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대표는 한나라당이나 가라."
"이인영이는 최고위원 만들어 놨더니 간땡이가 부었어."
야권통합을 논의하기 위한 민주당의 23일 중앙위원회는 험악했다. 서울 영등포 민주당 당사 주변에서 펄럭이는 현수막은 이날 회의의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일부 중앙위원들이 일찌감치 달아 놓은 현수막의 요지는 하나였다.
"민주당을 없애려는 손학규는 사퇴하라."
민주당이 추진 중인 야권통합을 바라보는 당내 일부의 시각을 보여주는 현수막이었다. 재적 중앙위원 454명 가운데 257명이 참석해 개의된 중앙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의 목표 앞에 야권통합은 시대적 요구이자 국민의 명령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려서는 안 될, 우리의 깃발"이라고 강조했다.
손 대표는 "야권통합으로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고 정권을 교체해 1% 소수특권층만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 99% 중산층과 서민이 함께 잘 사는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며 "오늘 우리는 시대적 요청과 국민의 명령에 입각해 야권 대통합을 힘 있게 결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 대표는 "민주당은 민주진보진영의 맏형이자 중심세력으로서 시민세력, 노동세력, 복지세력을 통크게 품어 안고 국민이 원하는 더 큰 민주당, 더 강한 민주당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처럼 날치기하려 비공개 하냐? 손학규 나가라"
그러나 손학규 대표가 "존경하는"이라는 말로 입을 떼자마자 회의장에서는 "손학규 물러가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 참석자는 손 대표의 인사말 도중 연달아 세 차례나 같은 말을 소리 높여 했다.
손 대표의 인사가 끝나고 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하려 하자 이런 소동은 본격화됐다. 일부 중앙위원들은 "무엇이 두려워서 비공개로 하려고 하냐, 한나라당처럼 (통합안을) 날치기 하려는 거냐"고 따져 물었다.
"한미 FTA 날치기도 막지 못한 사람들이 무슨 통합을 논의하냐, 지도부는 총사퇴하라", "우리가 목숨 걸고 지킨 정당인데 밖에서 굴러들어온 놈이 당을 팔아먹으려 한다"는 외침도 들렸다.
당직자들이 취재 기자들을 내보내기 위해 분주한 가운데 한 중앙위원은 여성 당직자를 향해 "가시내가 위 아래도 없다, 가정교육을 잘못 받았다"고 막말을 쏟아내는 모습도 보였다.
회의장에 배치된 의자에는 야권통합과는 관계 없는 기사가 복사돼 배치돼 있었다. 소설가 공지영 씨가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의 한미 FTA 비준안 날치기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한 트위터리안의 글을 리트윗(RT)한 내용을 전한 <경향신문> 기사였다. 이는 당내 일각의 손 대표에 대한 시선을 보여주는 해프닝이다.
"지도부 통합안, 절차적 법률적 문제점 많아" 현실적 지적도
이런 감정적 반응과 별개로 지도부의 통합안의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민주당을 사랑하는 당원, 대의원 일동'이라는 명의로 배포된 자료에서 이들은 "대의원대회를 열지 않고 통합 논의를 위한 중앙위를 소집한 것은 당헌위반으로 무효"라며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민주당의 정통성을 실종시키는 손학규식 통합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민주당 전당대회를 소집해 민주적 절차와 당헌당규를 준수하는 질서 있는 통합을 추진하자"고 덧붙였다.
신기남 상임고문도 중앙위원들께 드리는 제안서에서 "당 지도부의 폐쇄적이고 일방적인 통합추진으로 인해 불필요한 당내 분열과 갈등이 커진데 대해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신 상임고문은 "단독 전당대회 개최 후 통합추진은 잘못된 노선"이라며 "야권통합정당의 탄생은 국민에게는 이미 기정사실인만큼 해법이 마련되기 어렵다면 12월 17일 통합신당 창당대회를 치르고 지도부 경선은 3주 후인 1월 7일에 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권주자 가운데 한 사람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통합전당대회의 절차적 법률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전날 3단계 통합론을 제시한 바 있다.
통합을 둘러싼 민주당 내부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마무리될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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