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씨는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끝난 직후인 8월말 박 시장의 출마 결심을 처음으로 들은 사람 중 하나다.
"백두대간 '희망산행' 중인 박변(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일해온 많은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박원순 변호사를 이렇게 부른다)의 호출을 받아 대관령에 올랐다.…대관령 근처 민박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박변을 만났다. 깎지 못한 수염 때문에 털보가 된 박변. 힘든 산행 때문인지 무척 말라 보였다. 아마 체력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곧이어 시민단체 관계자 세명(하승창 희망과 대안 상임운영위원, 박진섭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도착했다.
"출마합니다."
박변의 한마디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어떤 이는 헛기침을 하고, 어떤 이는 "예전에 그렇게 출마하라고 할 때는 빼더니만 왜 지금에 와서 출마하느냐?"라고 다시 물었다."
▲ <박원순과 시민혁명>, 유창주 저, 두리미디어 펴냄. ⓒ프레시안 |
지난 10년 가까이 정치권의 '러브콜'을 완강히 뿌리쳤던 박 시장이 어렵사리 출마 결심을 굳혔지만, 곧이어 난관에 부딪혔다. 바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 검토설이었다.
"9월 1일부터 안철수 원장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설이 나돌기 시작했다.…당시 백두대간 종주 중인 박원순과 독대하면서 나는 안철수 원장이 출마한다고 하니 사실이 맞는지 이메일을 보내보라고 말씀드렸다. 박원순은 안철수 원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그에게 수염을 깎고 안철수를 만나라는 권유가 그의 주변에서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박원순은 그 조언을 실천하지 못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온 정신을 집중하여 만남의 순간에 대비하려니 수염을 깎을 만한 여유가 없었던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그만큼 긴급한 시간이었다."
박 시장은 이어 안 원장의 조건 없는 양보에 대해 "아무리 개인적으로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있더라도 자신의 지지율이 압도적이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의 입장을 딱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는가"라면서"안 원장이 정말 훌륭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안 원장과 후보단일화를 이룬 박 시장을 기다리고 있던 일정은 민주당 등 야당 후보들과 단일화 과정이었다. 안 원장과 단일화가 '개인적 신뢰'에 기반한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였다. 여기서 솔직히 박 시장은 결정적 실수를 했다. 민주당의 경선룰을 전적으로 받아들인 것.
그리고 나서 박 시장은 "정치가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의 운명인 것도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원순은 야권단일후보 국민참여경선과 관련해 민주당의 야권 단일화 경선룰을 대승적으로 수용했다. 당시 그와 통화하면서 사실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경선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원순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다시 자신에게 연결되어 있는 그 '운명'의 끈을 느끼는 듯했다. 천운이었다. 하늘이 도운 것 같다는 생각 외에 그 어떤 말이 필요하겠는가."
박 시장의 당선은 기존 정치 문법에서 벗어난 것임을 분명하다. 가장 큰 요인으로 유 씨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민주주의'를 꼽았다. SNS는 네트워킹과 목적의식적인 동원 등에서 매우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도구로 기존 정당들의 조직과 자금력을 뛰어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원순 펀드'였다. 박 시장은 서울시장 선거 비용인 38억여 원을 SNS를 통한 소액모금 방식인 '박원순 펀드'를 통해 사흘 만에 모았다. 박 시장은 9월 28일 트위터를 통해 "박원순 펀드가 마감됐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여러분, 정말 대단하세요"라는 글을 남겨 감사인사를 전했고, 그날 저녁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나경원 후보 측의 네거티브 공세에 대한 대응도 SNS 공간에서 주로 이뤄졌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 일간지와 방송이 사실상 '나경원 편'이었지만, 이런 기존 매체에 맞서는 힘을 SNS가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박 시장의 선거 전략은 내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빅매치'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 씨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뉴미디어 선거혁명이 이루어질 것"이라면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그 전초전이었음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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