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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론으로 평가받는 '가을야구'의 용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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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론으로 평가받는 '가을야구'의 용인술

[프레시안 스포츠] 결국 작전을 완성하는 건 감독 아닌 선수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 축구국가대표팀이 8강에 올랐다. 특유의 카리스마를 버리고 선수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한 '소통의 리더십', 확실한 스타는 없지만 잘 짜인 조직력의 축구도 덩달아 격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카메룬과의 첫 경기에서 완패했을 때만 해도 홍명보호는 '스타도 없고 기술도 없다'는 냉혹한 평가를 들어야 했다. 청소년 팀이 애초에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이 경기 결과에 따라 교대로 평가받은 셈이다.

임태훈의 교체시기, '감독 용인술도 결국은 선수의 몫'

SK가 두산에 2패 뒤 2연승을 거둬 더욱 불을 뿜고 있는 프로야구 포스트시즌도 마찬가지다.

▲ 김경문 두산 감독의 '뚝심의 야구'는 2차전과 4차전에서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연합뉴스
두산이 적지에서 먼저 2승을 거둘 때, 김경문 감독의 용인술은 '야신' 김성근 감독을 압도했다. 특히 주목받은 대목은 김경문 감독의 전매특허인 '뚝심의 야구'. 2차전 1-0으로 앞선 6회 말 2사 2루 위기 상황에서 김 감독은 두산 불펜의 핵심인 임태훈을 교체하지 않았다.

상대는 2년 연속 임태훈에게 한국시리즈에서 홈런을 쳐낸 김재현이었다. 정면 승부로 임태훈은 김재현 트라우마에서 벗어났고, 두산은 2연승의 콧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4차전 임태훈의 교체시기는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미 이번 시리즈에서 임태훈에게 두 번이나 홈런을 쳐냈던 박정권에게 또 결승 2루타를 허용해서다. 김 감독은 "교체 타이밍이었지만 임태훈을 믿었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두 차례 승부처에서 임태훈을 교체하지 않은 이유는 똑같았다. 이 위기를 임태훈이 넘지 못하면 결국 SK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그것.

17타수 1안타의 확률 밀어붙인 감독의 뚝심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 롯데 강병철 감독은 원래 5번 타자 자리에 박용성을 기용하려 했다. 하지만 매니저가 받아 적은 배팅 오더에는 5번에 유두열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강 감독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타순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유두열은 한국시리즈 6차전까지 17타수 1안타를 기록할 정도로 부진했다. 롯데가 3-4로 뒤지던 8회 초. 1사 1·3루 상황에서 유두열이 타석에 들어섰다. 강 감독은 대타를 내세우려 했지만 마땅한 카드가 없었다.

이 고비에서 유두열은 통쾌한 어퍼스윙으로 3점 홈런을 쏘아 올렸고, 시리즈 MVP가 됐다. 덩달아 강병철 감독의 '뚝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마운드의 짜임새가 있는 OB 대신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롯데를 선택한 삼성은 이후 2001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는 불운에 빠졌다.

밤비노의 저주 연장시킨 보스턴 감독의 악수

1986년 월드시리즈 6차전. 시리즈 전적 3승 2패의 보스턴은 1918년 이래 패권을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1919년을 끝으로 라이벌 뉴욕 양키스로 떠난 베이브 루스의 저주도 깨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8회 초 1사 2루 상황에서 보스턴의 존 맥나마라 감독은 추가점이 필요했다. 3-2로 앞서고 있었지만 시리즈를 여기서 끝내기를 원한 셈이다. 그래서 에이스 로저 클레멘스 타석에 대타를 기용했다. 상대팀 뉴욕 메츠의 홈구장에서 펼쳐진 6차전은 지명타자제도가 없는 내셔널리그 방식으로 경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야 했기 때문.

이 결정을 내리기 직전 맥나마라 감독은 그 해 24승을 거둔 클레멘스에게 의향을 물었다. 클레멘스는 "오른쪽 중지에 물집이 잡혔다. 커브를 던질 때 통증이 있다"고 답했다. 맥나마라는 곧바로 교체를 단행했지만 보스턴은 득점에 실패했고, 메츠에 결국 1점을 내주며 피 말리는 연장승부에 돌입했다.

▲ 1986년 미 프로야구 월드 시리즈 6차전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1루수 빌 버크너는 '밤비노의 저주'를 연장시키는 결정적인 수비 실책을 저질렀다.

보스턴은 10회 2점을 얻어 승기를 굳히는 듯했다. 하지만 운명의 10회 말에서 뉴욕 메츠는 짜릿한 역전승을 기록했다. 이 와중에 보스턴의 1루수 빌 버크너는 가랑이 사이로 공을 빠뜨리는 결정적 실책을 범했다. 경기 뒤 언론은 다리 부상에 시달리던 버크너 대신 대수비 요원으로 데이브 스테플턴을 기용하지 않은 맥나마라 감독을 거세게 비난했다. 메츠는 여세를 몰아 7차전에서도 승리해 월드시리즈를 거머쥐었다.

팬으로서 스포츠, 특히 가을야구를 즐기는 최대 묘미는 복기다. "이 상황에서 차라리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고 감독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주변사람들과 얘기하는 재미다.

미국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먼데이 모닝 쿼터백'이라고 한다. 그들은 미식축구 경기가 많이 열리는 일요일에 뛰는 진짜 쿼터백이 아니라 경기가 끝난 뒤 이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상황이 종료된 후에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이란 부정적 의미로 주로 많이 쓰인다.

승부처에서 감독은 한 쪽으로만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두 갈래 길을 다 가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분석하는 건 영원히 언론과 팬들의 놀이터가 된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감독의 용인술은 작전 성공의 확률을 높여주는 것이며 정작 용인술의 완성은 선수가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경기가 끝난 뒤 감독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는 두 길을 다 갈 수 없었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주인공처럼 그의 결정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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