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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케미'가 잘 맞는다?...케미포비아 사회

[안종주의 안전사회] "문제는 위험 소통"

우리 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용어 가운데 하나가 노케미(Nochemi)족과 케모포비아(chemophobia 또는 케미포비아)이다. 이들은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에 대해 극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일상생활에서 화학제품 사용을 꺼린다. 비누나 샴푸, 세제 등도 직접 천연재료를 구입해 만들어 쓰기도 한다. 갓난아기나 어린이를 둔 20~30대 여성들 가운데 노케미족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노케미족이 언제 탄생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동안 식품첨가물, 환경호르몬 물질에 대한 불안 등으로 잉태된 노케미족이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물 위로 떠올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살충제 계란 파동마저 벌어지자 생활 속 화학물질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해 화학제품 거부는 분명하게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

노케미족의 등장과 확산은 이러한 화학물질 제품 관련 파문과 함께 자극적이고 위험의 극대화를 좆는 경향이 있는 언론이 케모포비아 현상을 자주 다루면서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폭되어 갔다. 케모포비아는 위험에 대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최근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성인 1541명을 대상으로 생활화학물질의 위해성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은 화학물질에 대해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명 중 5명꼴 이상이 평소에도 화학물질과 그 제품을 기피하며 4명중 1명꼴로 생활용품이나 식품에 화학물질이 들어있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식은 땀이 나거나 숨이 가빠지는 등 신체 이상증상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나 화학물질제품에 떨고 있니" 15%

이는 한마디로 우리 사회에는 화학물질과 그 제품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거나 기피 행동을 하며 심지어는 신체 이상 증상까지 경험한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것을 뜻한다. 화학물질과 그 제품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에 해당하는 케모포비아, 즉 두려움과 기피행동, 신체증상 등 세 가지를 모두 보이는 사람은 전체의 15%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과는 케모포비아가 언론이 그냥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엄연한 실체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제2의 가습기살균제 또는 살충제 계란 사태가 벌어지면 언제라도 케모포비아의 대열에 합류할 예비군의 숫자가 적지 않다는 점도 확인됐다.

이번 조사에서 케모포비아 잠재집단은 두려움만 느끼거나 두려움을 크게 느끼지 않는 다른 집단에 견주어 위험을 겪은 뒤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회복 속도가 매우 느리며 안전한 제품이면 돈을 더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은 비케모포비아 집단보다 정책에 관한 이해도가 높으며 생활화학제품의 사용설명서를 꼼꼼하게 읽는 등 안전행동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화학물질을 사용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에 견줘 안전행동을 하는 비율이 큰 차이가 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제품사용설명서를 읽는 비율을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37%가 전혀 읽지 않거나 거의 읽지 않는다고 답한 반면 유럽은 16%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또 우리나라 사람은 제품사용설명서를 항상 읽거나 설명서대로 따라한다는 응답이 각각 1.8%, 1.0%인 반면 유럽 사람은 이것이 각각 35.0%, 36.0%나 됐다.

세월호 참사 때 시민 분노를 건드린 박근혜 대통령

유 교수팀은 특히 감정촉발 요인, 즉 분노(outrage) 요인에 초점을 맞춰 생활화학제품과 살충제 계란 사태를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위험 인식(인지)에서는 사회·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데 피터 샌드만(Peter Sandman) 등 위험 사회·심리학자들은 위험의 인위성, 불확실성, 비자발성, 통제가능성, 사고 경험 등 15가지 정도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회·심리적 요인이 응축돼 폭발한 것이 바로 분노이다. 분노는 이러한 요인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요인에 의해서도 촉발될 수 있다. 특히 안전하다고 말하거나 선전해온 것이 실은 위험한 것으로 드러날 때, 속이거나 숨긴 것이 드러날 때, 타인에게는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는데 나에게는 위해를 가할 때,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을 때, 위험의 책임을 타인이나 다른 기관, 과거 정부 등에 떠넘길 때, 위험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복지부동해 사람이 죽거나 다쳤을 때 시민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2008년 광우병 광화문 촛불시위,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 지난해 살충제 계란 파동 등은 모두 이런 요인 가운데 여러 개가 어우러져 터져 나온 것이다.

지난해 여름 살충제 계란 사태를 맞닥뜨린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분노가 폭발했다. 연구팀이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살충제 계란 사태에 대해 시민들이 응답한 것을 분석한 결과 감정촉발 요인 가운데 하나인 어린이 영향(84%), 기업 불신(79%), 위험의 지연성(76%) 등 15가지 가운데 무려 13가지에서 감정 촉발 정도가 ‘보통’을 넘어 ‘그렇다’에 근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이나 위험 사건을 겪으면서 시민들은 분노를 쌓아가고 이는 다시 정부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를 잘 들여다보지 않고 시민단체를 더 신뢰하는 결과로 낳고 있다. 위험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보를 제공하거나 위험을 통제하는 집단에 대한 신뢰이다. 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경제야!"에서 "문제는 위험소통이야!"로

빌 클린턴은 오래 전 미국 대통령을 그만두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언론에도 매우 뜸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선거를 치르면서 남긴 슬로건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Stupid! It’s Economy." 사람에게 각인시키려면 문구가 세 글자를 넘지 말라는 홍보선전의 원칙을 100% 잘 반영해 나온 명(名)슬로건이어서 오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를 차용해 위험인식(지) 또는 위험소통의 세계에 적용한다면 "Stupid! It’s Risk Communication."이 될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위험소통이야." 위험(위해, 위해성)관리의 출발은 위험분석·평가이고 이것이 위험인식을 거쳐 위험소통으로 이어진다. 이 가운데 뭐니 해도 위험소통이 중요하다. 위험소통을 잘 하려면 위험인식의 속살을 샅샅이 파헤치는 작업이 중요하다.

인간 세상에서는 첫인상이 중요하다. 첫인상이 평생을 가기도 한다. 사람만이 아니다. 새들은 알에서 부화해 처음 만난 존재를 자신의 어미로 안다. 비록 그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각인이다. 시민들이 처음 접하는 위험의 경우도 언제 누구로부터 위험을 알게 됐으며 그 위험을 어떻게 설명 받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위험의 세계에서는 위험을 극대화화해 상품처럼 팔려는 집단과 시도들이 있었고 지금도 존재한다. 살균제나 살충제 제조·판매업체는 세균이나 해충의 위험성을 과장해서 말하려고 한다. 지폐, 휴대폰, 키보드, 마트의 카트손잡이 등에 세균이 득실거린다는 것을 널리 과장해 알리고 싶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언론은 자신의 기사나 영상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보기를 바란다. 이들이 제목을 자극적으로 뽑고 독자와 시청자들이 몸서리치는 용어·영상을 사용하는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쓰레기 만두, 광우병, 살 파먹는 박테리아, 공업용우지 등은 모두 언론이 단순극단화해 만들어내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된 위험들이다.

환경시민단체들은 자신들이 활동·운동 분야로 정한 것을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여주기를 바란다. 예를 들면 석면추방운동단체는 석면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이라고 말한다. 미세먼지추방운동단체는 미세먼지, 식품안전운동단체는 식품이 일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처럼 말한다. 정치인도 그런 경향이 있고 전문가 가운데에도 그런 부류들이 분명 있다.

특정 위험이 실제보다 과장·과소평가된 일 비일비재

우리는 왕왕 이런 집단 또는 단체, 사람에 의해 특정 위험이 실제보다 과장되거나 과소평가된 일이 있다는 것을 과거 여러 사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만약 특정 위험에 대해 무지한 시민이 위험을 파는 사람이나 집단을 처음 만나 그 위험을 인식하게 된다면 매우 충격적인 정보가 그의 뇌에 자리 잡게 된다.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정상적 일상생활을 하기 어렵고 그 위험에 너무나 민감해 '자라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 되어 불안과 공포 속에 나날을 보내게 된다.

시민들이 위험을 받아들이는 것은 학력, 성별, 인종, 경제적 수준, 세계관, 정치적 성향 등에 따라 서로 차이를 보인다. 살충제 계란 파동을 겪으면서 이른 시일 안에 과거 상태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계란 소비를 기피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이 각각 이런 행태와 태도를 보이는가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어떤 요인이 여기에 작용하며 어떤 소통방법을 통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시민들을 바람직한 행동의 길로 이끌 것인가가 위험관리의 핵심이다.

앞으로 위험소통에 심혈을 쏟는다면 위험 세계에서 풀지 못한 난제 중 난제인 "How safe is safe?", 즉 "얼마나 안전해야 안전하냐?"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석면 안전, 살충제 계란, 유해 생리대 논란 등이 모두 이 화두, 즉 시민들의 제로위험 추구 경향 때문에 위험이 증폭됐고 우리는 아직도 그 난제 속에서 헤매고 있다.

시민들은 정부와 전문가를 쳐다보고 있고 정부와 전문가들은 한숨을 짓고 있다.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절대안전, 즉 제로위험을 약속해줄 메시아를 찾고 있다. 하지만 그런 메시아는 없다. 신도 이는 약속하지 못한다. 우리는 해답을 위험소통에서 찾아야 한다. 위험분석과 위험평가에 매달리는 시간과 들이는 비용 못지않게 위험소통에 이를 쏟아야 한다. 위험소통은 위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시민들에게 줄 수 있다. 위험소통은 시민들을 분노에 빠지지 않게 해준다. 분노한 시민들에게 평상심을 갖게 해준다.


생명 이길 수 있는 영업 비밀은 없어

효과적 위험소통을 위해서는 사회과학자와 인문학자들이 자연과학자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시민들이 원하는 위험 관련 정보를 제때, 쉽게, 필요한 양만큼 주어야 한다. 기업이나 집단의 이익이 우선이 아니라 시민의 생명과 건강이 먼저인, 즉 사람이 먼저인 화학물질 관리, 위험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소비자와 노동자는 소모품이 아니라 자본보다 중요한 자산으로 여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기업의 영업비밀이 결코 노동자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기업의 이익이 시민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가치일 수는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최근 삼성전자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를 둘러싸고 내홍을 겪고 있다. 사법부의 공개 불가 판결로 잠시 기업의 이익이 생명을 가치를 누른 형국이다. 하지만 최종 결론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기업이든 조직이든 "No Safety, No Margin", 나아가 "No Safety, No Survival"의 원칙이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자와 소비자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는 기업과 조직은 우리 사회에서 돈을 못 버는 것은 물론 도태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현재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주범격인 다국적기업 옥시레킷벤키저가 도태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토종기업 삼성전자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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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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