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틀어졌던 노사정간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그간 진행돼온 '노사정위원회'라는 틀을 벗어나 '사회적 대화'로 외연을 넓혔다. 그 일환으로 지난 1월 31일 첫 노사정 대표자 6자 회의가 열렸다. 오는 4월 3일에는 2차 회의가 열린다.
이 자리에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그리고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이 참석한다.
그간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았던 민주노총도 이번 대화에는 참여했다. 정부가 기존 노사정위원회 틀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대화 기구를 수용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쉽지 않다. 노사정간 이해관계는 씨줄 날줄로 복잡하게 꼬여있기 때문이다. 그간 단 한 번도 노사정위의 합의가 성공한 적이 없는 이유기도 하다. 반면, 양극화가 심화된 한국 사회 구조 속에서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은 모두가 동의한다. 지금 상황과 관련해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사회적 대화를 '후퇴할 수 없는 지뢰밭 건너기'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어렵게 마련된 대화의 자리에서 소기의 성과가 만들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중요한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간 민주노총은 노사정위를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참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사용자보다 힘이 약한 노동자가 협상 테이블에 참여해봤자, 이용만 당한다는 것. 과거 노사정위가 노동계의 희생만을 강요했던 것도 주효했다. 정부의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두말 할 나위없다. 노동운동 1세대의 대표 격인 문 위원장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만드는 데 주요 역할을 했다. 민주노동당 당 대표를 비롯해 민주노총 금속연맹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일명 노동계 '통'이다. 그런 그를 두고 보수언론에서는 노사정위가 노동계로 기울어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에게서 앞으로 진행될 노사정위의 의제, 노사정위에서 정부의 역할, 그리고 노동운동 1세대로서 노동계에 바라는 점 등을 들어보았다. 그와의 인터뷰를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아래 그와의 인터뷰 내용.
"나의 소신은 격차해소"
프레시안 : 뒤늦게나마 위원장으로 취임한 것을 축하드린다. 지난 8월에 임명됐다. 그리고 올해 1월부터 노사정 대표회의를 주재했다. 민주노총이 8년 2개월 만에 복귀한, 오랜만의 모든 구성원이 참석한 자리였다. 소감이 어떠신지 묻고 싶다.
문성현 : 우선, 먼저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왜 제가 노사정위 위원장이 됐느냐에 대한 답변이다. 저는 1980년대부터 민주노조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1999년 민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을 맡았다. 그때 우리가 논의한 게 '산별노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기업별 노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격차가 당시는 10 : 8 정도였다. 물론, 어떤 경우는 이보다 더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특수한 제품만 만드는 하청은 대기업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았다. 이런 구조에서 금속노조(산별노조)는 (원·하청에 상관없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다. 그것이 산별노조로 가는 길이라 생각했다.
프레시안 : 원·하청간 임금격차를 없애고 통일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위치에 따라 노동자간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성현 : 어떻게 그것을 만들어낼지를 고민하다 상박하후(上薄下厚)를 생각했다.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보다 약하니, 이를 보전하기 위해 조합원 임금에서 2%, 회사에서도 2%, 정부도 2%의 기금을 내서 이들 격차를 줄이는 기금을 만들자고 했다. 그렇게 모은 기금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을 단계적으로 좁혀가는 구조를 논의했다.
프레시안 : 대기업 노동자 입장에서는 싫을 듯하다. 자기들이 손해를 보는 논의 아닌가.
문성현 : 맞다. 이런 논의가 있자 금속노조를 만들 때, 대기업 노조가 빠져나갔다. 그 결과, 지금도 교섭은 (기업별로) 따로 한다. 격차를 줄이려던 시도가 실패한 셈이다.
프레시안 : 민주노동당 대표 시절에는 비정규직 문제를 가장 중점적으로 다뤘던 듯하다. 노무현 정부 때, 터진 이랜드 사태에서 적극적으로 결합했다.
문성현 : 제가 민주노동당 대표를 할 때, 비정규직 문제가 커졌다.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주된 관심사였다. 그렇기에 주요 활동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다. 나도 비정규직 투쟁이 있을 때마다 현장에 갔다. 그러면서 좀더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됐다. 비정규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되기 어렵다면 처우라도 개선됐으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당시 당 대표 발의로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비용 마련으로 대의원대회에 사회연대임금안을 올렸다. 민주노동당 당원이 있는 주요 노조에서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임금의 1% 내자고 했다. 그리고 정부와 사용자에도 이를 요구하자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대의원들 반발에 부딪혔다. 우리가 왜 먼저 돈을 내느냐는 식이었다. 대기업 노동자 책임론과 같은 게 아니냐는 질타가 이어졌다. 당시만 해도 민주노동당이기에 당연히 대의적으로 찬성하지 않겠나 싶었다. 그런데 노조는 또 달랐다. 민주노동당을 하면서도 격차를 줄이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이후 창원 시장에 출마를 했다. 그때도 내세운 게 생활임금이었다. 시장이 되면, 500억 기금을 마련하고, 이후 창원 내 노조 중심으로 도합 1000억의 기금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 뒤 중앙 정부의 지원을 받아, 최저임금보다는 1000원 더 붙은 생활임금을 주겠다고 공약을 냈다. 그런데 안 됐다. 이런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제가 그간 격차해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양극화, 어디에서부터 풀지 고민해야 한다"
프레시안 :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낙선 이후 무엇을 했나.
문성현 : 다 끝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뒤통수가 이상했다. 당에서도, 노조에서도 할 일이 없으니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지만 항상 이 문제(격차)가 마음에 남아있었다. 그러다 2012년에 문재인 변호사가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이전에 못했던 것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때는 관심이 최저임금이었다.
프레시안 : 왜 그렇게 생각했나.
문성현 : 격차해소 해결을 어디에서 시작하느냐가 중요했다. 청년들이 대학 졸업 이후 갈 곳이 없다. 최저임금이 너무 낮고 (기업 간) 격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10개 일자리 중 아주 좋은 일자리는 2개였다. 단순화해서 대기업 정규직이 2개였고, 나머지는 모두 안 좋은 일자리였다. 극단적으로 양극화돼 버렸다. 게다가 최저임금은 1만 원도 안 된다. 생활이 안 됐다. 중소기업에 가봐야 격차로 미래가 없었다. 그 고민을 하면서 문재인 변호사가 대통령이 된다면 다른 건 모르겠으나, 최저임금 1만 원은 꼭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프레시안 : 최저임금 1만 원. 이것은 사실 주장하는 것은 쉽지만 이에 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는가가 중요하다. 즉, 해야 한다는 당위성보다는 '어떻게'라는 프로세스가 더 중요하다.
문성현 : 이제까지 제가 주장했던 것을 그대로 여기에 도입하고자 했다. 최저임금 인상분, 즉 사회적비용을 노사정이 1:1:1로 부담하는 것을 생각했다. 사실 저는 그간 이와 관련해서 노조도 설득하지 못했고, 노조 활동가도 설득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중도 설득 못했다. 그런데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그 대통령을 통해서 제가 생각한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문재인 변호사가 대통령되면, 최저임금위원장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최저임금 1만 원을 만들면 저는 마음 편히 농사지으러 내려가려 했다.
프레시안 : 생각보다 조금 더 큰 직책을 맡게 됐다. 그렇다면 현재 위치에서 무엇을 하려 하나.
문성현 : 사용자, 노동자 대표자들이 모여 좋은 일자리, 사회 양극화, 4차 산업, 고령화, 저출산, 노동기본권 등을 함께 논의하는 것에 합의했다.
프레시안 : 지난 1월 회의에서 그런 의제를 비롯해 앞으로 논의할 의제를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문성현 : 저는 이것을 종합하면 '양극화'라고 생각한다. 왜 좋은 일자리는 없을까, 청년 일자리는 왜 문제가 되는가. 고령화·저출산은 왜 발생하는가. 저는 이러한 문제는 양극화를 해소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최저임금과 마찬가지로 양극화 관련해서 모두가 이에 대한 문제는 인식한다. 다만, 이를 풀어가는 프로세스가 문제다. '어떻게'에 방점을 찍고 논의를 해야 할 듯싶다.
문성현 : 양극화가 왜 발생했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저는 그것의 시작이 1997년 IMF 위기 때라고 생각한다. 당시 기업은 중복투자에 대한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다 줄여야 했다. 늘었던 것이 과다채무로 도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위기에서 결국, 사람을 줄여야 하는데, 노조가 만들어진 주요기업에서의 구조조정은 노조의 반발에 부딪혔다. 그렇다보니 구조조정을 하기는 했지만, 거기에서 생긴 비용은 모두 비정규직, 하청으로 넘겼다. 그것을 위기 때마다 하면서 지난 20년 동안 (양극화가) 누적됐다.
"격차해소, 이젠 때가 됐다"
프레시안 : 주요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로 들려질 수도 있다.
문성현 : 회사가 어려우니 비용절감 관련해서 해결을 해야 한다. 반면, 노조는 아무리 회사가 어렵더라도 구조조정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상황이 그렇게 돼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비용을 (하청 등에) 전가할 수 있도록 고착화됐다는 점이다. 말로는 노동자는 하나라고 하지만 안 된 거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양극화가) 그렇게 된 것이다. 이것을 어디부터 풀지를 고민해야 한다.
프레시안 : 아까 말한 것처럼 주요기업 노조에서 양보, 즉 사회적 기금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계속 실패해왔다. 이번이라고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문성현 : (주요기업 노조는) 지난 30년간 투쟁 성과로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이제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 일할 수 있나. 대부분 하청이고 비정규직이다. 그런 현실을 가지고 현장 노조간부들이 (현장 노동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사회적 기금 관련) '임금을 좀 더 내자, 회사도 교섭해서 돈을 내게 하자, 그래서 협력업체에 주자'.
지금까지는 어려웠으나 이제는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상당히 여유있는 노동자가 생겼다. 이는 그간 투쟁의 성과다. 그러나 이로 인해 격차가 생겼다. 이전에는 노동자와 노동자의 연대.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하나라면서 공동의 목적을 만들고 실행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하지만 안 된 게 벌써 30년째다.
당장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이 자기네보다 먼저 잘리는 것에 책임감도 없고 연민도 없다. 내가 안 잘리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현실에서는 안 먹힌다. 남의 일이다. 다만, 지금 때가 됐다는 건, 1987년 투쟁세력의 아들, 딸들이 직접 취업할 때가 된 것, 그리고 그들이 몸으로 느끼기에도 아이들이 자기 자리에 올 수 없다는 게 보인다. 대기업에서 더는 사람을 뽑지 않는다. 이를 인식하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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