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전공과목 교수였고 학생인 내가 그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 좋은 인상과 태도가 성적으로 이어질 것이었고, 성적은 곧 취업의 문제, 내가 미래에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다. 하교 길이 겹쳐 몇 번의 동행을 하며 대화를 했던 것이 그에게는 다른 의미로 전달되었던 것 같다. 그는 자주 어깨를 두드리거나 굳이 손을 잡거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등을 만졌다.
불편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다. 교수라는 상대를 적으로 돌려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학과에 돌게 될 소문이 두려웠고, 피해를 증명하라 강요할 다른 교수들이 무서웠다. 근거 없는 억측에, 각종 소문이 덧붙여진 젊은 여성으로 소비될 게 뻔했다.
이후 학교생활을 상상해보면 더욱 끔찍했는데, 적어도 3년 이상을 더 보내야 할 대학이란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는 내 경험을 축소했고 사소한 일로 규정했다. 다행히 교수는 다른 사건으로 학교를 떠나게 되었지만 돌이켜보면 해임되기 전까지 그와 함께했던 모든 수업, 면담, 학과 소모임, 술자리가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었다. 스스로의 행동을 검열하며 최대한 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쉽게 말하지 못했던 진실은 강력했다. 2018년 한국의 미투 운동은 수많은 생존자들이 "성폭력의 경험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왜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것인가"라 발화하며 전 사회로 퍼져나갔다. 성폭력 생존자들은 오랜 시간 꾹꾹 눌려왔던 분노들을 터뜨렸다.
성폭력 폭로의 불길은 대학가로도 번져, 동덕여대, 서울대, 성균관대, 중앙대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발을 이끌어냈다. "나도 겪었다"를 넘어 "함께 하겠다"는 위드유의 외침은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 "가해자 교수 파면"이라는 공동요구를 만들어나갔다.
대학 구성원들의 요구에 학교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교수의 권력은 그만큼 대학 내 절대적인 것이었으며, 노골적인 '힘'의 작동 원리에 의해 학생들의 목소리는 묵살되었다. 대학은 해당 교수에게 정직 몇 개월, 권고 등의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구성원들의 분노를 잠재우려했다. 또 성폭력을 조사하고 징계하는 과정에서 정교수가 아닌 타 구성원들의 참여는 철저히 배재되면서, 대학 구성원이지만 대학 운영에는 절대로 참여할 수 없는 구성원들간의 기울어진 '권력지도'를 여실히 확인시켜줬다.
여전히 대학은 가해교수가 생존자를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해도, 몇 개월 쉬고 다시 교권을 잡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공간이다.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더라도 알아서 피하지 못했음을 책망할 공동체이다.
단지 우리가 원했던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대학이, 사회가 자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부정하면서까지 명백한 폭력의 피해에 대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알아서 잘 참고 살아가라는 무책임한 답을 내놓았던 공동체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였다.
미투 이후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기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를 벼랑 끝에 내몰며 "침묵" 혹은 "폭로"의 양분된 선택지를 고르게 하지 않기 위해 대학은, 사회는, 세상은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대학이 교육의 장이며, 그 교육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정의의 실현이라고 배웠다. 단지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배움이 오롯이 실현되는 대학과 사회일 뿐이다.
(2018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미투' 폭로가 대학 내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학 내에서 교수와 학생이라는 '기울어진 권력 관계'에 기반한 수많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지만, 당사자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용기를 낸 학생들의 '미투' 폭로가 쏟아지고 있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들은 가해 사실에 대해 철저히 부인하고 있고 동료 교수들로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솜방망이 처벌'로 면죄부가 주어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학생들은 고발합니다. 프레시안은 대학 내 '미투' 사건에 대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연속 기고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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