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우진 부장판사)는 한만호 전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여 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해 "한명숙에게 금품을 전달했다는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지만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통상적인 언론 브리핑도 생략했고, 수사 지휘부는 긴급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지난해 4월 4일 한만호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9억 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토대로 수사에 착수해 3일 만인 8일 한신건영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인사 청탁 등과 함께 5만 달러를 받은 혐의와 관련해 선고 공판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검찰이 사실상 별건 수사에 돌입한 지 하루 뒤인 9일 곽영욱 사건은 무죄로 판명됐다. 당시 한 전 총리는 유력한 야권 서울시장 후보였다.
검찰은 한신건영을 압수수색한 지 3개월 여 만인 7월 20일 한 전 총리를 불법 정치자금 9억7천여만원 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0일 열린 공판에서 한만호 전 대표는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다. "돈을 준 사실이 없다"고 한 것이다. 검찰은 경악했다. 결국 유일한 직접 증거가 신뢰성을 잃게 된 계기가 됐다.
이어 검찰은 지난달 19일 한 전 총리에 징역 4년과 추징금 9억4000만 원 구형하고, 한만호 전 대표를 위증죄로 기소하는 등 전력을 쏟았지만 법원은 끝까지 검찰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 지난해 6.2지방선거 당시 한명숙 전 총리는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 이 때는 '한만호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중이었다. 결국 한 전 총리는 선거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패했다. ⓒ뉴시스 |
한만호 사건은 곽영욱 사건과 닮아있다. 검찰이 지목한 핵심 공여자가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2009년 11월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곽영욱 전 사장의 진술을 토대로 그해 12월 한 전 총리를 기소했었다. 그러나 곽 전 사장이 "직접 건넸다"는 진술을 번복하고 "총리 공관 식당 의자 위에 돈 봉투를 두고 나왔다"고 말을 바꾸자 검찰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이 입증에 실패하면서 "의자가 돈을 받은 것이므로 의자를 기소하라"는 야당의 조롱까지 받았다. 결국 4월 9일 한 전 총리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 아직도 정치 보복…한명숙 무죄판결, 국민 앞에 사죄해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1부가 나란히 '물을 먹은' 것이지만 후폭풍은 예상보다 클 가능성이 높다. 애초 한 전 총리는 야권 대권 주자 선호도 1. 2의를 다퉜던 거물급 정치인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차례 모두 무죄가 난 이번 사건 때문에 한 전 총리는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이는 야당 유력 정치인에 대한 탄압으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책임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명숙 전 총리 관련 두 사건 수사를 시작했던 노환균 전 서울중앙지검장(현 대구고검장)은 수평 이동을 해 대구고검장으로 갔다. 그러나 TK-고려대 출신 노 고검장은 현 정부 민정수석, 법무부장관 후보로 끊임없이 하마평에 오르는 등 이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인사다. 자신이 주도한 곽영욱, 한만호 사건 수사에 대한 실패를 책임질 자리에 있지도 않은 상황이다.
현재 검찰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계기가 됐던 태광실업 사건 이후 별다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 기소는 사실상 실패했고, 기업 수사인 C&그룹,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부산저축은행 사건 역시 오리무중이다. 대신 BBK 사건, 천신일 전 세중나모회장 사건, 남상태 연임 로비 의혹 등 권력형 비리 의혹이 있는 사건도 모두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최근 검찰의 수사권 독립 의지와 맞물려, 정치권도 검찰 개혁에 다시 손을 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현재 정치적으로도 '고립'된 상태다.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한 전 총리 무죄와 관련해 "사필귀정"이라며 "검찰이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돈을 뇌물로 짜 맞추느라 온갖 노력을 다 했겠지만, 결국 진실이 거짓을 이겼고 이 땅의 정의가 정치검찰을 이겼다"며 "이번 판결은 사법의 잣대가 국민을 대신해서 무리한 보복 수사로 한 전 총리에게 누명을 씌운 정치 검찰을 단죄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변인은 "참여정부 인사에 대한 정치적 사정과 표적수사로 노무현 대통령을 돌아가시게 했으면 이제 정신을 차릴 법도 한데, 아직도 보복을 계속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 치 앞도 못 보는 어리석은 정부"라며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만으로도 앞으로 받아야 할 국민적 심판이 더 할 나위 없이 크고 무거움을 명심하고, 더 이상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신창현 부대변인은 애초부터 검찰이 한나라당의 선거운동을 돕기로 작정하고 불순한 수사를 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여당 선거를 돕겠다고 무고한 야당 정치인 한명을 짓밟은 검찰은 과연 양식이 있기는 한 것인가"라며 "검찰은 이번 무죄 판결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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