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모 건국대학교 교수가 함석헌 선생의 산문 <새로 지음>의 낭독을 마치고 난 뒤에도 청중들의 침묵은 한동안 계속됐다. 함석헌 선생이 이 산문을 처음 발표한 시기는 1973년이지만,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글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여전했다.
함석헌 선생 서거 20주기를 기념해 그가 생전에 발표한 시와 산문을 나누는 '낭독의 밤'이 4일 저녁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본사에서 열렸다. 이날로 벌써 10회째, 지난 2월부터 매달 첫 번째 수요일에 열려온 낭독의 밤의 마지막 자리였다.
▲ 최창모 건국대학교 교수가 함석헌 선생의 산문 <새로 지음>을 낭독하고 있다. ⓒ프레시안 |
이날 낭독자로 나선 최창모 교수는 "<새로 지음>을 처음 접한 것이 1973년 고등학생 때였는데, 30년이 넘게 흘렀어도 함 선생님의 글은 시대를 넘어서는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것 같다"며 "그 30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쌓았을까"라고 말을 이었다.
"역사학자로 살아오면서, 역사는 힘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역사란 마치 아이들이 바닷가에 모래로 탑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함 선생님의 글은 큰 위안이 된다. 모래탑이 무너지면 다시 쌓는 사람들, 그 민초들이 역사의 주체로 스스로를 인식할 때,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느껴진다."
사회를 맡은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거센 바람이 붑니다. 그 바람이 코로 들어오면 생명이요, 그 생명이 우리 속에 살면 빛입니다'라는 <새로 지음>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지금도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 어두웠던 시절 쓰인 이 구절이,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더 큰 희망과 울림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함석헌 선생, '낮은 목소리'로 역사의 진동을 이룬 분"
낭독회는 50여 명의 청중들이 참여한 가운데 2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이어졌다. 조각가 최만린 전 서울대 교수, 방송작가 이인경 씨, 음악가 김영주 씨 등이 낭독자로 참여했고, <역시 씨알밖에 없습니다>, <이별>, <싸우는 생>, <개문만복래>, <모산야우> 등의 작품이 낭독됐다. '고무밴드'를 이끌고 있는 김영주 씨는 통기타 연주를 선보이며 자칫 무거워지기 쉬운 낭독회의 분위기를 밝게 이끌었다.
▲ '고무밴드'의 김영주 씨. ⓒ프레시안 |
이날 참여한 청중들에게 함석헌 선생의 글이 주는 메시지는 각각 다양했다. 용산 참사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진행 중인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단식을 시작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함석헌 선생님이 그리워진다.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용산 참사를 보고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지금 우리 사회에 함 선생님같은 '큰 어른'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9회 낭독의 밤에서 함 선생의 시를 낭독하기도 했던 '광진도서관 친구들'의 여희숙 대표는 "올 때마다 여러 생각이 들지만, 함 선생님의 글에서 항상 느끼는 것은 '낮은 목소리'의 힘이 그 무엇보다 강하고 아름답다는 사실"라고 말했다.
이날 <개문만복래>를 낭독한 조각가 최만린 전 교수는 "오늘은 낭독자로 나섰지만, 나는 소리 없는 흙 속에 마음을 담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함 선생님의 글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도 크지만, 소리 없는 마음의 울림이 더 큰 것 같다"고 평했다. 최 전 교수는 "함 선생님이 마음속에 씨알을 담고 살았듯이, 나도 언젠가 흙속에 함 선생님의 마음을 담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민웅 교수는 "함 선생님은 군사독재 시기, 모두가 거리에서 확성기를 틀 때 낮은 목소리로 누구보다 역사의 큰 진동을 이루셨던 분"이라며 "지금 어느 때보다 마음의 결을 잘 다잡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낮은 목소리라 할지라도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선생의 가르침을 기억하자"며 이날 행사를 마쳤다.
▲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 ⓒ프레시안 |
올해 10차례 낭독회를 주최한 한길사 측은 "함석헌 선생 서거 20주기를 맞이해 함 선생을 알리고, 그의 지혜와 진리를 함께 공유하자는 취지 아래 낭독회를 마련했다"며 "지금 우리가 요구하는 시대적 바람은 무엇인지, 혼란과 전환의 시기를 넘어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지 마지막 낭독회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새겨보고자 했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한길사가 마련한 '함석헌 선생 낭독의 밤'은 이날 끝났지만, 오는 12월 5일에는 광진도서관 주최로 또 다른 낭독의 자리가 마련될 예정이다. 10회 동안 사회를 맡아온 김민웅 교수는 "함석헌 선생님을 기억하고 그가 제시한 '씨알의 길'의 의미를 곱씹는 자리가 앞으로 더 많은 곳에서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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