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와 측근 비리 의혹이라는 두 가지 난제를 한꺼번에 만난 청와대가 전자에 대해선 '적극 대처'하고 있지만 후자에 대해선 확고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박정하 대변인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26일 오전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주가 등 경제지표는 심리적 요인이 많다"면서 "위기감을 갖고 철저히 대비하되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해 지나친 불안감을 갖고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측근 비리 의혹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비상경제대책회의 재개 검토 중이다"
이 대통령은 "각 부처와 청와대가 국민들에게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라"며 이같이 말했다.
청와대는 지난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당시 만들었다 지금은 국민경제대책회의로 명칭과 성격을 바꾼 비상경제대책회의 재개를 검토하고 있다.
박 대변인은 "준비를 하고 있는데, 너무 이상한(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인을 줄 수도 있어서 고려 중"이라면서 "(회의 재개에 대한) 협의와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열흘 넘어 가는 MB의 '침묵'
이날 이 대통령은 최근 측근 비리 의혹 등에 대해선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박 대변인이 밝혔다. 청와대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지난 15일 김두우 전 홍보수석이 사퇴를 표명한 이후 이 대통령은 2주 가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만 청와대는 이 대통령 수행비서 출신인 임재현 정책홍보비서관, 곽승준 미래기획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SLS이국철 회장이 언급하고 있는 신재민 전 차관 외 다른 인사들에 대해선 '스크린'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박 대변인은 "스크린을 해 봤는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박 대변인은 "이국철 회장이 지난 해 7월에 냈다는 진정서는 민정수석실을 거쳐 국민권익위로 내려간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이번 (신재민 차관 관련 건 폭로 직전)에 민정수석실에 냈다고 주장하는 진정서 건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사후 '스크린' 했다. 신재민은 빼고"
박 대변인은, 다른 사정 기관이 청와대에 이미 지난 8월 '리스트'를 보고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선 "그런 것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청와대 설명대로라면 이국철 회장의 폭로 이후 '사후 스크린'이 진행된 것일 뿐, 폭로 이전 사전 점검은 없었다는 말이 된다.
이 회장이 지난 달 권재진 법무부 장관 인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기획 수사설'을 주장한 점이나 '폭로'이전에 여러 언론들과 접촉해 '스폰설'을 언급한 점 등을 감안하면, 청와대 주장대로라도 민정기능에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김두우 전 수석의 경우에도 검찰 소환 통보를 받고 본인이 사퇴하기 훨씬 전 '박태규 연루' 정황이 언론에 다수 보도됐지만 민정수석실은 일이 터지기 전까지 별다른 일을 하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찜찜하긴 했지만, 본인이 '결단코 아니다'니 별 다른 수가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청와대는 이른바 '이국철 리스트'에 대해선 "신빙성이 떨어진다. 확인해본 결과 나온게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는 '신재민 전 차관 외'에만 국한된 것이다.
자원 외교 등 줄줄이 기다리는 의혹
또 한때 '왕 비서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전 지경부 차관의 '다이아몬드 주가조작 의혹' 등 자원외교 전반에서 나오는 의혹에 대해서도 청와대 관계자들은 "확인해 보자. 두고 보자"는 식으로만 반응하고 있다.
이날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정권 후반기 권력비리와 측근비리, 고위공직자 비리, 친인척 비리 등 모든 사항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줄 것을 청와대에 요청한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꼬리 자르기 식의 '로우 키'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불법 사찰, 영포회 논란 등 과거 청와대와 연결되는 의혹 사안들의 경우 청와대는 해당 커넥션에 위치한 인물들만 자진 사퇴시키고 '뭉개기'로 일관해 넘어간 바 있다. 이번은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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