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선(先)비준 후(後) ISD 재협상' 제안을 받아 든 민주당이 다시 공을 청와대로 넘겼다. 말로 하는 재협상 약속 말고 믿을 만한 양국의 장관급 이상 서명이 담긴 '문서'를 가지고 오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16일 5시간 여에 걸친 의원총회 끝에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투자자-국가 제소제도(ISD) 폐기 없이는 비준안 통과도 없다는 기존 당론도 일단 유지하기로 했다.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의원총회 결과에 대해 "발효 후 3개월 이내에 재협상하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구두발언은 당론을 변경할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한미FTA에서 최소한 ISD는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입장"이라며 "ISD 폐기 또는 유보를 위한 재협상을 즉시 시작하겠다는 양국 장관급 이상의 서면합의서를 받아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가 서면합의서를 받아오면 비준안을 통과시켜 주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 대변인은 "그건 그때가서 다시 논의할 문제"라고 답했다.
송민순 "대통령의 약속, 하늘에 날아가는 구름 같은 이야기"
민주당의 이날 의원총회는 기존 당론은 그대로 유지하되 청와대를 향해 역제안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의 구두약속이 ISD 폐기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만큼 기존 당론을 변경할 명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 '온건파'로 분류되는 송민순 의원조차 이날 의총에서 "대통령의 제의는 하늘에 날아가는 구름 같은 이야기"라고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변인은 "어제 대통령의 제안은 ISD 폐기나 유보를 언급한 것도 아니었으며 협상 자리만 만들어지고 미국이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협상이 종료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폐지나 유보에 양국이 사전에 합의하고 그를 위한 실무적인 협상을 시작할 것임을 확인해줘야만 당론 변경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는 당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의견 차를 적절히 절충한 것으로 풀이된다. "독이 든 만두를 먹고 3개월 후에 해독제를 먹는다는 것이 말이 되냐"(정동영 의원)는 강경파는 이 대통령의 제안의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반면 온건파는 "대통령이 성의를 표시했으니 대승적 관점에서 검토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손학규 대표 등 지도부가 두 의견의 절충점으로 이른바 '조건부 당론유지'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날 민주당의 의원총회에는 총 74명의 의원들이 참석했으며 지도부를 제외하고는 25명 안팎의 의원들이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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