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제주4.3 참극의 기폭제가 됐던 3.1기념운동. 70여년 만에 역사의 현장을 찾은 노(老)작가는 격정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뿌리부터 어긋나버린 조국에 대한 깊은 탄식, 그리고 아직도 채 회복되지 못한 본향 땅을 살아가야 할 후대를 위한 외침이었다.
제주도교육청과 제주북초등학교는 4.3추념식 다음날인 4일 오후 4시 제주북초 체육관에서 4.3을 대표하는 대하소설 <화산도>의 저자 김석범(92) 작가 초청 강연회를 가졌다.
재일제주인인 김 작가는 지난 1957년 최초의 4.3소설 <까마귀의 죽음>을 발표해 일본 사회에 4.3의 진상을 알렸고, 1976년부터 1997년까지 12권 분량의 제주4.3 대하소설 <화산도>를 집필했다.
김 작가의 <화산도>는 제주4.3이 발생하기 직전인 1948년 2월 말부터 이듬해인 1949년 6월까지 해방직후 혼란스러운 정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역사의 격랑에 휩쓸린 민중의 슬픈 역사를 애도하는 진혼곡, 야만적인 폭력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존엄을 외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날 특강이 열린 곳은 71년전 발발했던 군경의 발포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당시 한 어린이가 기마경찰의 말에 치이면서 도민들의 저항을 샀고, 결국 민간인에 대한 발포가 이뤄지면서 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주도민들은 총파업을 진행했고, 결국 '빨갱이의 섬'이라고 낙인 찍혀 4.3이라는 핏빛 학살이 시작됐다.
이석문 제주도교육감과 김동현 문학평론가가 함께 한 특강은 참석자들의 질의에 김 작가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첫 질문은 김 작가가 전날 열린 행사에서 '4.3민중항쟁'이라 쓰인 백비(白碑)가 세워질 때 눈물을 쏟아낸 사연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김 작가는 "4.3은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50년 동안 침묵을 강요당해왔던 것 아니냐"며 "역사적인 일이기 때문에 눈물이 났던 것 같다"고 소회를 전했다.
그는 '백비'를 세우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닌 4.3의 정명(正名)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원래 비석이라는 것은 누인채 안치하는 것이 아니다. 햇볕에 쪼이고 비바람도 맞아야 하는 것"이라며 "4.3을 죽은 사람 마냥 뉘어서는 안된다. 4.3이 살아났다면 이제 비석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4.3이 '기억의 말살'에 갇혀있었다고 했다.
그는 "기억의 말살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막강한 권력에 의해 벌어진 '기억의 타살'이다. 이승만부터 시작해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기억의 말살이 이뤄졌다. 두번째는 피해자 스스로 두려워서 자기의 기억을 잊어버리는 '기억의 자살'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잃기도 한다. 자연히 제주도민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게 됐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한참 동안 4.3이 발발하게 된 배경과 그 역사를 설명한 김 작가. 그 시절을 직접 보고 느낀 그의 증언은 생생하고 힘이 있었다. 간간이 그는 "제주 땅에 살면서 4.3의 진실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며 참석자들에게 짐짓 호통을 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김 작가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제대로 정립돼야 함을 강조했다. 특히 건국 과정에서의 문제를 후대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함을 거듭 당부했다.
"<화산도>를 쓰게 된 원인은 단순한 게 아니다. 일본에 대한 원망이 있고, 친일에 대한 증오가 있었다. 나는 일본보다 친일파가 더 밉다. 우리 동포다운 행동을 했어야 했는데, 우리 민족을 다 팔아먹고 다닌 치들이 이전부터 있었다"고 회고한 그는 "그런 친일파들이 해방 후에 이승만 정부의 기초가 됐다. 감히 뻔뻔스럽게"라며 울분을 토했다.
김 작가는 "한국의 역사가 이승만의 거짓 헌법 전문으로 시작된 것이다. 4.3 역시 '친일'과 '반공'을 무기로 한 이승만 정권이 자신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제주라는 섬을 말살한 사건"이라고 단언하며 "이런 말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거슬릴 수 있겠지만, 앞으로는 이 문제가 분명히 해결돼야 한다. 역사가들이 연구를 많이하면 반드시 바로잡힐 역사"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4.3의 완전한 해결'은 아직 요원하다는 평가도 내렸다.
김 작가는 "최근 '4.3의 해결'이라는 말이 어떤 뜻으로 쓰이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우선적으로는 유가족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보상 뿐만 아니라 4.3에 의해 생긴 정신적인 고통, 응당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걸음은 '4.3정명' 작업을 통해 시작돼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해결이 되려면 '왜 4.3이 일어났느냐'가 명확해야 한다. 4.3의 원인과 경과가 나와야 하지 않겠나. 4.3은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다"며 "결말이 나기 위해서는 첫 걸음은 4.3의 정명이다. 완전한 해방을 위해서는 정명비(碑)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한편, 이날 특강에는 제주지역 교사들을 비롯해 4.3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어린 학생들도 대거 참석했다. 최근 자체적으로 제작한 '4.3배지'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던 대정고등학교 학생들은 직접 만든 배지를 김 작가에게 달아주기도 했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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