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드루킹' 김모 씨의 행적을 살펴보면, 파워 블로거라는 온라인 상의 지위를 악용한 '정치 브로커'에 가까워 보인다.
김 씨는 올해 1월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게재된 2개의 기사에 달린 댓글에 공감 수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614개의 아이디를 동원해 특정 댓글의 추천 수를 집중적으로 높이는 방식으로 여론조작을 시도한 점이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이다.
그가 왜 이런 행위를 했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같은 행위가 이뤄지던 18일 새벽 0시 30분 경 김 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는 댓글 조작을 통해 여론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엿보인다.
그는 "신문이 찌라시가 된 지 오래 됐으며, 대중들은 대부분의 뉴스를 모바일을 통해서 포털, 특히 네이버 기사를 통해서 본다"며 "그러니 여론이란 네이버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인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네이버 기사 댓글이 여론을 좌우하고 '온라인 여론 점유율 = 대통령 지지율'"이라며 "온라인에서 지면, 오프라인에서도 지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원이자 친여 성향으로 보이는 김 씨가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댓글의 조회수를 높인 이유도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보수 세력이 하는 것으로 꾸미기 위해 댓글을 조작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김 씨가 운영한 '경제적 공진화 모임'의 한 회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인사 청탁이 실패로 돌아가자 앙심을 품고 태도를 바꾼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김 씨가 대선 기간에 문재인 캠프에 지지 선언을 했다. 이후 김 씨가 김경수 민주당 의원 보좌관에게 '일본 오사카 총영사직을 지인에게 맡겨달라'는 요구를 했다"면서 "김씨가 '(김 의원이) 전화도 안 해준다'면서 불만 토로를 여러 차례 했던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
실제로 <한겨레>가 공개한 경공모 대화방 대화록에 따르면, 김 씨는 대화방 참석자들에게 "김경수는 분명히 외교 경력이 풍부한 사람이 해야 한다면서 못 준다, 이렇게 말했으니 한 입으로 두 말이야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지금까지 모든 거짓말을 내가 다 참아왔지만 외교 경력 없는 친문 기자 나부랭이가 오사카 총영사로 발령받으면 그때는 도망갈 데가 없겠죠"라고 했다.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3월 김 씨가 김경수 의원의 보좌관 두 명 중 한 명에게 협박적인 메시지를 보냈다"며 "김 의원에게 보낸 메시지는 확실한 멘트라기보다는 (협박성) 뉘앙스인데, 김 의원은 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김경수 의원이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5월 선거가 끝난 뒤 김 씨가 직접 찾아와 인사와 관련한 무리한 요구를 해왔고, 청탁이 뜻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상당한 불만을 품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 발언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김 씨가 왜 하필 오사카 총영사 직을 청탁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방송에 출연한 경공모 회원은 "(김 씨가 조선 말기의 예언서인) '송하비결'을 토대로 일본이 결국 침몰한다고 믿었다"며 "일본에서 난민이 발생하면 한국으로 올 것이고 이를 위해 영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줄을 대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현재까지 드러난 내용으로 보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던 김 씨는 대선이 끝난 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 의원에게 인사청탁을 했다가 거절당했고, 이에 앙심을 품어 댓글 조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김 씨는 경공모 대화록에서 문 대통령이 카톨릭 신자라는 점을 드러 문재인 정부를 '제수이트(예수회)'로 규정하는 등 황당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는 "친문 핵심 조직은 너무 이상해요"라며 "소위 핵심 멤버들은 전부 개종했고 저는 이들이 제수이트라고 이제 확신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수이트들한테는 조국이 없다. 로마가 조국이다"라고도 했다.
심지어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는 MB하고 노 대통령의 측근들이 연루되어 있다고 저는 보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경수, 부적절한 인사 청탁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 씨 등 2명을 즉각 제명 조치하고 이번 사건을 "개인 일탈"로 규정했으나, 파문이 쉽게 가라앉을 분위기는 아니다.
무엇보다 '댓글 조작과 가짜뉴스를 뿌리뽑겠다'며 민주당이 수사 의뢰한 사건의 주범이 민주당원으로 드러남에 따라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댓글 조작'을 강하게 비판해 온 민주당으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됐다.
특히 김 씨가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하기 이전인 지난해 대선 때부터 댓글 여론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경공모 회원은 "모임 차원의 댓글 작업은 대선 전후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경공모 차원의 조직적인 댓글 작업이 대선 직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포착되기도 했다.
선관위는 당시 김 씨가 공동대표로 있는 경기도 파주의 '느릅나무' 출판사 사무실에서 불법선거운동이 이뤄진다는 제보를 받았으며, 해당 건물의 특정 IP에서 조직적인 댓글 작업이 벌어진 정황을 확인하고 5월 5일 이들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으나 불기소 처분됐다.
문 대통령의 복심이자 지방선거의 격전지로 꼽히는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한 김경수 의원이 이 사건에 연루된 점도 여권으로서는 대형 악재다. 특히 김 씨가 김 의원에게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에는 다량의 포털 기사에 댓글 작업이 이루어진 정황이 담겨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올해 3월 3일부터 20일까지 18일간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을 통해 김 의원에게 155 건의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 한 건에 기사의 인터넷 주소(URL)이 수십개씩 총 3000여 개가 담겨 있었다.
김 의원이 텔레그램 대화방의 메시지를 대부분 읽지 않았더라도, 김 씨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댓글 작업을 김 의원에게 알렸다는 것이다.
김 씨의 이 같은 댓글 작업이 지난해 대선 때부터 이뤄진 것으로 확인될 경우, 파문은 더욱 확산 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기관이 아닌 일반인의 댓글 조작이라는 점에서 과거 정부의 댓글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해도,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 의원이 연루된 만큼,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김 의원이 김 씨의 인사 청탁을 분명하게 거절하지 않은 이유도 석연치 않다. 김 의원은 16일 기자회견을 갖고 "대선이 끝난 뒤 얼마 후 드루킹이란 분이 의원회관에 직접 찾아와 인사를 추천하고 싶다면서 오사카 총영사로 한 분을 추천했다"며 "경력을 보니까 대형 로펌에 계시고 일본의 유명 대학 졸업자라서 (채택이)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전달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청와대 인사수석실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 씨를 직접 만난 자리에서 인사 청탁을 받았으며, 김 씨의 요구를 청와대에 그대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문재인 정부는 열린 인사를 하고 있어 (김 씨의 청탁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의 부적절한 청탁을 거절하지 않았던 대목은 논란의 소지가 커보인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야3당은 일제히 검찰과 경찰 등 수사당국을 항의방문했으며,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이 사건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는 등 총공세를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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