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까지를 포함해 시중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두관 경남지사, 안철수 원장, 박원순 이사 등이 요즘 주로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으나,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잠룡(潛龍)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느낌이다. 민주당과 그 잠룡들에 대해서는 작년 전당대회(2010년 10월3일)를 앞두고 필자가〈프레시안〉에 쓴 칼럼(2010년 9월27일자 "조랑말 세 마리, 무대에서 내려오라" ⇒바로가기)을 통해 소회(所懷)를 밝힌바 있다.
특별히 더 말을 보탤 큰 상황변동은 없다. 허나 그 전당대회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민주당 모양새와 관련해, 몇마디 아쉬움을 말해 본다면 이렇다. 내부적으로 기대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한마디로 손학규 씨가 당대표 된후 민주당은 한 일이 없다. 분당 재보선에서 손 대표 스스로 당선되면서 적지 않은 점수를 땄으나, 그때뿐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그 점수 모두 다 까먹었다. 당이나 손 대표의 지지율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이렇게 죽을 쑤고 있는데도 그랬다.
사실 그 분당 선거에 대해서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분당 재보선은 손대표가 당선된 선거가 아니라, 강재섭 씨가 낙선한 선거라는 것이다. 야권의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도, 모든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이사장이 손 대표를 확실히 추월했다. 설사 문재인 이사장이 대선후보를 포기하더라도, 그 자리에 김두관 지사가 나서리라고 보는 사람들까지 적지 않다. 서울시장 재보선 후보도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이사의 폭발적인 기세를 부인할 사람이 거의 없어 보인다.
손학규 대표는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야권통합후보'를 세우자 제의했고, 문재인 이사장의 '혁신과 통합'은 총선과 대선을 염두에 둔 '통합'을 겨냥하고 있다. 그 두 선거의 '야권통합후보' 논의에서도 제1야당인 민주당은 중심권에 설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로 자기네 후보가 있을지 없을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 보기에는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 이사장의 '혁신과 통합'은 오늘(6일) 창립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한다.
요컨대 문제는 대선과 서울시장 재보선의 주연급 후보가 모두 민주당 밖에 있는 인사들이고, 그들 모두가 민주당에 대해 거의 전혀 매력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이 흡인력을 상실했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민주당과 손 대표가 처한 뼈저린 현실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내부 아닌 외부에서 야권인사들이 민주당을 '소 닭 보듯'하면서, 결집하고 몸집을 불려 갈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민주당이 어떻게 이어져온 정당인데, 제1야당이면서 적어도 지금, 불임(不姙) 정당의 길을 걸어가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이야기다.
손학규 대표의 '한나라당 전력(前歷)'과 리더십, 특히 판단력을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햇볕정책과 관련해, 한나라당 냄새 물씬 풍기는 "종북(從北)"이니 뭐니 하기도 했다. '한·EU FTA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KBS 수신료 합의' 사건도 일어났다. 다른 곳도 아닌 국회의 당 대표실에서 최고위원들이 따로 논의한 내용들이, 그것도 KBS에 의해 그대로 도청돼 한나라당에 건너간, 지극히 엄중한 사건이 일어났다. 희안한 것은 그게 지금 '별 반발도 없이 조용한 가운데' 유야무야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사건이 일어난 게 6월23일이었다. 그 나흘 뒤에 손학규 대표는 청와대에서, 별 내용도 성과도 없이, 이명박 대통령과 단 둘이, '그저 밥만 먹고 오는' 영수회담을 했다. 가서는 안될 자리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부에서 '골품제(骨品制)' 이야기가 나도는 가운데, "누구는 천골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상왕(上王)'들의 '수렴청정'에 따라 주민등록 옮겼다는 사람 소문도 떠돈다. 대충 이게 지금 민주당 쪽의 집안 사정이다. 아쉽고 또 아쉽다.
필자는 앞서 말한 작년 9월27일자 칼럼의 말미에 조랑말 아닌 준마(駿馬)에 대한 '기다림'을 썼었다. 필자 나름으로는 201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맞서 기세좋게 천리길을 짓쳐나갈 준마(駿馬)에 대한 '대망론(待望論)'이었다. 지금 민주당에 그 같은 준마는 없어 보인다. 아직 결론을 내 단정하기에는 이르지만,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 대선후보 선두로 떠오른 문재인 이사장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문재인 이사장이 노 전 대통령을 넘어서는 '자신의 얼굴'을 만들어가야 것은 대선후보로 나서려면 필수적인 과제다. ⓒ뉴시스 |
우선 지역적으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절대 지지권역인 영남에서, 지지표를 둘로 나눠 가질수 있다는게 강점으로 비쳐지고 있다. 경남 태생인 그가 부산 경남에서 우위를 확보한다면 '일을 낼'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그의 현실적인 강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거의 평생을 함께 해온 '동반자'라는 이력인 듯하다. 말하자면 '노무현의 적통(嫡統) 후계자'라는 이야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추구하던 민주주의 가치를 이어 받아 발전시킴으로써, 지금 뒤틀릴 대로 뒤틀려 있는 이 나라를 '정상화(正常化)' 시킬 수 있으리라는 사람들의 기대가 다른 무엇보다 큰 것 같다.
'권위주의의 탈피'와 '반칙 없는 공정한 사회', '혁신과 분권' 이런 것들을 신념으로 지켜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생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끈끈히 남아 있어서일 것이다. 특히 대통령 노무현이 분권을 추진하며, 삼권분립체제를 굳건히 뒷받침하면서, 지자체에 많은 권력을 나눠주고, 국정원이나 검찰등 권력기관을 '사유화'하지 않은 것은 MB정권과 너무나도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다. 그가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과 실천은 그 하나만으로도 더 할바 없는 공적으로 남는다.
문재인 이사장은 최근 펴낸 '운명'에서 '살아 남은자의 책무'에 대해 말했다. '그가 남기고간 숙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썼다. "이제 노무현 시대를 넘어선 다음세대를 준비해야한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기고간 숙제를 가장 확실하게 풀어내며 다음시대를 준비해야할 책무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따지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적지 않은 과오가 있다. 국민들 마음에 상처를 준 대목도 있다. 그것 역시 그가 남긴 숙제다. DJ는 평화적 정권교체와 정권 재창출까지 이뤄냈으나 노무현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대통령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MB정권이 들어섰고, 지금 국민들이 이 고생을 하고 있다. 좀 심한 말로 "국민들에게 재앙을 안겨준 셈"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동서 화합을 이뤄내지 못한 것도 그의 과오다. 호남 고립주의를 배격하기 위해 노력은 했다하나 결과적으로 영남 패권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 특히 "이뻐서 날 찍어준 줄 아느냐 이회창 씨 미워서 찍었지" 이 말 한마디가 호남사람들에게 안겨준 상처는 결코 작은 게 아니었다. 그럴만한 '분명한' 사정은 있었으나, 어찌됐건 그는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집권당을 분열시킨 대통령이기도 했다. DJ에 대한 대북송금 특검도 결행했다. 다른 정당도 아닌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추진하면서 그 많은 지지자들에게 아픔도 안겨줬다.
그렇게 아파한 사람들을 따스하게 손잡아 주지 못한 것은 '노무현의 채무'였다. 그것도 자신의 '채무'임을 문재인 이사장은 잊어서는 안된다. 후계자로서의 도리다. 그런게 다 '통합'이기도 하다. 그런 결의도 필요하다.
물론 '재목으로서의 문재인'에 대해서는 아직은 더 지켜봐야한다. 그러나 '운명'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면 그는 이제 스스로 '자기의 얼굴'을 만들어 가야 한다. 다음달 서울시장 재보선 이후 정치판에는 한바탕 태풍이 올지도 모른다. 또 내년 총선 이후에는 젊은 사람들과 한바탕 격한 경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자기 얼굴'은 그래서 필요하다. 그렇게 노무현으로부터도 자유스러워져야한다.
항상 바라보며 추구해야 할, 양보 못할 가치는 '나라의 정상화'다. 그가 어떤 길을 걷건, 그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목표 삼고 걸어가야 할 가장 큰 명제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이 나라가 지금 엉망의 수렁에 빠져있어서 거듭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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