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재판의 '거래'와 '사유화'
최근의 보도에서 확인되는 바처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은 바로 상고법원 설치였다. 그리고 그 유력한 실현방안이 국회에서의 입법이었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법원조직법 등 6개 법안 개정안은 2014년 12월에 19일 전체 국회의원의 과반수를 훨씬 넘는 168명의 서명으로 발의됐다. 당시 필자는 이러한 상고법원 설치 움직임에 반대하는 글을 한 일간지에 기고했다가 징계와 면직 위기에 몰렸었다.
지금 잇따르는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보도에 의하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를 앞세워 각종 재판을 청와대의 '기호'와 '입맛'에 맞춰 진행하는 등 재판과 자신들의 이익을 '거래'하고 갖은 수단방법을 동원해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설치를 강력히 추진했다.
이는 단지 사법 농단의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법과 재판의 '사유화'로서 명백한 '국정 농단'이었다. 또한 스스로 사법부의 존립 근거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나아가 진실로 '국기(國基)'를 문란시킨 범죄적 행위였다.
사법부가 약자적 위치? 스스로를 부인하고 모욕하는 발언
상고법원 반대 기고문 때문에 겪은 필자의 징계 위기 역시 이러한 비정상적 사법부 상황과 결코 무관치 않으리라 생각된다. 국민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과반수의 국회의원들을 '설득'해낼 정도의 막강한 로비력과 영향력을 가진 사법부이기에 그러한 추론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
최근 사법부의 한 책임자는 사법부가 청와대에 대해 '약자적 위치'라고 강변했지만, 그것은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고 스스로의 존재를 욕되게 하는 발언이다.
긴급조치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인 대법원
대법원은 2013년 4월 18일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긴급조치 9호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한 것으로 유신헌법은 물론 현행 헌법에도 위반돼 무효"라고 판시한 바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에 스스로 이 판결을 뒤집었다.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 개개인 권리에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한 것이다. 박정희의 긴급조치 발령에 면죄부를 준 판결로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대법원 스스로 결정한 기존의 판결을 뒤집은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전원합의체의 판결을 일개 소부(小部)가 뒤집은 것이었다. 물론 박정희의 딸 박근혜의 비위를 맞추면서 상고법원 설치라는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고자 함이었다.
한 마디로 법을 사유화하고 제멋대로 농단한 무법천지의 상황이었다. 법규범을 가장 엄정하게 준수해야 할 당사자들이 그것을 가장 훼손시켰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권력과 재판을 '거래'하면서 법규범을 심각하게 왜곡했다. 당연히 원천무효이며, '법왜곡죄'를 신설해 책임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일벌백계와 원상회복이 반드시 이뤄져야
일제 강점기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지만 정작 조국이 독립된 뒤 불우한 삶을 살아야 했다. 지금도 적지 않은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추방'된 결과 매우 곤궁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더구나 긴급조치 관련 재판은 법관 자신들 혹은 그 선배들이 권력에 철저히 '순종'하면서 그들의 비위에 맞춰 피해자들을 양산해낸 것이었다. 그 과오에 대해 반성을 하지 못할망정 또다시 법을 농단하고 왜곡시킨 것은 피해당사자들을 두 번 죽이는 폭거가 아닐 수 없다.
긴급조치 피해 당사자인 필자도 말할 수 없는 분노를 금할 길 없다. 일벌백계 차원에서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사법부 스스로 왜곡시킨 법 적용을 이제라도 원상회복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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