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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생태의 보고 남이섬에서 24절기를 만나다] 하지(夏至)…단비에도 꽃이 무사히 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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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생태의 보고 남이섬에서 24절기를 만나다] 하지(夏至)…단비에도 꽃이 무사히 지기를

일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비 내린 후 청량감 감도는 강변산책로 인기

남이섬 탐조여행 ‘딱따구리 학교’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새들에게는 커다란 둥지

한창 수분해야 할 때 비가 자주 내리면 꽃은 달갑지 않을 것이다. 낙화가 아름다운 것은 자기 할 일을 다 마쳤을 때인데 비에 젖은 채 떨어지는 저 꽃들은 미련이 없을까. <김선미 「나무, 섬으로 가다」

밤사이 많은 비가 내렸다. 숲은 흠뻑 젖었고 길에 물웅덩이가 파였다. 대기는 청신하다. 때 이른 더위로 늘어져 있던 풀과 나무들이 기분 좋은 포만감으로 방긋방긋 웃는 것 같다.

햇살이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물방울 위에서 빛났다. 소나무는 가늘고 긴 바늘잎마다 영롱한 구슬을 달았고 깃털 같은 낙우송 이파리는 물방울 그물을 짜놓은 것 같다.


ⓒ남이섬

섬 곳곳은 밤꽃이 절정이다. 6월은 밤꽃 향기에 취해 섬도 울렁거리는 것 같다. 밤나무는 언제부터 남이섬에 살았을까.

다산 정약용이 “쓸쓸한 천 그루 밤나무 섬”이라고 노래할 때도, 그보다 앞선 시기에도 섬에는 밤나무가 무성했다. 조선 태종이 강변에 밤나무를 심도록 법으로 정했을 정도라니 북한강변 밤나무 숲의 역사는 그만큼 오래되었을 것이다.

남이섬에는 유독 새가 많다. 지형적으로 강으로 둘러싸인 섬이라 먹이가 풍부하면서도, 3만 그루에 달하는 나무가 다양한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까막딱따구리, 원앙, 흰눈썹황금새, 노랑할미새, 호반새, 하늘다람쥐, 파랑새, 꾀꼬리 등 40여종의 새가 남이섬의 하늘을 지키고 있다.

남이섬은 섬을 찾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실어주고, 자연과 더욱 친숙해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새가 많이 찾아오고, 활동하기 좋은 5, 6, 7월에 탐조체험을 진행한다.

생태전문가를 초빙해 새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도 들을 수 있고, 새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망원경과 같은 장비도 제공한다.

나무마다 매달려 옹기종기 살아가는 새들을 관찰하고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 의자에 앉아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발밑으로 비에 쓸려 내려온 꽃 무더기가 보였다.

어디서 떨어졌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탁자 옆 큰 나무에 작고 노르스름한 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기다란 꽃대에 매달려 땅을 향해 살포시 고개를 숙인 것이 꼭 수줍어하는 모습이다.

아직은 여름이 오려면 멀었나보다. 시원한 강바람을 타고 은은하고 달콤한 향기가 날아왔다. 어지러운 밤꽃 향기와 비 온 뒤 물비린내만 맡고 있다가 모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향이었다. 비에 젖은 꽃향기가 나무 아래로 낮게 또 진하게 퍼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강변길에는 젊은 부부가 우산을 쓴 채 휠체어를 밀고 갔다. 비옷으로 다리까지 꽁꽁 싸맨 노인이 덜컹거리는 의자에 앉아 비 내리는 남이섬을 유람하고 있었다.

맑은 날과 다른 풍경은 자전거를 탄 사람이 없다는 것뿐이다. 오늘 하루 섬으로 들어오는 배를 탄 이상, 비가 온다고 즐기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들에게 빗소리는 내일은 없다고,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라는 속삭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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