체 하이센스(Hisense·海信) 로고가 붙어 다닌다. 경기장을 뛰고 있는 선수들 뒤편의 LED 광고판에도 완다(Wanda), 비보(Vivo), 멍니우(蒙牛) 등 중국 기업들로 장식되어 있다.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중국 스폰서 기업이 태양광 패널 업체인 잉리(英利) 한 곳에 불과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월드컵에서 중국 기업의 참여가 더욱 돋보인다.
한편, 일본의 고도(古都)인 교토에 살던 당시,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듣는 농담이 생각난다. 일본이 보고 싶어서 여기에 왔는데, 정작 중국 사람들을 더 많이 보는 것 같다는 푸념 섞인 농담이었다. 그러고 보니, 버스를 타고 있는 순간에도,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도 언제나 중국어가 귓가에 끊이지 않았었던 것 같다.
작년에는 학회 참석차 지구 남반구의 먼 나라 뉴질랜드에 다녀왔다. 그런데 공항을 비롯한 많은 공공장소의 안내판이 영어와 중국어, 두 개의 언어로만 되어 있던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영어 국가임에도 영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서도 도심에서 중국어로 쇼핑도 하고, 밥도 먹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얼마 전에는 필리핀 세부에 2개월 정도 체류할 일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중국과 맞닥뜨려야 했다. 예를 들어, 세부 시티는 필리핀에서 2~3번째로 큰 대도시이자 관광도시인 만큼 많은 쇼핑몰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들 거대 쇼핑몰들의 오너들이 대부분 중국계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 중국을 가지 않더라도 세계 어느 곳을 가든 중국을 만날 수 있는, 아니 만나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비단 경제 영역뿐만이 아니라, 정치와 외교, 군사, 과학, 스포츠 등 다방면에서 중국은 이미 세계 곳곳에 있다. 과거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그리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세계 패권이 옮겨가던 시기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들이 벌어졌는지 궁금해진다.
시진핑 체제, 새로운 30년의 시작?
우리는 지금 세계 질서의 중대한 변화 중에 살고 있다. 미국이 갖고 있는 패권을 중국이 넘겨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많지만, 적어도 중국이 세계적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세계 질서의 변화를 가져오는 중국의 사회 내부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 걸까?
자본주의 시장경제에는 경기변동(景氣變動), 또는 경기순환(景氣循環)이라는 개념이 있다. 생산이나 소비와 같은 경제활동이 활발한 호경기(好景氣)와 그렇지 못한 불경기(不景氣)가 주기적으로 번갈아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크게 3가지의 경기 파동(波動)이 있는데, 키친 파동(Kitchin wave)은 40개월의 주기를 가진 단기파동으로 이자율의 변화에 따른 화폐량의 증감(增減)이나 재고투자의 변동에 따른 재고순환 등이 발생한다.
그리고 쥐글라르 파동(Juglar wave)은 6~10년을 주기로 하는 경기변동의 주(主)순환으로, 생산량·소비량·물가·고용의 변동 등이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콘드라티예프 파동(Kondratiev wave)은 평균 50∼60년을 주기로 하는 장기적인 파동, 즉 장기순환을 말한다. 중국 사회의 내부 변화를 이러한 주기(週期)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먼저, 장쩌민(江澤民) 체제 이후 10년 단위로 최고 지도자가 교체되면서 발생하는 변화를 단기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에 따라 3개 대표이론, 과학발전관, 중국몽 등 새로운 정치 구호가 등장하고, 이 구호 밑에 일정한 정책 변화가 발생해 왔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약 30년 단위의 중기 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과 2012년의 시진핑(習近平) 체제 출범 전후가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한 후, 덩샤오핑(鄧小平)을 중심으로 한 중국은 사상해방과 실사구시라는 구호 아래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했고, 그 결과 중국에는 엄청난 변화가 발생했다. '중국 특색'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주의 정치체제와 시장경제 시스템이 혼재된 상황에서 눈부신 경제 성장을 구가해 왔다.
그리고 개혁개방으로부터 30여 년이 경과한 지금, 시진핑 체제의 출범과 함께 중국에는 또 다시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샤오캉(小康)으로 불리는 중산층 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고, 수출 중심의 성장 방식에서 내수 중심의 성장으로 경제 성장의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또한 성장 위주에서 삶의 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의식 전환이 이뤄지고 있고, 유사 이래 찾아보기 힘든 부정부패와의 전쟁이 전개되고 있기도 하다. 밖으로는 '일대일로'의 깃발 아래, 중국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이 전개되고 있다. 30여 년 전의 개혁개방에 견줄 만한 중대한 변화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현대화'에 대한 기대와 걱정
그렇다면, 30년 후에는 중국이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해진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대략 30년 후가 되는 2035년은 중국이 선포한 두 번째 백 년의 1단계 종료 시점과 일치한다.
중국은 중국공산당 창당 백 년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백 년을 두 개의 백 년으로 부르며 장대한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서 두 번째 백 년이 되는 2050년까지를 두 개의 시기로 나누었는데, 첫 번째 시기를 2035년까지로 설정하고 "사회주의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한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기를 2035년부터 2050년경까지로 설정하고, 중국을 "부강, 민주, 문명, 조화의 아름다운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주의 현대화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향후 30년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 빈부 격차를 줄이고, 삶의 질을 중시하며, 법치(法治)를 통해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30년 후의 밝은 중국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
반면, 이를 구실로 권력이 극소수에게 집중되고 있고, 군사력 강화가 정당화되고 있으며, 배타적 중화주의가 꿈틀대고 있는 모습에서는 역사가 후퇴할까 하는 우려도 든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의 경기 변동은 호경기와 불경기가 반복되는 호불호(好不好)의 순환이다. 10년 주기가 됐든, 30년 주기가 됐든 중국 사회의 내부 변화가 부디 호불호(好不好)의 순환이 아닌, 발전만이 이어지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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