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년 전 선사시대의 인류가 21세기 대구광역시 대로변에 나타났다. 시기를 앞당겨 너무 일찍 나타났나?
그냥 나타난 것이 아니라 거대한 괴물로 등장해서 현대인들의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대구시 달서구 진천동 상화로. 대구수목원 입구 삼거리 대로변에 원시인이 등장했다. 길이 20m, 높이 6m의 대형 조형물은 어찌 보면 못나고 무심한 인상의 잠든 듯 누워있는, '2만년의 역사가 잠든 곳'이라는 이름의 대형 조형물이다.
농촌마을이었던 월배 진천 일대에 아파트촌이 들어서고 본격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이곳에서부터 월암동 선사공원까지 북쪽으로 3km에 걸쳐 선사시대의 유물들, 고인돌, 집터 등이 출토되기 시작했다. 진천동 사적 411호로 지정된 선사공원도 이 일대에 있다.
달서공원은 이 일대를 선사시대 유적지로 정하고 2017년부터 5억원을 들여 본격 개발하기 시작했다. 공원을 만들고 고인돌을 옮기고 도로변 가로등을 선사시대 조형물로 꾸미고 10여 곳 민간인 건물 외벽을 사냥하는 원시인 모형으로 조성하는 등 선사시대 유적거리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원시인의 조형물을 만들어 이 일대가 선사시대 유적지임을 알리고 또 이를 광고물로 만들어 관광객 유치 효과도 거두겠다는 욕심을 부린 것이다. 원시인 조형물은 그렇게 탄생했다. 최고의 역사성을 가진 돌을 보존하고 자랑하는 것은 우리 문화를 지키는 길이고 지역을 홍보하는 훌륭한 관광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억원을 들인 원시인 조형물은 이 지역 출신 유명 광고인 이제석 씨가 작품을 맡았다. 지난해 시작된 조형물 제작은 올 2월 말 완공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조형물이 철구조물에 콘크리트를 쏟아부으면서 외형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흉칙하게 변하고 있다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달서구청은 조형물이 서류상 완공된 상태라고 밝혔다.
지역민들은 철거를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조형물을 바로 눈 앞에 두게 된 식당과 교회는 앞장서서 반대하고 지역민들이 집단 항의하는 사태를 불러왔다. 주민들은 구청장을 집단 면담하고 달서구의회에 '진천동 원시인 조형물 철거 청원'에 2천여 명이 서명하는 등 각계에 진정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반대하는 주민들은 구청의 행정 처리가 마뜩치도 않고 미덥지도 않다. 주민 항의를 받았으면 당장 공사를 중단하고 반대하는 주민 의견을 들어봐야 할 것인데 공사에 속도를 더 냈다며 분개한다.
"처음 시작할 때도 제대로 된 주민설명회를 거치지 않았다. 공사를 시작할 때보다 완공 단계로 들어서면서 더욱 흉물스러워졌다. 뒷모습은 더욱 기괴하고 흉측스럽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짐나 날마다 조형물을 쳐다봐야 하는 주민들의 입장을 헤아려 줘야 한다. 조형물로 인해 가뜩이나 복잡한 입구 도로가 더욱 교통난이 가중된다. 조형물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자칫 사고 위험도 있다."
주민들의 불평과 불만은 끝이 없다. 특히 관광홍보물이 들어설 자리도 아니고 공공시설물도 아닌데 공사에 항의하는 주민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 구청 행정 방식에 분개하고 있다. 당장 피해를 보는 주민들을 외면하고 외곽 여론으로 시간 벌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 이제석 씨는 아직 작품이 진행중이고 뒷 부분은 주민 의견을 수렴해서 조명도 설치하고 그림도 그려 흉칙하다는 부분을 보완 수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취재 이후 구청에서는 뒷부분에 일부 조명을 설치하고 벽화를 그려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술품은 시간이 지나면 평가도 달라질 것이라며 주민들의 이해를 구한다. 이 씨는 제작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했고 또 너무 협조적이어서 감사했는데 뒤늦게 항의가 들어오고 또 과격하게 제작을 방해하기도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무엇보다 이 씨는 이야기가 일방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기도 전에 일부 의견이 과대 포장돼 지역의 메리트를 떨어뜨리는 격이 돼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낯설고 의외성까지 갖춘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일이 그렇게 욕 먹을 일인지 되묻는다.
달서구청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공사를 시작할 때 주민들이 잘 협조해 주었는데 조형물 공사가 완공단계에 들어서자 뒤늦게 항의하고 있다며 처음부터 반대했다면 공사가 시작했겠느냐고 한다. 뜻밖의 난관을 만났다는 반응이다. 지금 외형 공사는 끝나고 뒷마리리로 조형물에 무드 조명까지 설치했다고 한다.
공사비도 공사비지만 워낙 대형 조형물이라 철거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는 것. 무엇보다 주민들 중에는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고 아직 설치 단계라 생소하지만 순리적으로 해결할 시간을 달라는 입장이다.
철거 청원을 접수한 달서구청은 4월 중 열리는 임시회에서 이 문제를 안건으로 상정할 예정이다.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역민을 몰아세우기에는 지역민들의 불만이 더 커 보인다. 저런 흉칙스런 괴물을 날마다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주민들의 고통을 생각해 보라는 항의에 참고기다려보자고, 여론을 수렴해서 결정하겠다는 구청의 입장과 세계적 볼거리가 될 것이라는 제작자의 의도를 몰라준다고 서운해 하기보다 지역민들과 함께 상생하는 방법은 없을까.
지역 주민들은 말한다. 물론 찬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평화롭던 지역에서 원시인 조형물로 지역민 간 갈등을 조장해서야 되겠느냐고.
2만 년 전 이 지역에 살았다는 선조가 현대에 나타나서 주민들의 갈등을 일으키고 있으니 원시인은 다시 몇 년을 더 기다렸다가 나타나야 하나? 장소를 바꿔서 등장해야 하나?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