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단적인 예가 '박찬종'이란 잣대다. 1995년 서울시장에 나왔던 박찬종 씨의 경우에 '안철수 현상'을 대입하는 것이다. '안철수 현상'이 초반 돌풍을 이어가다 막판에 고꾸라진 박찬종 씨와 비슷한 궤적을 밟을지 아닐지를 전망하는 것이다. 언론의 이런 분석틀은 '안철수 현상'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 데서 기인한다. 기성 정치에 대한 염증 차원으로 '안철수 현상'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박찬종 씨의 이른바 '무균질' 정치와 안철수 씨의 '반한나라 비민주'를 정치적 측면에서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잘 볼 필요가 있다. '제3후보'는 박찬종 씨만 있었던 게 아니다. 멀리로는 정주영 씨와 그의 아들 정몽준 씨가 있었고, 가까이로는 문국현 씨가 있었다. 이들도 '제3후보'였다. 박찬종 씨 못잖게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제3후보'였다.
이들은 박찬종 씨와 달랐다. 박찬종 씨가 '무균질' 정치를 내세워 정치개혁에 올인하다시피 한 반면 이들은 상대적으로 '경제'에 방점을 찍었다. 정주영·정몽준 씨의 '성장담론'을, 문국현 씨는 '공존담론'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달랐지만 정치 아이콘이 아니라 경제 아이콘을 앞세워 제3의 유권자층을 흡수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 안철수 서울대 교수 ⓒ프레시안(자료사진) |
'안철수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점을 같이 봐야 한다. '새 정치'에 대한 열망 못잖게 '새 경제'에 대한 열망이 같이 녹아있는 점을 봐야 한다.
이렇게 보면 '박찬종' 잣대는 반쪽짜리다. 그 잣대는 '새 정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새 경제'에 대한 대중의 열망까지는 재지 못한다. 따라서 첨가해야 한다. '박찬종' 잣대 외에 또 하나의 잣대를 추가해야 한다. 바로 '문국현' 잣대다. 닮아있다. 안철수 씨가 얘기하는 기업 생태계는 공정한 시장을 구축해 공존기반을 다지려 한다는 점에서 문국현 씨의 경제철학과 일맥상통한다.
그럼 어떨까? '박찬종' 잣대에다가 '문국현' 잣대까지 추가해 놓고 재면 안철수 씨의 미래에 대해 어떤 진단이 내려질까?
얼핏 봐선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 같다. 박찬종 씨나 문국현 씨나 결국은 기성 정치질서의 벽을 넘지 못했으니까 '안철수 현상' 역시 '반짝' 현상에 그치고 말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달리 볼 필요가 있다. '환경'을 고려하면 달리 볼 여지가 충분하다.
정치적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박찬종 씨가 대선에 도전한 1992년, 그리고 서울시장에 출마한 1995년은 모두 3김정치 시대였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김영삼·김대중 씨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던, 다시 말해 고정 지지층의 충성도가 대단히 높았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 그 때에 비해서는 고정 지지층의 충성도가 약화된 상태다. 정치적 틈이 더 벌어져 있는 것이다.
경제적 환경 또한 크게 바뀌었다. 문국현 씨가 출마했던 2007년 대선에서 대중은 성장담론을 앞세운 이명박 대통령에게로 쏠렸다. 문국현 씨의 공존담론에 호응을 보인 사람들은 전체 투표자의 5.8%, 상대적 진보층만이 표를 던졌을 뿐 제3의 유권자층 대부분은 이명박 대통령에게로, 그의 성장담론에 쏠렸다. 하지만 파탄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성장담론은 집권 4년 동안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더불어 확산되고 있다. 나눔없는 성장이 갖는 허상이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면서 대중의 정서가 급속히 공정과 분배 담론으로 쏠리고 있다. 문국현 씨가 뛰었던 2007년에 비해 공존담론이 주효할 수 있는 바탕이 더 튼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씨가 박찬종 씨나 문국현 씨와는 다른 정치궤적을 그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나머지 하나의 요인만 해결한다면 그렇다. 제3후보, 제3세력이 갖는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대중적 의구심만 떨쳐내면 그렇다.
이 문제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가는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씨가 박원순 씨와 '개인적' 후보 단일화에 나선다고 한다. 이를 통해 '범야권'에 몸을 실을 공산이 크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마지막 장벽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안철수 씨가 서울시장 후보가 되던 안 되던 '안철수 현상'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 씨가 "응징" 대상으로 지목한 한나라당이 격분해 검증을 벼른다고 하니까 시련이 없지 않겠지만 어차피 이는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이 검증파고만 무사히 넘는다면 '안철수 현상'은 사그러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다만 서울시장 출마 여부에 따라 '폭발'과 '잠복'의 차이만 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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