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가까이 아버지 이름을 입에 담지도 못했습니다. 이제는 원없이 불러보고 싶습니다."
채영희(74) 10월유족회장은 5일 한국전쟁 전후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됐던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위패 앞에서 이 같이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제주4.3항쟁을 비롯한 경북 경산·영천·군위 등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족 수 십명도 그의 뒤에서 함께 그리운 가족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이날 '대구10월항쟁·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유족회'는 달성군 가창수변공원에서 '10월항쟁 72주기, 한국전쟁 전후 보도연맹·대구형무소 민간인 희생자 68주기 합동위령제'를 지냈다. 이 자리는 유족들과 전재경 대구시 자치행정국장, 김혜정 대구시의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허맹구 포항유족회장의 사회로 오전 11시부터 1시간동안 제례와 추모식, 헌화가 진행됐다.
1950년 면사무소 서기였던 아버지는 무장공비에게 쌀을 나눠줬다는 이유로 끌려간 뒤 68년째 돌아오지 못했다. 70년 가까이 숨죽이고 살았던 어린 딸은 일흔이 돼서야 아버지 이름 석자가 새겨진 작은 나무 위패 앞에서 설수 있었다. 백발의 아내는 주름진 손을 모으고 오래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의 넋을 기렸다.
채영희 10월유족회장도 "우리 아버지들은 역사 앞에 죄인이 아니다. 해방된 내 나라의 잘못된 식량 정책에 항의하고 배고픔을 호소했던 주권자"라며 "가슴에는 70년간의 한이 맺혀있다. 이제는 명백히 밝히고 긴세월 묻혔던 진실을 역사에 올바르게 기록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올해 처음으로 합동위령제에 참석한 전희자(73)씨는 "어머니와 동생들은 평생 빨갱이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어릴 때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다"며 "많이 늦었지만 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작은 비석 하나라도 세우고 떳떳하게 싶다. 이땅의 모든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란다"고 했다.
특별법 제정과 위령탑 건립이 늦춰지는 점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강병현 한국전쟁유족회장은 "미군정에 저항한 민중들이 이승만 정권에 의해 무참히 숨을 거둔 것은 제주4.3과 마찬가지"라며 "특별법 통과로 국가가 앞장서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김혜정 대구시의원은 "유족들은 부모 이름이 새겨진 비석에 밥 한그릇 올릴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며 "대구시는 이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달라"고 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따르면 1946년 10월항쟁 가담자, 국민보도연맹원, 대구형무소 수감자 등이 한국전쟁 전후 군과 경찰에 의해 달성군 가창면, 경산 코발트광산, 칠곡 신동재 등에서 집단 사살됐다. 민간인 희생자는 대구경북에만 수 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가창골에서만 1만여명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1959년 이 곳에 댐이 들어서면서 조사나 유해 발굴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에 따라 20대 국회에서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규명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 등이 10여건 발의됐지만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다. 대구시도 2016년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위령탑 건립을 추진 중이지만 장소 선정 단계에서 달성군·가창면과의 협의가 되지 않아 2년째 미뤄지고 있다.
프레시안=평화뉴스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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