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들이 사실상 '괴담'을 신봉하고 있다는 여론조사를 다룬 <조선일보>의 기획기사는 이같은 흐름의 정점에 서 있다.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가 9일 20'40세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한·미 FTA, 이명박 대통령의 BBK사건 등과 관련한 각종 '소문'과 '괴담'에 대한 항목 10개를 제시하고 이를 믿고 있는지를 질문했다. 그 결과 20'40세대의 대다수인 83.8%가 10개 중 한 개 이상의 소문을 믿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조선일보>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20~40대는 싫어하는 정파에 대한 불신이 워낙 크다 보니 믿고 싶은 쪽 이야기에만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놓고 <동아일보>도 "적지 않은 젊은층은 이들 괴담의 진위를 정밀하게 따져보지 않은 채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SNS가 괴담의 주무대가 되고 있다는 점도 강력히 언급했다.
박원순을 지지한 20'40세대, 괴담이나 믿는 '어리석은' 세대?
▲보수언론의 '괴담' 비판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에 저항한 촛불집회 경험 이후, 미네르바 사태, 방사능 사태 등 정부 비판적 성격의 사건이나 담론이 부각될 때마다 '괴담론'이 등장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여론조사까지 동원해가며 괴담을 비판하고 있는 의도는 명확하다. 안철수 열풍,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의 핵심 축인 20'40세대가 괴담이나 믿는 '한심하고', '우매한' 집단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아울러 젊은층의 열광적 지지를 얻고 있는 나꼼수를 괴담의 진원지로 규정하면서 (조'중'동) '정론'과 '찌라시 방송'을 대비시키는 효과까지 기대하고 있다.
보수언론의 '괴담' 비판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에 저항한 촛불집회 경험 이후, 미네르바 사태, 방사능 사태 등 정부 비판적 성격의 사건이나 담론이 부각될 때마다 '괴담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번 '괴담정국'은 그 양태가 정교화되었다는 점에서 기존과 다르다. 괴담의 진원지와 괴담 신봉 계층이 특정화되면서 괴담이 세대현상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 결과 정부에 비판적인 20'40세대 내에서도 '건전한' 집단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은 '괴담'에 불과함을 깨닫고 '불온하고', '우매한' 집단과 거리두기를 하게되는 효과까지 노리고 있다.
'괴담'과 세대는 어떻게 접속하게 되었나?
그렇다면 '괴담'과 세대 현상이 어떻게 접속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거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20'40세대의 반감이 매우 완강할 뿐만 아니라 2010년 지방선거 보다 더 거세지고 있다. 더욱이 정치에 무관심하던 이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장으로 나서면서 정치지형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젊은층의 높은 정치참여 열기와 정부 비판적인 정서가 결합할 경우 내년 총선, 대선 등 향후 정치일정에서 보수세력이 몰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괴담 정국'은 20'40세대의 불만과 비판을 그 진원지인 사회경제적 상황으로부터 분리해 일회적이며 근거가 미약한 '불만'으로 거세하고자 하는 보수언론의 의도가 숨어 있다. 즉, 20'40세대의 불만을 사회적 토대로부터 분리해 '비정상화'하는 것이다. 아울러 20'40세대를 갈라치는 전략, 건전하고 이성적인 20'40세대와 비이성적이고 판단력이 없는 20'40세대를 대비시켜 건전한 20'40세대의 '각성' 효과도 노리고 있다.
사실 20'40세대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는 데에는 양극화 등 사회경제적 원인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양극화 폐해는 이미 사회에 자리를 잡거나 경제활동에서 은퇴하기 시작한 50대 이상의 기성 세대가 아닌 40대 이하의 젊은 세대에게 집중되고 있다. 한미FTA 문제는 그 정점에 서 있다. 이전과 비교해도 젊은 층에서 반대가 강화되고 있다. 조선일보가 조사한 괴담 관련 문항 중 "한·미 FTA가 시행되면 우리나라는 미국의 경제 식민지가 된다"는 주장에 20~40세대의 과반에 육박하는 49%가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역설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보수언론은 괴담으로 치부하려 하지만, 오히려 조사를 통해 그 '괴담'이 젊은층의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전체 여론조사 상으로는 한미FTA에 대해 찬성 여론이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정부 여당이 강행처리를 못하는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젊은 층의 반대가 크며, 이들의 관심도가 그 어느때 보다 높고, 투표 등을 통한 동원력도 막강하다.
괴담 여론조사의 문제
한편, 괴담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여론조사는 조사 방식에서도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인천공항을 이대통령 조카와 관련있는 외국계회사에 매각하려 한다"와 같은 합리적 비판의 연장선에서 제기된 다소 과격한 주장과, '한·미 FTA가 되면 미국 기업이 상수도 공급권을 딴 뒤 물값을 올려 수돗물 대신 빗물을 받아 쓰는 일이 생긴다'는 황당한 사례를 뒤섞어놓았다.
그 결과 합리적 의심도 자연스럽게 '괴담'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두 주장을 믿는다는 응답이 각각 46.8%, 27.8%로 크게 차이가 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논란도 괴담으로 밀어붙이면서 이성적 논쟁의 영역을 괴담이라는 비합리의 영역으로 몰고 있다는 점에서 그 본질상 '마녀사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괴담'을 비판하며 "제도언론보다 인터넷 공간의 괴담이 더 널리 유포되는 것은 인세인 소사이어티(insane society)", 즉 '미친 사회'라고 매도한 것이 이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시민의 합리적 의심을 괴담으로 모는 보수언론이야말로 괴담
합리적 의심에 기반한 비판 마저도 '괴담'으로 폄하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고, 민주주의 핵심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어쩌면 노무현 정부 후반, 부동산 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종부세에 대해 보수언론들이 '세금폭탄'이라고 공격했던 것이야 말로 괴담에 가깝다. 극단적 과장은 물론 왜곡된 사실에 기반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면 '합리적 의심'이고 남이 하면 '괴담'으로 폄하하는이중적 잣대가 '괴담정국'에서도 예외없이 나타나고 있다. 시민의 합리적 의심을 괴담으로 모는 보수언론의 보도야 말로 진짜 괴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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