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되살아난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본궤도에 재진입하느냐 여부가 판문점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세기의 회담' 성사 여부를 확정짓기 위한 북미 간 사전 접촉이 본격화되면서다.
협상 창구는 세 갈래다. 북미 관계가 최악일 때도 유일한 연락망으로 남아있던 '뉴욕 채널', 비핵화 등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 조율을 위한 판문점 '통일각 실무회담', 경호와 의전 등을 논의하는 '싱가포르 실무회담'이 한꺼번에 가동된다. 보름 남짓밖에 남지 않은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압축적인 사전 조율 과정이다.
이 가운데 핵심 채널은 29일까지 열리는 판문점 회담이다. 주한 미국대사와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지낸 한국계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가 미국 측 대표다. 2014년 제임스 클래퍼 당시 국가정보국장(DNI)와 함께 방북한 적 있었던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 렌달 슈라이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대표단에 포함됐다.
북한 측에선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최강일 북아메리카 국장대행 등이 나선 것으로 보인다. 최선희 부상은 지난 24일 담화에서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맹비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취소 발표로 이어졌던 계기가 된 인물이다. 최 부상은 미국 측 성김 대사와 6자회담 협상을 하면서 안면이 익숙하다.
이들은 비핵화와 체제 안전 보장 등 핵심 쟁점을 놓고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질 경우 발표하게 될 합의 내용을 놓고도 치열한 수 싸움이 예상된다. 외신들은 "성김 대사와 최선희 부상이 양국 관심사에 대해 정통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개인적 성향까지 잘 파악하고 있다. 실무협상 과정의 줄다리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의식한 듯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면서도 "비핵화에 대해 뜻이 같다 하더라도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로드맵은 양국(북미) 간에 협의가 필요하고 그런 과정이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위한 명시적 약속과 이를 위한 이행 방식에 북한이 동의할지가 일차적 관건이다.
일본 <교도통신>은 28일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은 CVID를 목표로, 최대 20개로 추정되는 핵탄두의 국외 조기 반출을 요구하고 있지만, 북한이 주저하고 있어 합의에 이를지는 미지수라고 보도했다.
이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14일 비핵화를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해 테네시주 오크리지로 가져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해 북한의 반발을 부른 방식과 유사하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 본토를 사정거리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먼저 국외로 반출하는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제안했을 가능성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 비핵화 방식과 관련해 "우리는 즉각적인 비핵화를 원하지만 물리적으로 단계적 방식이 조금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절충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비친 바 있다.
북한이 비핵화의 상응하는 조치로 1순위에 올린 체제 안전 보장 방안에 미국이 어떤 수위로 호응할지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우리 미국 팀이 김정은과 나의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북한에 도착했다"고 판문점 접촉을 공식화하며 "나는 북한이 눈부신 잠재력을 갖고 있고 언젠가 경제적, 재정적으로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고 트위터에 썼다. 민간 투자와 자본 진출, 대외 원조 등을 통해 북한의 번영을 약속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적 보상을 강조하면서도 체제 안전 보장과 관련된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민간 자본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 자체를 북한 체제 안전과 연동하는 듯한 인식이 강하다. 반면 북한은 비핵화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외교적, 군사적 적대시 정책 해소를 얻어내려 한다.
이와 관련해 제임스 클래퍼 전 DNI 국장은 27일 CNN, CBS 등 미국 방송에 출연해 북한이 비핵화의 조건으로 미국의 핵우산 제거를 요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 전략자산인) B-1, B-2 또는 B-52를 더 이상 전개하지 않거나 운용 근접 상태에 두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또한 그는 "양측이 공식 외교채널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며 워싱턴과 평양에 각각 '이익대표부'를 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지난 2015년 미국과 쿠바가 정식 수교를 맺기에 앞서 쿠바 수도 아바나에 이익대표부를 설치했던 방식을 제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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