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자기 입으로 말했다. "시장직을 건다면 투표율이 5% 정도 높아질 수 있다는 예측이 있어 유혹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얘기하는 5%가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 성립요건인 투표율 33%를 달성하기 위한 5%인지, 아니면 33%를 초과하는 5%인지 불분명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것이 어떤 경우든 결과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주민투표 성립요건인 투표율 33%를 채우려면 서울 유권자 가운데 278만 명이 투표를 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민주당이 주민투표 불참운동을 전개하고 있어서만이 아니다. 다른 근거가 있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 서울 유권자가 268만여 명이었다. 그 어느 선거보다 투표율이 높은 대선에서, 그 어느 대선보다 지지세가 강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당시 얻은 서울지역 득표수가 주민투표 성립요건보다 10만 표 정도 적었다.
이때의 득표수를 근거 삼아 주민투표 성립 시나리오를 짜면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 유권자 전원이 투표에 참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여기에 최소 10만 명 이상의 서울주민이 더 참여해야 한다.
▲ 오세훈 서울시장.ⓒ프레시안(최형락) |
하지만 현실은 암담하다. 투표 참여 요인보다는 불참 요인이 더 많다. 2007년 대선은 휴일이었던 반면 주민투표일은 평일이라는 점,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투표 불참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 2007년 당시의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지세가 확연히 줄었다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결코 간과해선 안 될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친박계다. 이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오세훈 시장을 향하는 시선이 그렇고, 주민투표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
친박계의 이런 시선이 박근혜 의원을 지지하는 서울 유권자에게 전달되면 보수층 안에서도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진다. 보수층이 총동원 돼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커다란 이탈요인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바로 이 점을 의식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모양인데 이 판단 또한 잘못됐다. 친박계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오세훈 시장의 몸집이 커지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다.
친박계 입장에서 그건 경계해야 할 현상이 아니라 불감청고소원에 해당하는 현상이다. 상상해 보라. 대선 후보를 뽑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 의원이 독주를 하면, 고래와 피라미의 싸움으로 전개되면 흥행이 이뤄지겠는가. 박근혜 의원 입장에서 적당한 체급의 '스파링 파트너'는 환영할 손님이지 경계할 적이 아니다.
친박계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는 웰터급에 불과한 오세훈 시장의 체급이 순식간에 헤비급으로 격상하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다. 친박계가 진심으로 꺼려하는 것은 오세훈 시장이 초치기를 하는 경우다. 주민투표를 성공으로 이끌어 복지담론에 초를 치는 경우다. 이러면 복지담론에 한 발 걸치고 있는 박근혜 의원 또한 야당 못잖게 타격을 입는다.
오세훈 시장이 과대망상에서 벗어나려면 자기애에 빠진 시선을 거두고 냉정한 눈길로 봐야 한다. 보수층이 아니라 중도층을 봐야 한다. 이들을 설득해 일단 주민투표 성립 요건을 채우고, 그 속에서 과반 득표를 꾀해야 한다.
하지만 어쩌랴. 이들은 평일인데도 만사 제쳐두고 투표장으로 향할 만큼 오세훈 시장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다. 오세훈 시장의 애끓는 심정만큼 이들의 감정이 뜨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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