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가 없다. 사돈 남 말 하는 것 같아 듣기 민망할 정도다.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가 발견돼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고 말 한 사람이 조현오 청장이다. 근거가 뭐냐는 질문이 쇄도하는데도 뚜렷한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입 닫은 그다. 그런 그가 '일방적 소설'을 운위하니 어이가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꼬투리 잡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사안은 나눠서 봐야 한다. 그 때 일은 그 때 일이고, 지금 일은 지금 일이다.
▲ 조현오 경찰청장. ⓒ뉴시스 |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한겨레21'의 보도가 조현오 청장의 주장대로 '일방적 소설'이라면 짜증내는 수준에서 끝낼 일이 아니다. 조현오 청장 말대로 법적대응을 하고도 남을 일이다.
한데 어떡하나? '한겨레21'의 보도가 '일방적 소설' 같지가 않다. 조현오 청장 스스로 인정했다. 김효재 정무수석과 두 차례 전화통화를 한 사실은 인정했다. '한겨레21'의 '기초 사실'은 틀리지 않았다.
그럼 남는 문제는 전화통화의 성격. 조현오 청장 주장대로 '단순 보고'였는지, 아니면 '한겨레21'이 제기한 의혹처럼 '압력 행사'였는지가 관심사다.
'한겨레21'은 이와 관련해 시점에 주목했다. 경찰이 7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디도스 공격 연루자들 사이에 1억 원의 돈거래가 있었던 사실, 그리고 청와대 행정관이 사건 연루자들과 술자리를 함께 한 사실을 청와대에 보고한 직후에 김효재 정무수석이 조현오 청장에게 전화를 한 사실에 주목했다. '단순 보고'(경찰 입장) 또는 '사실관계 파악'(청와대 입장) 차원이었다면 경찰과 청와대 치안비서관 사이에서 얼마든지 해결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굳이 김효재 정무수석이 직접 나서서, 그것도 보고 직후에 전화를 건 이유에 주목한 것이다.
물론 달리 볼 여지도 있다. 워낙 큰 사건이었던 만큼 청와대 입장에서 사실관계를 재삼재사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한겨레21'은 또 하나의 사실에 주목했다. 김효재 정무수석이 디도스 사건처리 문제와 관련해 정진영 민정수석과 긴밀히 논의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효재 정무수석이 강 건너 불구경한 게 아니라 스스로 팔 걷어붙이고 대책을 숙의하고 있었던 점에 비춰 조현오 청장에게 사건 처리 방향을 언급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경찰의 9일 수사결과 발표에서 1억 원 돈거래 사실이 누락된 점을 주목한 것이다.
이 또한 달리 볼 여지가 있을지 모른다. 김효재 정무수석이 정진영 민정수석과 디도스 사건 처리 방향을 논의해왔다고 해서 그것이 '압력 행사'의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정황만 갖고 무리하게 의혹을 제기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 될 게 없다. 언론 본연의 사명은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것이다. 의심의 합리성만 갖춰지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건 언론의 사명이자 숙명이다. 구중궁궐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행태를, 수사권을 갖지 않은 언론이 감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기초 사실과 주변 정황에 의거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 감시를 활성화하고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다. '한겨레21'은 이런 언론 본연의 역할에서 일탈하지 않았다.
조현오 청장이 짜증내도 어쩔 수가 없다. 아니, 지금의 짜증은 약과일 수도 있다.
'한겨레21'이 제기한 게 '합리적 의심'이라면 그 파장은 넓고 길 수밖에 없다. 김효재 정무수석마저 등장함으로써 디도스 사건은 사법문제를 넘어 정치문제로 비화됐다. 그래서 민주통합당은 정치적으로 문제 삼을 태세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기로 한 박근혜 의원도 마침 디도스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바라고 있다고 하니 그냥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
재수사를 하고 있는 검찰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그래서 정치권이 추가로 나선다면 조현오 청장이 짜증 낼 일은 속출하게 돼 있다. 국정조사를 받든, 특검 수사를 받든 그건 짜증 나는 일임에 분명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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