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는 대한민국 땅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까?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12월 '사형제 모라토리엄(중단)' 선언을 추진한다. 이어 사형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하는 절차를 밟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TV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가 '사형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저는 사형제도를 반대한다"고 답한 바 있다. 대선 당시 사형제 폐지 자체를 공약으로 내놓진 않았지만 '사형제 폐지를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다소 전향적인 약속을 내놓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인태 전 의원 등이 발의한 사형제 폐지 법안에 서명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만약 문재인 정부에서 실제 사형제 폐지가 실현된다면 근대 이래로 대한민국에 존재해왔던 사형제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 70주년을 맞아 문 대통령의 사형제 폐지 공식 선언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18일 밝혔다.
심상돈 인권위 정책교육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12월 인권위가 6년 만에 대통령에게 특별보고를 한 자리에서 나온 핵심 주제 중 하나가 사형제 폐지였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폐지에 관해 긍정적으로 답변하셨다"며 "현재 주무 부처인 법무부와 실무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국가인권위는 지난 2005년 4월 국회의장에게 사형제도 폐지 관련 의견을 표명했으며, 2009년 7월에는 헌법재판소에 사형제도 폐지 의견을 제출하는 등 사형제 폐지가 헌법과 국제인권규범, 국제적 흐름에 부합한다는 의견이다.
현재 사형 확정판결을 선고받고 집행을 대기 중인 사형수는 유영철, 강호순 씨 등 61명(군인 4명 포함)이다. 여중생 딸 친구를 유인·추행한 뒤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해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이영학 씨의 사형 선고가 확정되면, 62번째 사형수가 된다.
한국은 1997년 12월 이후 현재까지 약 2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다. 하지만 사형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과 같은 강력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혼선이 거듭됐다.
그러나 사형제 폐지는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사형제도는 독재정권의 무자비한 통치의 상징이었다. 특히 민청학련 사건 때 박정희 정권의 사법부는 사형 확정 18시간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이는 아직까지 '사법 살인'으로 불리며 한국 현대사의 암흑기의 상징처럼 기록돼 왔다. 전두환 정권 때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내란 음모로 살인 선고를 받은 바 있다.
한국에서 사형제 폐지 화두가 엄혹했던 한 세대를 정리하고 가는 의미를 갖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그간 사형제 폐지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7일 청와대에서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에게 인권위 특별 보고를 받고 "사형제 폐지나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같은 사안의 경우 국제 인권원칙에 따른 기준과 대안을 제시하면 좋겠다"고 지시했다.
또한 올해 초에 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는 '사형'이라는 단어가 빠졌다. 사실상 사형제 폐지 개헌안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됐다.
인권위는 오는 9월 사형제도 폐지 관련 토론회를 열고, 10월까지 6개월간 사형제 폐지 및 대체 형벌에 관한 실태조사를 할 계획이다.
심 국장은 "지금까지 사형제 관련 실태조사가 단순히 찬반 의견을 물었다면, 이번 실태조사에서는 석방 없는 종신제 등 대안에 대한 찬반까지 물을 계획"이라며 "이렇게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하면 대답 역시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형제 폐지 어떻게?
사형제 폐지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국회에서 사형제 폐지 법안 통과, 둘째,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위헌 판결, 그리고 사형제 폐지 국제 조약 가입니다.
관련해 심 국장은 "'사형폐지를 위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선택의정서(이하 의정서)' 가입도 검토할 계획"이라며 "이 의정서에 가입하면 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하는 게 된다"고 덧붙였다.
사형의 전면적 폐지를 담고 있는 이 의정서는 1989년 12월 15일 국제연합 제44회 총회에서 채택, 1991년 7월 11일 발효된 국제 조약이다. 이 조약에 한국이 가입하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기 때문에 사형제도 자체가 폐지되는 효과를 낳는다.
그간 국회에서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 받았던 유인태 전 의원 등이 사형제 폐지 법안을 지속적으로 내 왔었다. 그러나 국회는 '국민 감정' 등을 핑계로 사형제 폐지법안 처리를 계속해서 미뤄왔다. 만약 의정서에 가입하고 이를 국회가 비준하면 별도 입법 절차 없이 사형제는 폐지된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헌법에는 '사형'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다. 110조 4항에는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군인·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에 관한 죄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돼 있다.
헌법에 포함된 '사형'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간 헌법재판소는 사형제 폐지가 불가하다는 판단을 내려왔다는 해석이 법조계에서는 지배적이다.
이같은 배경 때문에 국가인권위는 국제 조약 가입을 추진하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자유한국당 등 '사형제 포퓰리즘'에 경도된 보수 야당의 반발은 넘어야 할 산이다. 사형제 폐지에 부정적인 법무부 등 정부 내 이견 조율도 과제로 꼽힌다. 이같은 현실적 장애물 때문에 문 대통령의 '사형 모라토리엄' 선언이 현 정부에서 가능한 최대 한도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사형제 모라토리엄 선언을 넘어, 만약 사형제 자체가 폐지된다면 문재인 정부는 또 한번의 '역대급' 기록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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