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검사들의 수난시대다. 성추문부터 부당 수사개입 의혹까지, 수사의 주체였던 검사들이 그 대상이 돼 수사의 칼날이 겨눠진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사실 권위 부재의 한국 사회는 검사들을 '검새', '떡검'이라 부르며 조롱한 지 오래다.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검찰 내부의 작지만 소중한 항변이 최근 책으로 출간되었다. <검사내전>(김웅 지음, 부키 펴냄).
현직 부장검사인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미 '무척 화가 나 있었'고, '검찰에 들어온 뒤 이 조직은 늘 추문과 사고에 휩싸였다'고 선언하며, '검사동일체란 원칙 하에 위에서 사고를 치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모조리 욕을 먹어야 하는 기이한 상황'을 지적한다. 이러한 일성과 함께 저자가 하려는 진짜 이야기는, 시민들이 검사의 전형을 우병우, 진경준과 같은 검사로 떠올릴 때, 꼭 그렇지는 않고 검사가 하는 일도 인간적인 것들을 포함하며 검사 자신도 본질적으로는 생활인이라는 점이었던 것 같다(책의 부제가 '생활형 검사의 사람공부, 세상 공부'다).
범죄자를 처벌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여러 이야기들 중 '산도박장 박 여사의 삼등열차' 에피소드에 나오는, 상습도박죄의 피의자인 주부가 검사와 벌이는 설전은 마치 미국의 저명한 로스쿨 교수가 진행하는 소크라테스식 수업 만큼이나 박진감 넘친다. 도박의 습벽을 버리지 못함을 자식 된 자로 이미 이해하고 있던 딸이 검찰청에 찾아와 어미를 안아주던 장면은 얼마나 기구한가. 이 일화는 피해자 없는 범죄인 도박죄를 우리가 얼마만큼이나 법으로 다루어야 할 것인지 묻고 있다.
'법이란, 법의 집행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작은 답들이 책 4부 '법의 본질'에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사실 책을 산 후 3부 '검사의 사생활'을 가장 먼저 읽었다. 그것은 부장검사라는 저자의 희소성과 맞물려, 도대체 검사가 자기 조직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라는 관음증적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악을 척결하는 이미지를 갖는 미디어 속 검사 이미지는 편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지방검찰청 집무실에 서 일선 검사들의 그 피곤한 표정들과 방마다 펼쳐지는 피의자들과의 실랑이들을 접하면 그 환상이 완전히 깨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말하자면, 검사가 하는 수사 '업무'의 대부분은, 두꺼운 서류더미들을 미리 읽고 나중에 이것을 피의자들에게 하나씩 확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단순 업무'들 사이에 어떤 긴장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 역시 회사원으로서 조직에 순응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응의 질서는 아직 일반인인 우리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에 <검사 내전>의 '고발'이 더 흥미롭다.
'회사원'으로서의 검사
그래서, 3부 '검사의 사생활'은 책에서 가장 분량이 적었지만, 역시나 내겐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이를테면, 저자가 전체 검사회의를 할 때나 검사장 고향에서 진행한 체육행사에서 소신 발언을 한 후 '또라이', '모지리', '부적응자'로 찍힌 이야기가 그렇다. 압권은 차장검사의 술자리 내기 에피소드였다.
저자가 야근을 하고 있는데 차장검사와 법원 수석부장판사가 인근 술집에서 내기를 하여, 각자 부하직원들을 호출해 어느 쪽이 더 많이 나오는지 내기를 했단다. 그때 차장검사가 저자에게 야근 중인 검사들에게 연락하여 나오도록 지시했는데, 저자는 각 부의 막내 검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차장의 지시를 전달했을 뿐 정작 본인은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음 날 내기에서 진 차장검사가 부장검사들을 모아 일장 훈시를 했고, 그 와중에 직접 호출을 받은 저자가 더 심하게 부장검사로부터 꾸지람을 듣게 된다. 그 때 저자가 했다는 말이다.
"그게 단합이면, 그럼 제가 술 마시다 차장님을 불러도 차장님이 나와주나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쯤되면 나 역시 저자의 기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회사원, 조직원으로서 하루를 버텨내는 힘은 거창한 이념이나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것 아닐까. 어쩌면 차장의 부당한 호출에 저항하는 것이 저자가 조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은 아니었을까. 학생 시절 한때 '어설픈 사회주의자'였던 저자가 스스로를 지켰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초임 시절의 기백을 부장검사가 된 지금도 온전히 간직하고 있을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인간은 적응하기 마련이고, 조직 안에서는 그 구심력을 이겨내기 어렵다. 개성이 강한 조직원 역시 촘촘한 평가와 감시를 견뎌내야만 하고 조직과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저 에피소드들에서 발견되는 저자의 어떤 '개인주의'를 응원한다. 엉뚱하지만 지금 검찰 조직에 가장 필요한 것 역시 저 개인주의자들 아닐까. 저자가 부장검사가 아니라 검사장이 되어 평검사들의 업무 권한과 발언권을 더욱 인정하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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