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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통령제를 폐지하는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기고] '황제'가 있는 한, 언제든지 '나쁜 황제'는 나타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30년의 검찰 구형이 내려졌고, 이명박 전 대통령 또한 조만간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스캔들을 넘어 국정농단에 이른 이 부패사건은 엄청나 사회적 비용을 허비하고, 우리 사회의 진보를 지체시켰다. 많은 시민들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성토하고,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수정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미국식 중임제 대통령제 안을, 자유한국당은 프랑스식 이원정부제 안을 제안했다.

'제왕적 대통령'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단어는 미국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징어 주니어(Arthur Meier Schlesinger Jr.)가 처음 사용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제왕적 대통령제(The Imperial Presidency)>(국내 미번역)에서 의회의 승인 없이 전쟁과 평화에 대해 초법적 정책 결정을 내리는 대통령의 권력을 비판했다. 다만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특징적 징표들을 다룰 뿐, 그런 체제를 유발시키는 헌법상의 근거나 다른 체제와의 차별성을 명확하게 규명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제왕적 대통령제'는 '박정희 체제'와 같은 독재 체제와 동일한 것일까? 만약 같은 것이라면 굳이 새로운 개념이 필요할까?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재임기간이 박정희 체제와 같은 독재 체제가 아니었음에도, 대통령의 지나친 권한 남용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논의의 접점인데, '제왕적 대통령제'는 독재 체제가 아닌 민주화 이후에 나타난 대통령의 독선적 권력 행사가 문제라는 점에서 담론의 존재 의의가 있다.

즉, 민주화 이후 의회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해도 의회가 결코 통제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존재 영역'이다. 그것은 의회의 결의를 요하는 법률이 아닌, 바로 행정명령 또는 행정규칙에 의한 행정권 행사 영역이다. 여기서 대통령은 의회로부터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제왕적 대통령' 영역은 '법률의 범주'가 아니기 때문에 의회의 통제 강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행정명령 또는 행정규칙에 의한 행정권 행사 영역에서, 대통령을 '제왕(Emperor)'으로 만드는 헌법적 장치는 대통령이 '1인 행정부(one-executive)'라는 사실이다. 즉, 의원내각제의 내각이 '집단적 합의체'인 것과 달리 대통령은 '단독 집행부'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독선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으며, 대통령의 독단은 그 자체로 합헌(合憲)이다. 트럼프가 집권하자마자 추진했던 불법 이민자 추방이나 멕시코 장벽 건설 등이 모두 행정명령으로 이루어졌다. 공화당도 반대했지만, 의회는 단지 비난만 할 수 있을 뿐 그 어떤 통제도 할 수 없다.

대통령은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내각의 이견을 무시할 수 있으며, 이것은 전적으로 적법하다. 그런데 대통령제 장관이 대통령 의사를 거스를 수 없는 것과 달리, 의원내각제 각료는 수상의 의지에 휘둘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독일연방기본법 제65조에 따르면 독일연방장관은 연방정부가 의결한 지침 내에서 소관 사무에 관하여 자주적으로 자기 책임 하에 처리할 수 있으며, 설령 조정이 필요할 때조차도 수상이 전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각 전체가 협의해서 연방정부의 이름으로 결정한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본질적인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이다.(다만 영국이나 일본과 같은 다수대표제·양당 체제의 대결적 의원내각제는 대통령제와 마찬가지의 제왕적 수상 체제라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 우리의 대안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의 뒷면, 교착 상태의 무능력한 대통령

제3세계의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대통령제와 정반대로 미국 대통령제의 사상적 뿌리는 '약한 정부(Cheap Government)'였다. 1787년 필라델피아에 모여 미국 헌법을 기초한 55명의 국부들은 미국 사회의 특권층으로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와 소극적인 질서유지에 치중하는 야경국가적인 정부를 선호했다. 그래서 이들은 대통령이 법률안을 제안할 수 없도록 기초했고, 한편으로 다수의 인민이 하원을 장악해 민중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지는 것을 염려해 의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결국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정부보다는 서로를 좌절시킬 수 있는 제도를 기획한 것이다.

그중 하나가 중간선거(Mid-Term Election)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미국 의회의 선거에서는 대통령 소속 정당이 대부분 승리했는데, 이를 '코트테일 이펙트(Coattail effect, 옷자락 효과)'라고 부른다. 대통령의 인기에 편승해 그의 코트 끝자락을 붙잡고 소속 정당 의원 후보들이 의회에 입성하는 모습을 빗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임기가 4년인데 반해 하원의원 임기는 2년, 상원의원 임기는 6년으로 2년마다 총 의석의 3분의 1을 다시 선출한다. 따라서 대통령 임기 중반에 실시되는 중간선거에서는 대통령 소속 정당이 의석 상당수를 잃었다. 종전에 지지를 보냈던 스윙보터(Swing Voter)들이 이탈한 때문이다. 1862년 이후 현재까지 대통령 소속 정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때는 1934년(프랭클린 루스벨트, 민주당), 1998년(빌 클린턴, 민주당), 2002년(조지 워커 부시, 공화당) 단 세 번뿐이다. 이런 중간선거로 인해 야당이 의회를 장악하는 여소야대, 즉 '분점 정부(Devided Government)'가 일상화되고 대통령과 의회가 대치하는 교착 상태에 빠진다.

결국 '제왕적 대통령'과 '교착상태에 빠진 무능력한 대통령'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양면이 미국식 대통령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견제와 균형'보다는 '전횡과 교착'이 미국식 대통령제의 보다 명료한 상징이 아닐 수 없다. 행정명령의 영역에서는 '독단적인 전횡'을, 입법의 영역에서는 '대립과 교착'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하면서, 미국식 중임제를 제안한 민주당 안은 '국민들의 무지를 볼모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이원정부제는 정말 '분권형 대통령제'일까?

프랑스식 이원정부제는 대부분 대통령이 국방과 외교 등의 외치를 담당하고 총리는 내치를 분담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도대체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일까?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 의회의 다수당일 때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고 내각을 구성함으로써 프랑스 정부는 사실상 대통령중심제로 운영된다. 에마뉘엘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공화당 출신의 에두아르 필리프를 총리로 임명하고 나머지 내각도 자신의 임의대로 구성했다. 그 후 정국운영에 있어서 필리프 총리의 독자적인 권한 행사는 있을 수 없었다.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이 시작된 이래, 드골 다음이었던 제2대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은 전형적인 보수파로 샤방 델마스 총리와 복지정책을 두고 마찰이 생겨 델마스를 해임하고 자기 측근인 피에르 메스메르를 총리로 임명했다. 3대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도 시라크를 총리로 임명했다가 경제정책에서 갈등이 생겨 시라크를 해임하고 레몽 바르를 총리로 임명했다. 대통령이 자기 뜻대로 총리를 선임하고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이상, 분권형 대통령제의 논자들이 주장하는 '책임 총리'라는 제도는 실현될 수 없는 허상이다. 즉, '책임총리'를 실현하려면 대통령이 총리를 함부로 해임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가 국민으로부터 수권 받은 대통령 의사를 거스를 때 발생하는 '민주적 정당성의 위배'라는 모순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프랑스 대통령이 총리를 해임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그것은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 의회의 소수당인 경우, 즉 '동거 정부(Cohabitation, 코아비타시옹)'인 때이다. 이 경우에도 여전히 대통령이 형식적으로 총리를 임명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의회의 다수당을 대표하는 총리가 임명되고 그가 내각을 구성하여 사실상 의원내각제로 운영된다. 다만 보통의 연립정부 형 의원내각제에서처럼 각료가 자주적으로 소관 사무를 처리하지는 못하고, 또다시 총리가 대통령처럼 '1인 행정부'로 군림하게 된다. 애초에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은 동거 정부를 예상하지 못했다. 만약 동거 정부를 예상했다면, 총리의 임명권자를 대통령이 아닌 의회로 규정했어야만 했다.

결국 프랑스식 이원정부제를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보는 견해는 동거 정부를 과대하게 일반화한 것이다. 대통령의 소속정당이 의회의 다수당인 경우 프랑스 대통령의 권한은 미국 대통령의 권한보다 훨씬 더 강하다.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반면 동거 정부인 경우에는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이 헌법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국 불안의 계기가 된다. 결국 이원적 정부는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권한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충돌할 개연성을 가지는 두 명의 '1인 행정부'가 교착상태에서 대립하는 양상을 띠게 될 뿐이다. 따라서 대통령제는 결코 분권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대통령제의 본질은 대통령 1인에게 모든 행정권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1인 행정부'로 유발되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문제는 오로지 대통령제를 폐지하는 것으로만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

민주당 안과 한국당 안 모두 '제왕적 대통령'을 더 강화한다


미국처럼 우리도 여소야대로 인한 대립과 교착의 정치적 비효율이 반복되고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도 집권 초반에 의회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부분에서는 가시적인 조치를 취했지만, 막상 의회에서 야당의 지지를 얻어야 효력을 발휘하는 입법 분야는 손도 대지 못하고, 내각 인선마저도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중간선거가 없는데도 왜 미국식 대통령제와 흡사한 여소야대 국회가 반복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대통령의 임기가 5년이고 국회의원 임기가 4년이어서, 최소공배수인 20년의 주기 외에 나머지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의 임기 중반에 치러지기 때문이다. 결국 20년의 주기로만 '코트테일 이펙트'가 나타날 수밖에 없고, 사실상 미국의 중간선거와 마찬가지의 성격을 가지게 되어 여소야대, 즉 '분점 정부(Devided Government)'가 일상화됐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하여 국회의원 선거와 함께 선거를 치르는 방식으로 개헌을 하면 여소야대의 정치적 비효율성을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한다면 '코트테일 이펙트'로 대통령의 소속정당이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민주당의 4년 중임제 안(案)의 복심(腹心)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는 제왕적 대통령의 영역이 행정명령을 넘어서 입법의 범주로까지 확장될 위험성도 함께 동반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그 인기로 2017년 6월 그의 정당인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가 제1당이 됐다. 그리고 집권 초반부터 마크롱의 제왕적인 권한 행사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18년 2월 22일 <르몽드>에 기고된 글에 의하면, "정부 인선과 정책 마련을 행정부 고위직들이 도맡아 하고 집권당의 역할이 거수기로 전락했다"고 한다. "대선 전부터 마크롱의 공약들을 만든 것은 재무부, 금융권, 내각비서실의 국립행정학교 출신 인사들이었다"면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각료들이 정책을 입안하고, 집권당은 그 정책을 승인하는 역할에 머문다는 것이다.

대통령제에서 정당은 대통령 후보를 잉태하는 역할만 할 뿐, 대통령을 당선시킨 후에는 더 이상 아무런 기능도 못 한다. 그러다가 현직 대통령의 레임덕이 올 무렵에서야 비로소 새로운 대통령 후보에 대한 산파(産婆) 역할을 다시 한다.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대통령 측근들을 중심으로 한 비선정치가 제도화된다. 그나마 여소야대, 즉 분점 정부인 경우에는 의회에서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미약하나마 존재감을 보이지만, 여대야소인 경우에는 집권당을 포함한 의회 전체가 '거수기'로 전락하게 된다. 특히나 행정부가 법률안을 제안할 수 있는 프랑스나 우리와 같은 헌법 체계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각해진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면서 미국식 중임제나 프랑스식 이원정부제의 개헌을 주장하는 것은 트럼프나 마크롱의 제왕적 권한 행사에 대해 가해지는 동시대의 비판을 노골적으로 외면하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는 '1인 행정부'라는 헌법 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합의체로서의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대안이다. '합의적 내각'으로 권력 남용을 예방하고, 다수당이 내각을 구성함으로써 여소야대로 인한 교착과 대립을 막아 정치적 효율성도 달성할 수 있다. 게다가 정부 수반이 부패나 정치적 무능력을 보였을 때 '탄핵'이라는 어려운 절차를 거칠 것 없이 의회가 내각을 불신임하는 것으로 정부를 교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2017년 3월 10일 JTBC 토론 프로그램에서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통령이 견제받지 않는 제왕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 시스템의 문제다"라고 말하자, 유시민 작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아래서 일어난 일은 헌법 잘못이 아니라 헌법을 제대로 운용 안 해서 그런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박근혜와 그 책임을 함께 하는 자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에 대한 분노를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과연 유시민의 말대로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 것일까? 유시민이 지지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 한다고 해도 우리가 항상 훌륭한 대통령을 뽑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황제'가 있는 한, 언제든지 '나쁜 황제'는 나타날 수 있다.

적대적 양당 체제를 고착시키는 대통령제

소선거구·단순다수대표제에서 후보가 3인 이상일 때 투표자가 자신의 의사를 그대로 표명하지 않고 상대적인 의미에서 차선의 결과에 투표하는 것을 '전략적 투표'라고 한다. 자신의 표가 사표(死票)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표자 스스로 자신의 의사를 왜곡하는 행동이다. 이로 인해 제3당과 제4당의 지지자들은 불가피하게 제1당과 제2당의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강요받는다. 이런 전략적 투표 현상은 대통령제에서 단연 두드러진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오직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제3당이라고 해도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어 제3당을 지지했다고 해도 자신의 의사를 왜곡하지 않고 관철할 수 있다.

비례성을 강화한 선거제도로 다당 체제를 만든다고 해도 대통령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다당 체제는 다시 양당 체제로 수렴된다. 그리고 양당 체제 아래에서는 설령 실패한 지배정당이라고 해라도 일정한 주기 이후에 다시 그 지배권을 회복한다. 지난 100여 년 미국 정치사를 보면, 민주당과 공화당이 예외 없이 주기적으로 2기(期), 즉 8년씩 집권했다. 정당 일체감을 가진 유권자들이 보수와 진보로 나뉘고, 그런 적대적 대립과 분노를 이용해 거대정당 두 곳이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것이다. 우리 역시 1987년 6월 항쟁 이후 두 개의 거대정당이 2기, 즉 10년씩 지배권을 교환했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국정운영을 잘 한다고 해도 정치판에서 '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진 부패 지배정당을 쫓아내지 못한다. 대통령제가 존재하는 한, 차기 대선에서 다시 '진보 대 보수'라는 적대적 진영으로 결집되고 종전의 구 체제는 반복된다. 더구나 이들은 새로운 정책으로 집권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실정(失政)을 계기로 지배권을 탈환한다.

국민 대다수가 가장 싫어하는 집단은 여의도 국회의원들이다. 그래서 여론조사에서 의원내각제를 가장 혐오하는 통치 구조로 꼽는다. 국회의원들이 장기적으로 권력을 유지시킬 수 있는 정부 형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부패하고 무능력한 정치인들을 계속 온존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다수대표제·양당 체제의 대통령제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면서도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는 미국식 중임제나 프랑스식 이원정부제를 제안한 민주당과 한국당의 행동은 신중하게 계획된 것이다. 대통령제가 거대양당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즉, 대통령제가 신생 정당의 발전을 억누르고 적대적 양당 체제를 온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지배자 입장에서 지배 엘리트를 긴장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계기는 '교체 가능성'이다.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지배자에게 각인시켜야만, 지배-피지배 관계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4, 5선 의원들이 거만하기 짝이 없는 이유도 이 같은 교체 가능성이 둔화된 탓이다. 또 박근혜를 타락시켰던 것도 그를 절대적으로 추종했던 '콘크리트 지지층 30%' 때문이다. 정치를 바꾸려면 정치세력 자체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제3당이 태어날 수 있어야만, 구(舊) 세력을 교체할 수 있다.(하지만 바른미래당이나 민주평화당과 같은 정당은 이 글에서 말하는 제3당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종전의 구 체제에서 이탈한 구세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새로운 제3당에 대한 지지가 전략적 투표에 의해 희생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구 세력을 쫓아내고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갈 수 있다.

무분별한 총기 규제로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트럼프는 '교사들을 무장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NBC 방송에 의하면 "무역전쟁 개시결정(보복관세)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다른 이슈에 대한 (트럼프의) 분노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한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의 최측근인 콘 경제위원장이 사임을 번복한 이유가 "(보복관세로 인한) 글로벌 무역전쟁이 촉발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제 우리는 남의 나라 폭군(暴君)을 비웃으며 우리의 성군(聖君)을 칭송하고 그 행운에 안도해야 할까? 얼마 전까지 패덕(悖德)한 군주가 군림했다는 사실을 벌써 잊었는가? 대통령의 부패와 정치적 무능력을 대통령 개인의 선악 문제로 치환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은 단지 세습되지 않을 뿐 '선출된 입헌군주'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제는 선택 가능한 제도가 아니라, 폐지되어야할 제도다. 100년 전 혹은 200년 전 군주제를 폐지했던 것처럼, 이제는 대통령제를 끝내야 할 때다. 도대체 왜 개인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을 부여하고 있는지, '빛바랜 국민주권 시대의 역설'에 의문을 던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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