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복지가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했지만 안타깝게도 데이터는 복지의 악영향을 확인해주지 않았다. 압도적으로 많은 연구 결과들이 복지 확대가 경제 성장에 별로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 같다, 혹은 오히려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복지를 늘리면 경제 성장에 위협이 되고, 국가 재정까지 파탄낸다는 것은 복지 확대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논리다. 그런데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이런 주장이 완벽한 거짓말이라고 설명했다. 근거도 분명하다. 각종 데이터를 통해 그는 복지가 어떻게 성장 촉진 효과를 내는지를 보여줬다.
유종일 교수는 12일 <프레시안>과 복지국가만들기운동본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릴레이 강연 '복지국가, 왜 우리의 미래인가'에서 복지와 관련된 보수 측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 유종일 KDI 교수. ⓒ프레시안(김하영) |
프레시안-복지국가 만들기 운동본부 공동 강연 '복지국가, 왜 우리의 미래인가' ☞ 강의 신청하기 ☞ 연속 강연 소개 : '복지국가' 강연 듣고 연극 <돐날>도 보세요 ☞ 1회 : "부유세가 과격? 지하경제 절반만 줄여도 세금 20조" ☞ 2회 : "지금 30대, 2050년엔 집단 '독거노인' 된다" ☞ 3회 : 공정사회? 노동의 가치도 공정한가 |
"복지가 성장을 저해한다? 천만에! 오히려 생산성 향상된다"
유종일 교수는 "경제성장율을 결정하는 요인은 너무 많아서 복지 지출과의 연관성을 간단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복지는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무엇보다 복지를 확대하면 노동자의 건강과 교육수준, 직업 훈련이 개선되어 우리 노동력의 질, 즉 인적 자본이 우수해지고 그것은 다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전체를 놓고 사회지출과 생산성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해 본 결과다. 복지 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생산성은 오히려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프레시안 |
보수층에서 늘 강조하는 '노동유연성 확보'도 역설적으로 복지 확대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 유 교수의 설명이다. 최근의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사태를 막는 길도 역시 복지라는 것이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구조조정하기 굉장히 어려운 이유는 한 번 해고 당하면 인생이 망가지기 때문"이라며 "스웨덴과 같은 나라에서 빠른 구조조정이 가능한 이유는 현재의 직장을 잃어도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쉽고 그 사이에 생활에도 별 타격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종일 교수는 또 "복지의 자동 안정화 기능을 확보하면 할수록 경제는 더 개방적이 된다"고 말했다. 개방에 따른 위험(리스크)을 감수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경제 성장에서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사회지출 비중이 높은 이유기도 했다.
리스크를 줄여주는 효과는 사회문화적으로도 나타난다. 유종일 교수는 "복지란 결국 사회가 개인의 위험을 나눠 갖는 것이므로 내가 직장에서 잘리거나 아프더라도 사회가 나를 받춰준다는 믿음이 있다면 위험이 있더라도 해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덜 위험한' 공무원, 교사만 되고자 하는 사회 분위기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는 각 분야가 고르게 발전하는데까지 이어진다.
"수출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시키는 것은 주객 전도…일자리는 내수에서 생긴다"
ⓒ프레시안(김하영) |
그러나 유종일 교수는 "박정희 시대와 달리 현재 수출은 국민 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이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수출 산업은 굉장히 자본집약적 산업이며 1달러를 수출하면 그를 위해 50센트는 수입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형성되는 부가가치가 그리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수출을 많이 하는 대기업이 정작 고용은 별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최근들어 자주 거론되는 얘기기도 하다.
때문에 유 교수는 "수출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시키는 정책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 강조했다. 그는 "그 대표 선수가 고환율 정책인데 그 정책의 결과는 삼성과 현대만 엄청난 이득을 보고 내수는 타격을 입게됐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수출보다 더 고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는 내수다. 내수는 일자리와 직결돼 있다. 수출, 투자, 소비가 각각 얼마만큼의 일자리를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취업유발계수를 보면 투자나 수출의 취업유발계수보다 소비의 그것이 월등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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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수출보다 소비를 늘려야, 다시 말해 내수 진작이 이뤄져야 일자리도 생기는 셈이다. 그리고 내수 진작에 효과적인 것이 또 복지의 확대다.
유종일 교수는 "선진국에서도 복지의 확대가 경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는데 우리처럼 조세부담율도 낮고 복지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라에서는 복지가 경제에 도움될 일만 무궁무진하지 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복지 확대되면 나라 거덜난다고? 사회지출과 국가부채는 아무 관련 없다"
복지가 국가 재정을 파탄내고 국가 살림살이를 어렵게 할 것이라는 일각에 주장도 유 교수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사회지출이 그렇게 좋다고 치자, 그렇지만 함부로 복지 재정을 늘리면 나라가 거덜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스 봐라, 남미 봐라'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OECD 국가의 사회지출과 국가부채의 상관관계를 들여다 봤다. 압도적으로 부채가 많은 국가는 일본이고 그 외에 다른 나라들을 보면 둘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사회지출과 국가부채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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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교수는 "물론 모든 것을 보편적 복지로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많다고 그것까지 국가가 해 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적절히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 반대로 진단하고 반대로 처방…새로운 25년은 복지로"
복지가 재분배의 효과도 가짐은 물론이다. 그러나 오직 복지만으로 심각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환상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복지 예산이 상당히 늘어나고 각종 제도가 도입됐지만, 사회 양극화는 오히려 더 심각해졌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유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컸던 사각지대가 하나의 이유이고 복지는 다소 확충됐지만 그 사이 더 심각해진 시장소득의 양극화가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가 "보수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그 기간 경제민주화의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유 교수는 "보수세력은 10년 동안 경제성장을 못 해서 '잃어버렸다'고 하지만 그 기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였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생의 위기는 가중됐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반대로 진단하고 반대로 처방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성장 지상주의적 정책으로 세계 금융위기 때 다른 나라에 비해 괜찮은 성적을 거두긴 했으나 우리는 여전히 폭탄 돌리기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기가 잠복하고 있는 상태다. 금융 시스템은 더 한심해졌다. 최근의 저축은행 사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2002년에 비해 2010년 국가 부채는 4배로 늘어났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85호 크레인 농성 등 민생 위기는 분출되고 있다. 4반세기를 개발독재 체제 아래서 보냈고, 87년 이후 다시 25년을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려 보냈다. 내년이면 다시 새로운 25년이 시작된다. 산업화, 정치 민주화에 이어 새로운 4반세기는 복지의 시대로 가야한다."
유 교수의 마지막 말이었다.
ⓒ프레시안(김하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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