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이 기묘하다. 앱과 SNS의 심의를 전담할 '뉴미디어정보심의팀'을 신설하기로 한 방송통신심의위의 관계자가 말했다. "SNS와 앱의 음란·선정성 등 불법정보를 차단하기 위한 조직 신설일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고 했다.
일단 그렇다 치자. 출시된 앱 가운데 음란·선정성이 짙은 게 여럿 있음을 목도한 바 있으니 이를 심의하고 규제하는 것을 뭐라 탓할 수 없다고 치자.
한데 요상하다. 음란·선정성 짙은 앱과 SNS를 심의·규제한다면서 내세우는 심의 기준이 참으로 요란하다. ▲범죄 및 기타 법령 ▲선량한 풍속의 위반 여부를 심의하는 건 그렇다 쳐도 이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제 평화질서 ▲헌정질서 ▲기타 사회질서….
도대체 음란·선정성과 '국제 평화질서'가 무슨 상관인가? 앱과 SNS에 8등신의 외국 모델이 비키니 입고 등장하면 '국제 평화질서' 위반인가?
'헌정질서'는 또 왜 나오는가? '풍기문란'에 해당하는 음란·선정성 조장과 '국기문란'에 해당하는 '헌정질서' 위반을 왜 섞는가? '풍기문란'을 '국기 문란'과 동의어로 사용하는 경우는 보다보다 처음 본다.
'기타 사회질서'라는 것도 그렇다. '범죄 및 기타 법령' 위반 행위와 '기타 사회질서' 위반 행위는 중첩된다.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걸 예방하고 단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법령이니까. 결국 동어반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왕 말을 꺼냈으니 확장하자. '선량한 풍속'이란 것도 모호하다. 나이 지긋한 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하에서 '미풍양속'을 어지럽히는 행위를 단속한다며 규제를 거미줄처럼 깔아놓은 적이 있다. 그래서 드라마가 베드신은 고사하고 키스신조차 연출하는 걸 막았고, 방송에서 생리대를 광고하는 것도 막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소프트한 베드신이 공중파를 타고 있고, 생리대 광고 또한 멀쩡히 나오고 있다.
'선량한 풍속'이란 게 이런 것이다. 시대와 사회 분위기에 따라 변하고 또 변하는 게 '선량한 풍속'이다. 그 뿐인가. 연령대에 따라 '선량한 풍속'의 기준도 다르다. 지하철 안에서 젊은 남녀가 '닭살 행각'을 벌이는 것을 놓고 장년과 노년은 얼굴 찌푸리지만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바라본다.
도대체 '선량한 풍속'의 기준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술'이란 단어 하나만 나와도 규제를 가했던 가요심의처럼 키스 장면 하나 나오고, 비키니 모델 한 명 나오면 무조건 규제할 건가? 심의위원들의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에 전적으로 맡길 건가?
어이없다 못해 우습다. 방송통신심의위의 방침은 배꼽에 낀 때를 빼내겠다며 배보다 큰 핀셋을 집어드는 꼴이다. 그래서 코미디다.
방송통신심의위의 처사와 논리가 이 모양이니 나오는 것이다. 음란·선정성 차단은 표면적인 명분일 뿐 속내는 '정치검열'에 맞춰져 있다는 주장,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앱과 SNS를 길들이려는 속셈이라는 지적이 당연히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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