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인형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비인형처럼 한국은 물론 외국의 아이들에게까지 사랑 받는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유일하게 닥종이 인형을 만드는 (주)박금숙닥종이인형연구소 한 켠에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수강생들이 한지에 풀을 입히는 소리가 들렸다.
27년째 인형 작가로서 외길만을 걸어온 박금숙 작가. 국내를 넘어 일본과 미국, 유럽 등 닥종이 인형의 세계화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박금숙 닥종이인형 작가를 만나봤다.
◇ 아이 태교 위해 한지공예 관심 갖고 종이접기부터 시작
닥종이인형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따뜻함이 느껴진다.
세파에 찌들린 사람들을 향해 해맑게 웃는 표정은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향수 어린 표정으로 마음속에 스며든다.
닥종이 인형은 닥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인 닥종이를 재료로 한 인형이다. 닥종이 인형을 만드는 데에는 4개월 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려서 완성된 인형이 나오면 ‘아이’라고 칭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일게다.
겉을 깎아가면서 만드는 조각과는 다르게 닥종이 인형은 뼈대를 만든 후 닥종이를 하나 하나 붙이고 말려가면서 작품이 탄생한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박금숙(51) 작가는 처음부터 닥종이인형을 시작한 게 아니다. 결혼 후 아이의 태교를 위해 한지공예를 관심을 갖고 종이접기부터 시작했다.
요즘처럼 자가용이 흔한 시절도 아닌 시절이기에 익산에서 대구까지 버스타고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만 10시간이 넘었다. 그리고 인형 만들기에 미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최옥자 명인께 배우기를 5년여 시간이 흘렀다. 인형을 만들고 있노라면 더없는 행복함이 스며들었다.
삶의 일부로 생각하며 꾸준히 배우며 창작활동까지 이어진 27년여 세월. 그는 어느새 명인 대열에 들어섰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넘친 것일까?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 속내와는 달리 자녀교육에 소홀하지 않나 항상 마음에 걸렸다.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다. 아이가 자기 전에 머리를 묶어주고 대구행 버스를 탔다. 아이가 아침에 머리가 헝클어질까봐 아픈 걸 참고 잠을 잔 것이다. 결국 친정어머니가 이를 알고 꾸중을 했다. 무슨 큰 돈을 벌겠다고 엄마가 돼서 아이까지 버리고 돌아다니냐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으로 자란 아이들과 남편의 묵묵한 응원에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그는 1999년 익산에서 종이문화원을 열었다. 종이접기, 한지그림, 닥종이인형을 비롯해 한지를 잘게 찢어 풀을 먹인 뒤 작품을 만드는 지호공예까지 시도했다.
그러다 최근 닥종이인형으로 '선택과 집중'하기로 결정, 전주한옥마을의 골목에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품질이 우수한 전주한지만으로 모든 작업을 합니다. 칼도 대지 않아요. 매번 작업을 마친 뒤에는 바짝 말려야 합니다. 곰팡이가 피지 않아야 되기 때문이죠. 그만큼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닥종이 인형은 저 자신에게는 물론 아이들 품성에도 좋습니다. 기계를 타지 않으니까요”
가느다란 전선 위에 손수 한지를 덧붙여서 만들게 되는 닥종이 인형은 한 개를 완성하는데 자그마치 4개월의 제작 기간이 소요된다.
단순하게 한지를 덧붙이는 작업이 아니라 여기에 채색을 더하고 인형을 다듬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시간뿐 아니라 손길 하나에 들어가는 정성만 가득 해야만 거둘 수 있는 작품이 된다.
“조각 작품이 흙을 깎아 내는 작업이라면, 닥종이 공예는 한지를 붙여 가는 종합예술이라고 볼 수 있어요.”
박금숙 작가는 인형 하나에 혼을 넣는다는 일념으로 작업에 매진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달 27일부터 6월 6일까지 그리스에서 열리는 페이퍼 문(Paper Moon) 전시회 준비에 분주하다.
국내 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홍콩 등 해외에서도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 및 회원전을 가진 바 있다.
작년까지 15회의 개인전과 300회의 단체전을 통해 닥종이인형의 우수성을 표현해 냈다.
27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닥종이 한지인형 제작에 매진하며 장인의 반열에 올라선 그는 창조경영인 대상, 2015년에는 대한민국 한류대상을 수상한 '슈퍼우먼' 이다.
미국 산타페의 아트페어에 참석, 한지 시연회를 펼쳤을 때 일이다. 국제적인 행사에 한국에서는 3명만이 자격을 얻어 초청됐다. 현지를 방문한 사람들이 한지인형 시연에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수강생과의 정감어린 사연도 있다. 3년전 미국인 남편을 둔 캘리포니아에 사는 이은경씨에게 전화가 왔다.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통해 한지인형을 만드는 박 작가를 알게 됐단다. 제작법을 배우고 싶은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열정에 감동받은 그는 한국에 사는 이씨 부친이 사는 집으로 체험용 인형 재료를 무료로 보내줬다. 체험용 인형을 직접 만들어 본 이 씨는 페이스북과 전화를 통해 박 작가와 끈끈한 사제의 인연을 쌓게 된다.
지난 4월 부친상을 치르기 위해 내한한 이 씨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 5월 초 휴식도 취할 겸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억만리를 날아와 닥종이 한지인형 배우기 체험에 직접 나선 것.
전주 공방에서 매일 최대 5시간씩 2주동안 열정적으로 익혔다. 지난 18일 닥종이 한지인형 한쌍을 완성한 이씨는 감격의 눈시울을 붉혔다. 내년에도 전주 공방을 다시 찾겠다며 미국으로 향했다.
“앞으로 산업적인 분야와 예술적 분야 두 가지 방향을 염두하고 있어요. 예술을 하는 직업은 가난하다는 편견을 깨고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통해 안정된 여건 속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싶어요”
박금숙 작가의 다부진 속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각형은 소통의 틀이다’.
박금숙 작가는 최근 사각형을 주제로 벽에 붙일 수 있는 작품 창작에도 열심이다.
‘그만의 색깔’ 찾기에 나선 한지작가 박금숙에게 사각형은 단순한 네모가 아니다. 네모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검색한 최신 정보를 보고, 네모난 책에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세상과 만나고, 네모난 핸드폰을 통해 사람들과 연락을 하는 소통의 틀인 것이다.
그가 사각형을 주제로 ‘네모이야기-닥종이 인형’ 전시회가 주목받는 이유다. 작가와 사람과의 소통공간인 사각형 안에서 닥종이인형을 통해 삶의 희(喜), 노(努), 애(哀), 락(樂)을 표현해낸 것.
끊임없는 콘텐츠를 개발, 연구하는 노력 끝에 사각 닥종이 인형에 대한 상표, 디자인등록도 마쳤다.
그는 사각형의 소통의 틀에서 삶을 이야기하는 닥종이 인형과 소통을 통해 나와 타인의 삶을 되돌아보며 공감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한다.
5년 전부터 독창성이 돋보이는 사각형 주제로 만들어낸 작품 뿐 아니라 기존의 수작업으로 행해지던 닥종이 공예로부터 차별화된 3D 프린팅 기법에도 관심이 많다.
기계의 크기는 비록 작아도 새로운 프린팅 기법으로 옥수수 전분을 활용해 만든 닥종이인형 작품들은 기존 수작업 보다 80%이상 소요 시간을 줄일 수 있어 가격 면에서도 절감이 가능하다는 것.
‘닥종이를 활용한 제조에 관한 연구’ 특허등록을 출원중인 그가 3D 프린팅 기법으로 만들어낸 종이인형은 공예품의 산업화의 큰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닥종이 한지인형으로 만든 인물 캐리커처는 선물용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박금숙 작가는 앞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닥종이인형을 만들어 낼 생각이다.
한지인형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 개발에 나선 그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게 한지인형 에니메이션 제작 꿈도 키우고 있다.
그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 매년 닥종이 인형 판매 수익금을 전달하는 따뜻한 마음도 지녔다. 그 중 한 아이의 경우 매달 일정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나눔을 실천한 후 주변에 좋은 일이 많이 생겨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재능기부를 위해 전주 한옥마을에 ‘어린이 한지학교’도 설립하겠다는 복안도 세웠다.
27년째 닥종이 인형작가로서 외길을 걷고 있는 박금숙 작가.
그는 현재 (주)박금숙 닥종이 인형 연구소 대표, 전국한지공예대전 초대작가, 한국종이접기협회 이사, (사)한국조형디자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옛것인 한지로 완성되는 작품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의 소통을 추구하며, 오늘도 창의적인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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