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 장유기미독립운동의거 전말에 대한 연구 학술발표회(토론회)가 12일 경남 김해시 장유1동행정복지센터에서 이광희 삼일운동지회 김해시지부장(현 김해시의원)을 비롯한 이홍숙 문학박사와 유족대표, 이선미 장유1동장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4.12의거의 배경, 의거의 준비과정, 의거의 전개과정, 의거의 주역들, 타 지역으로의 영향과 이후 사회운동으로의 확산, 추모와 기념, 토론 순으로 심도 깊게 진행됐다.
발제는 이광희 삼일운동지회 김해시지부장과 이홍숙 문학박사가 맡았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이광희 지부장은 “1919년 기미년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1일 서울에서 시작돼 옛 김해군에서는 같은 달 30일 배동석 등이 김해면에서 벌인 시위가 최초였다며, 배동석은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삼일운동의 주동자로 경남 마산 등지를 암약하면서 만세운동을 지도하다 고향인 김해면으로 돌아와 시위를 벌였다고 밝혔다.
그는 “배동석은 3월31일 하계면 진영리, 4월2일 김해면, 4월3일과 5일은 진영리, 10일 명지면 중리, 11일 명지면 진목리, 4월12일 장유 무계리, 13일 하계면 진영리․가락면 봉림리, 4월16일에는 김해면 이동리에서 시위를 벌였다. 김해군에서의 독립만세 시위는 모두 10회에 걸쳐 7개 장소에서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유 4.12의거는 가락면 봉림리 만세시위(4월13일)와 김해면 이동리 만세시위(4월16일)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소개하고, 경남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9개)가운데 하나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해 장유면 유하리 출생으로 평북의 정주 오산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으로 내려와 신문의숙을 설립해 후진을 양성하고 장유청년회 조직 및 항일정신을 고취시킨 ‘김종훤’(독립운동 유공자 1893년~1948년)선생과 1919년 4월12일 장유면 무계리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한 ‘김승태’(1878년~1940년)애국지사(대한민국건국훈장 수훈)를 소개했다.
그러나 순국자 3인과 1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고 옥살이를 한 주동자 6인은 애국장을 추서 받아 독립유공자가 됐지만 3개월 형을 받은 6인은 아무런 보훈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종훤 선생’은 1919년 고종황제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서울로 상경했다가 3.1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고향으로 귀향해 당시 지방 유지였던 ‘김승태’, ‘이강석’, ‘김용수’, ‘조용우’, ‘조항래’, ‘최현호’ 애국지사와 함께 4.12장유시위를 주동하다 투옥돼 모진 고문을 받았고 2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김 선생은 해방직후인 1945년 건국준비위원회 장유면위원장으로 추대됐고 1968년에는 ‘건국포장’을 추서 받았다.
‘김승태 선생’은 1919년 4월11일 ‘김종훤’, ‘조순규’, ‘이강석’, ‘최현호’ 애국지사등과 함께 같은 달 12일 무계리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동리사람들을 동원해 그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들고 시위행진을 했다.
당시 시위에 참여한 군중은 3000여명이었다. 그 후 김 선생은 일제의 검속에 의해 체포됐고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김 선생에게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두 번째 발제에 나선 이홍숙 문학박사는 “기미년 만세운동은 비록 3월1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만세운동은 3월1일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기미독립선언문 낭독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되게 하는 기점을 마련하게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장유의 독립운동가 김승태 선생의 어머니인 조순남 여사의 역사적 의의가 깊다면서 ‘김승티가’의 저자 조순남과 가사의 전승 과정, ‘김승티가’의 구성 을 소개했다.
그는 “자식 소회가로 알려져 있는 ‘김승티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의를 찾는데 하나는 문학적 의의이고 다른 하나는 장유의 역사적 의의이다. 이는 가사문학이라는 점에서 1920년을 전후한 김해의 문학적 자료로서 가지고 있는 의미가 크고 문학적 가치도 역사적인 맥락에서 조명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역사적 의의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문학적 가치는 당시 장유지방의 언어, 가사장르의 관습적인 표현, 서술방식, 저자의 표현․특징 등과 같은 관점에서 고찰되어 정해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 작품은 문화사적 의의가 크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배, 기차, 정천나루터 사공, 헌병대, 감옥, 재판의 실상, 면회하는 모습, 석방 후 환송의 모습, 범등포 위령제의 모습, 일가친지들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의 공동체적 모습 등이 이 가사의 전면에 걸쳐서 잘 묘사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장유의 만세운동 과정이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행간에 숨어 있는 뜻으로 그 날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면서, 장유의 만세운동에 대한 소회가 아니라 아들 승태에 대한 소회여서 당시의 만세운동 규모와 상세한 상황을 묘사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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