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청와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날 출구조사 발표 직후는 물론 상당 부분 개표가 진행된 이후에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오늘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는다"고만 전했다.
하지만 상당수 청와대 관계자들은 박원순 후보와 나경원 후보의 개표 진행 상황에서 꾸준히 6~7%포인트의 격차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근소한 패배 혹은 언감생심 신승까지 기대했던 청와대
▲ 26일 서울 시장 재보선에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청와대 |
이날 아침 일찍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투표한 이후 청와대는 실시간 투표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청와대 내에서는 한나라당의 승리나 3%포인트 이내 근소한 차이의 패배를 예상하는 기류가 강했다. 물론 일부 관계자들은 "처음부터 이기기 힘든 선거였다"고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오후에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투표 결과에 따른 국정운영 방향 등에 대해 논의할 때만 해도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 3사의 서울시장 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청와대 관계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이기긴 힘들어도 3%포인트 정도 지지 않겠나 봤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특히 서울시장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은 물론 18대 총선에서도 압승한 서울이 완벽하게 돌아선 것이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는 것.
한나라당에서 날아올 화살을 어떻게 방어할 수 있을까?
세대 투표 현상 등 세부적 상황에는 신경도 못 쓰는 분위기인 청와대는 당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걱정하는 분위기다. 서울 민심이 확인된 상황에서 오는 28일 야당의 반발을 물리적으로 제압하고 강행 처리할 수 있겠냐는 것. 한나라당 내에서도 강행 처리 반대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또 야당의 공세는 차치하고, 한나라당의 차별화와 청와대 인적 쇄신 요구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미 이재오 의원은 내곡동 사저 부지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을 잘못 보필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한다"며 임태희 실장의 책임론을 제기해놓았다. 일부 소장파들이 홍준표 지도부와 청와대를 한꺼번에 싸잡아 비판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여의도 쪽에서 들린다. 위기에 몰린 홍준표 대표가 타개책으로 청와대를 공격하고 나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참패했을 때 청와대 수석 이상 관계자들은 일괄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당시엔 정정길 대통령실장만 물러나고 임태희 실장이 입성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상 선제적으로 인적 쇄신을 하거나 국정 기조 전환을 선언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게다가 임 실장 대신 측근들을 다시 들어앉힐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지금 하던대로 쭉~"을 선언하는 것은 민심과 완전히 유리된 '식물 대통령'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 당의 요구에 밀려서 슬금 슬금 후퇴하는 것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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