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지진파가 보수정당을 덮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지난해 5월 대선을 거치며 보수의 장기적 위기가 예고됐다. 13개월이 지난 뒤에 몰려온 2차 쓰나미는 보수 지방권력을 초토화시켰다.
'보수 적통'을 자랑하던 자유한국당은 'TK(대구경북) 자민련'으로 전락했다. 17곳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간신히 두 곳을 사수했다. 기초단체장 선거도 대패다. 12곳 재보궐선거에서도 경북 김천에서 체면치레하면 다행이다. 제1야당에게 유권자들이 사망 선고와 다름없는 채찍을 든 것이다.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전원 사퇴가 불가피해 보인다.
바른미래당은 더 참담하게 주저앉았다. 군소정당 수준의 성적표를 받았다. 광역단체장, 재보선, 기초단체장 당선자 수 '0'이다. 안철수 후보의 이름값은 지난해 대선에 이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3등으로 밀려났다. '합리적 보수'를 내걸고 새누리당에서 분가한 이들이 주축이 된 신생 보수정당에도 유권자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은 결과다.
선거 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보수의 참패는 안팎에서 징조를 보였다. 한국당에선 홍준표 대표 책임론이 선거 전부터 거셌다. 그의 리더십이 분란을 키운 건 부인할 수 없다. 거친 말투로 막말 파문이 끊이지 않았다. 공천 과정에선 당내 반대파를 가차 없이 쳐내 사당화 논란도 일었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그의 지원 유세를 표 떨어진다고 거부했다.
박근혜 탄핵안을 이끌었던 바른정당은 자강에 실패했다. 일부가 다시 한국당으로 귀환하더니 선거를 넉 달 앞둔 지난 2월에는 국민의당을 두동강 낸 안철수계와 뭉쳐 바른미래당으로 옷만 갈아입었다. 바른당에서도 내분이 끊이지 않았다. 공천을 놓고 유승민 대표와 안철수 전 의원이 대놓고 티격태격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홍준표 대표, 안철수 전 의원을 보며 혀를 찼다. 이들의 정치 노선이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말과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진 탓이다.
지방선거 패배가 보수 분열 때문이라는 원인 진단이 내려지면, 보수의 위기 극복 방편으로 정계개편이 먼저 부각된다. 2020년 총선까지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내고 문재인 정부의 하락기를 기다리면 해볼만하다는 계산이 바탕이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향한 만만치 않은 단일화 압력은 예고편이다.
하지만 이는 기형적인 양당제 회귀 효과를 낳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가뜩이나 한국당이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기회를 걷어차 다당제가 들어설 제도적 기반을 틀어막아놨다. 이런 환경에선 리더십도, 제도적 뒷받침도 부족한 바른미래당이 의미 있는 제3당으로 살아남기 쉽지 않다.
자유한국당 역시 양당제의 수혜를 누릴지는 불확실하다. 변화의 자극이 사라지면 관성에 안주한다. 보수정부 9년 실정으로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간 상황에서도 한국당은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를 '반공 보수' 얼굴로 치렀다. 홍준표 대표는 물론이고 지방선거의 기둥이 되는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 입에서 나온 색깔론은 셀 수도 없다.
남북, 북미 관계가 가파르게 변화할 때에도 수레 앞 사마귀 같은 기개만 발휘했다. 지난 2월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남을 저지하겠다며 한국당 의원들이 통일대교에 드러누운 장면은 상징적이다. 정당과 사회운동의 경계가 무색했다.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국전쟁 때와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보수의 태극기부대화를 부추기며, 차라리 지방선거에서 전멸하고 다음 총선까지 재건을 모색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하는 보수 논객도 있다. 극우 진지전을 지향하는 보수 재건, 소수화가 뻔하다. 보수정치를 넘어 보수주의가 문제라는 진단도 나왔다.
지난해 19대 대선이 만든 정치 질서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더욱 강화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대로 가면 보수는 2년 뒤 총선에서 3차 쓰나미를 맞는다. 더불어민주당이 거의 독점적인 위치를 점하고, 쪼그라든 보수당이 맞은편에서 생존을 연명하는 정치 시장으로의 재편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좌우를 뒤집으면, 일본 정치와 모양이 같아진다. 좋은 정치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보수의 몰락을 조롱만 할 수는 없는 이유다. 다행히 2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보수의 뼈를 깎는 각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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