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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서 탕진한 50억 1개월 만에 되찾은 ‘집념’의 재일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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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서 탕진한 50억 1개월 만에 되찾은 ‘집념’의 재일교포

[홍춘봉 기자의 카지노 이야기] (51) 재일교포 파친코 갑부 카지노 중독으로 수천억 탕진

1980년 9월 말과 10월 초, 불과 10여 일 사이에 서울 워커힐 카지노에서 50억 원이라는 거액을 탕진하고 일본에 돌아온 장재국(가명)은 속이 쓰렸다.

삿포로 자신의 파친코 영업장에서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그는 본전을 찾기 위해 다시 워커힐 카지노를 찾기로 했다.

그는 워커힐에서 패인을 분석한 결과 무모한 베팅, 승부욕에 대한 강한 집념, 본전을 찾기 위한 마구잡이 식 베팅 등이 문제라는 점을 나름 깨달았다.


▲일본 삿포로 야경. ⓒ프레시안

성격도 호탕했던 그는 베팅에서도 최고 한도액의 베팅을 즐겼기 때문에 탕진하는 액수와 시간도 빨랐다.

장씨는 “그래, 지난번에는 워커힐이 내 돈 50억 원을 따먹었지만 카지노를 처음 경험 하느라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 확실한 패에 베팅을 하는 등 치고 빠지기를 해야 한다. 또한 무리하게 밤샘 베팅을 해서도 안 되고 하루에 6시간 이내 베팅을 해야 한다. 내가 어렵게 번 50억 원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다.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패인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새로운 전략을 구상한 그는 귀국한 지 1개월 만인 11월 초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도쿄지사를 찾아가 게임머니 10억 원을 예치했다.

그날로 김포공항을 통해 서울 워커힐에 다시 입장한 그에게 파라다이스는 최고의 VIP 고객에게 걸맞게 호텔 스위트룸을 무료로 제공했다.

먼저 워커힐 VIP룸에서 1억 원의 칩을 받아 든 그는 바카라 테이블에서 차분하게 게임의 흐름을 읽다가 베팅을 시작하였다.

처음 1000만 원 베팅, ‘윈’, 다음에는 2000만 원 베팅, 다시 ‘윈’, 이어 4000만 원 베팅, ‘윈’, 이번에는 8000만 원 베팅, 또 ‘윈’.

승률이 80%를 넘는 수준에 달했고 불과 3일 만에 50억 원을 따서 본전을 찾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과감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돈을 몇 억 더 따려고 하면 반드시 잃기 때문에 50억 원이 채워진 다음에 베팅을 멈췄다. 승부욕이 강한 탓에 베팅도 시원시원하게 했다. 이런 베팅에다가 운도 따라 주어서 이틀 만에 50억 원을 딴 것이다.”

▲1970년대 워커힐 카지노 영업장. ⓒ파라다이스

그러나 워커힐은 장씨가 딴 돈 50억 원을 지급하지 않고 현금 보관증을 써 줄테니 도쿄지사에서 현금을 찾아가라고 VIP담당 임원이 정중하게 안내했다.

“1억 원 이상 큰돈은 일본 도쿄의 지사에서 현금 보관증으로 찾을 수 있으니 저희가 써준 보관증은 수표와 마찬가지니 그렇게 하십시오.”

“좋소. 나도 도쿄지사에서 10억 원의 게임머니를 예치했으니 도쿄지사에서 찾겠소.”

불과 3일 만에 50억 원의 돈을 딴 그는 의기양양하게 워커힐을 뒤로 하고 김포공항을 거쳐 곧장 도쿄 신주쿠에 있는 파라다이스 지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도쿄지사의 파라다이스 직원은 엉뚱한 변명을 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가진 현금이 부족해서 1억 원만 현금으로 드릴 수가 있으니 나중에 현금이 들어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때 다시 찾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는 황당했지만 돈이 없다는데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회고.

“파라다이스가 50억 원 이라는 거액을 바로 내주면 VIP고객을 잃게 되고 50억 원의 돈도 손실을 입게 되기 때문에 다시 워커힐 카지노로 발길을 돌리게 하려고 그런 꼼수를 쓴 것인데 나는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따졌으면 곧장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공손하게 머리 숙이는 직원들의 말만 듣고 발길을 돌린 것이 잘못이었지. 그 때문에 다시 워커힐을 자주 찾게 되었고 2000억 원이 넘는 돈을 카지노에 탕진하는 계기가 되고 만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파라다이스에서 받지 못한 50억 원 때문에 그는 생각할수록 괘씸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돈에 궁색한 사람도 아니고 파라다이스 도쿄지사에 가서 돈을 달라고 협박을 하거나 애걸복걸할 처지도 아니었다.

▲김포공항. ⓒ프레시안

파라다이스는 장재국 사장에게 50억 원의 카지노 칩이 있으니 카지노에 와서 게임을 하도록 덫을 놓은 셈이고 그는 카지노 측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었다.

얼마 후 다시 그는 워커힐을 찾았고, 카지노에 방문하는 횟수만큼 그의 재산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카지노와 인연을 맺은 지 6년째가 되던 1985년, 그의 가정에도 불운의 그림자가 찾아왔으니 바로 사랑하는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슬하에 3남매를 둔 그의 부인은 45세의 한창 나이에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고 이 때문에 한동안 카지노 출입을 끊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그는 카지노에서 500억 원 이상을 탕진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도박중독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당시는 삿포로와 김포공항 사이에 항공편이 개설되지 않은 상황이라서 삿포로~나리타공항을 통해 김포공항으로 입국해야 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면 워커힐에서 보내준 리무진을 타고 그는 곧장 워커힐로 직행했다.

그러다가 워커힐 판촉부에 근무하는 상냥하고 어여쁜 아가씨에게 반하고 말았다.

“첫 부인이 자살한 뒤 마음이 울적해서 카지노를 더 자주 출입하였다. 당시 워커힐 판촉부에 근무하는 여직원 하나가 일어와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면서도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매우 착했다. 처음에는 업무적으로 만났지만 어느 날부터 그 여직원에게 마음이 빼앗겼다.

40대의 나이에도 불타는 열정이 솟구쳤고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또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워커힐에 올 때마다 고급 화장품과 스카프 가방 등 그녀의 마음에 드는 선물을 도쿄의 백화점과 공항에서 구매해 선물공세를 펼쳤다. 보통 한 번에 수백만 원이 넘는 값비싼 명품이었다.

첫 번째 부인과는 그처럼 뜨거운 사랑을 나무지 못해서였는지 아니면 꼭 저 여성과 결혼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꿈틀대면서 10대처럼 로맨스를 진행했다. 당시 그녀는 나보다 13세나 어린 나이었지만 선물 공세와 적극적인 러브콜로 마음이 흔들렸고 이듬해 봄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여성 때문에 워커힐을 더 뻔질나게 출입한 것도 사실이었다.”

1986년 3월 결혼식을 올리고 재혼에는 성공했지만 그는 당시 워커힐에 드나들며 날린 재산이 1000억 원 수준에 달하였다.


▲일본 파친코. ⓒ프레시안

당시 그는 은행 빚을 갚기 위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는 5층 빌딩의 파친코 영업장을 처분해야 했다. 그래도 그의 삿포로 대저택을 비롯해 규모가 작지만 4곳의 파친코 영업장은 매년 백억 원대의 돈을 벌어주고 있었다.

재혼한 부인을 삿포로 대저택에서 살림을 하도록 하자 한동안 매우 행복한 신혼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카지노에 100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탕진한 탓에 신혼의 달콤함이 1년도 되기 전에 ‘카지노 귀신’이 그를 다시 카지노로 이끌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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