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한명숙호(號)의 당직인선이 연이어 파격적이다. 한명숙 대표는 19일 신경민 전 문화방송 앵커를 대변인에 임명했다. 야권이 오랫동안 영입에 공을 들여왔지만 쉽게 응하지 않았던 신 전 앵커를 한 대표가 데리고 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신경민 전 앵커의 신임 대변인 발탁도 화제지만 더 큰 파격은 임종석 사무총장 임명이었다. 40대의 젊은 정치인에게 당의 핵심 권력을 맞긴 것도 파격이지만 임 사무총장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재판 중이기 때문이다.
한 대표 측은 이를 놓고 "정치검찰 개혁의 의지를 우회적으로 피력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 대표 역시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받아 기소됐으나 연달아 무죄 판결을 받고 있는 만큼 임종석 사무총장의 무죄를 믿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임 사무총장은 이미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물론 유죄가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며, 임 사무총장 본인 역시 "이번 사건은 대표적인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나만 희생양이 됐다. 작은 거리낌이라도 있었다면 총장직을 수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무죄를 주장했다.
한명숙 대표와 마찬가지로 '정치검찰의 희생양'일 뿐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당의 인사, 자금, 조직 등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자리에 비리 연루 의혹이 있는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다.
'결백' 주장하는 '윗선'에게 "책임지는 자세" 요구하던 민주통합당이…
임종석 사무총장 임명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대체 임종석과 최구식, 박희태는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이 세 사람이 연관된 사건에는 모두 아랫 사람이 있다. 임종석 사무총장은 삼화저축은행으로부터 3년 동안 1억400여 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 돈이 임 사무총장의 보좌관 곽 모 씨를 통해 들어갔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최구식 의원(무소속)은 의원실 소속이었던 공모 비서가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을 한 혐의를 받아 구속기소됐다.
지난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고승덕 의원 등에게 돈봉투를 뿌린 혐의를 받고 있는 박희태 국회의장의 사건에도 비서관 등 측근 3명이 연루돼 있다. 박 의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검찰은 이날 박 의장의 비서관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디도스 사건의 경우 검찰 수사에서는 '윗선'이 드러나지 않았다. 박희태 의장의 금품 살포 역시 현재까지 박 의장의 개입에 대해 뚜렷한 물증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민주통합당 등 야당은 "박희태 사퇴 촉구 결의안"을 제출하는 등 이들에게 책임지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아랫 사람이 선관위 홈페이지를 공격하고, 다른 의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돈봉투를 뿌리는 데 윗 사람이 몰랐을리가 없다는 논리다.
이 논리는 임 사무총장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다. 실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이원범)는 지난해 12월 유죄를 선고하며 이 논리를 근거로 사용했다.
당시 재판부는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전 명예회장에게 자금을 제공받고 2~3개월 뒤 임 전 의원이 신 전 회장에게 곽 보좌관을 언급하며 감사인사를 한 점이 인정된다"며 "임 전 의원과 곽 보좌관이 당시 밀접한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점에 비춰 곽 보좌관이 독단적으로 이런 일을 추진했을 것이라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 지난 13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당시 대표 후보에 대한 2심 판결 후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무죄 판결을 받은 한 후보의 곁에 임종석 전 의원이 서 있다. ⓒ연합뉴스 |
"'1심서 유죄' 받은 사람 통해 검찰개혁 의지 피력? 그럼 공천은?"
당 일각에서는 "한 대표가 검찰 수사를 겪으면서 '정치 검찰'에 대한 일종의 강박증이 생겨 임종석 사무총장 임명에 대해 이성적 판단을 못 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 대표 본인의 사건은 뇌물수수 자체를 부인했지만, 임 사무총장의 경우 곽 보좌관이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무조건 '희생양'이라 볼 수 있냐는 비판이다.
특히 공천혁명 등 '쇄신 작업'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당의 사무총장은 오는 4월 총선까지 공천을 책임지게 된다. 그런데 본인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후보자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겠냐는 얘기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금고형 이상 확정 등 비리 연루 인사는 심사 자체에서 배제했다. 개인비리인지 아닌지 여부는 고려되지 않았다. 때문에 "사건의 내용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기계적 적용"이라는 거센 반발도 있었다.
'금고형 이상 배제' 원칙으로 공천을 받지 못했던 대표적인 인사가 박지원 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안희정 현 충남도지사 등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한명숙 후보 선대본부장을 맡은 신계륜 전 의원도 이 기준에 걸려 공천에서 탈락했었다.
논란은 있었지만 당시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은 "희생자, 억울한 사람이 나온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큰 일에는 억울한 사람의 희생을 밟고 가는 것이 우리 역사"라고 강조했었다.
이 기준을 놓고 보면 임 사무총장은 '반발'의 여지조차 없는 '개인비리 연루 혐의자'다. 공천 신청자 가운데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거나 유죄가 확정된 사람을 당이 탈락시킬 명분이 약해지는 것이다.
"제식구 챙기기가 다시 시작됐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 대표가 임 사무총장을 임명한 것을 '검찰 개혁'에 대한 막강한 의지 피력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호의다. 한편에서는 "제식구 챙기기가 시작됐다"는 싸늘한 반응이 나온다.
임 사무총장과 한 대표의 긴밀한 관계 때문이다. 임 사무총장은 한 대표가 지난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을 때도 캠프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지난 전당대회에서도 임 사무총장은 한 대표를 지지했다. 대표적인 '한명숙 사람'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임 사무총장 발탁이 '당의 혁신과 인적쇄신'의 증명이 아니라 '측근 챙기기'의 일환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