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 통화에서 공식화한 대북 특사 파견 계획은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형성된 '평화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한 첫 번째 조치다. 북미 간 거리 좁히기가 여전히 난망한 가운데, 집권 7년 동안 대외 접촉이 일체 없었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중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전망이다.
청와대가 택한 공개적 대북 특사 파견 방식은 과거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파견했던 대북 특사가 사실상 '밀사'였던 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물밑 접촉으로 성사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은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지만, 훗날 정치적 대가를 치렀다. 노무현 정부가 대북 송금 특별법을 수용했을 때 청와대 민정수석이 문 대통령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공식 방남했던 '김여정 특사'가 공개적인 대북 특사 파견에 길을 터준 측면도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일 "북한이 특사를 보냈기 때문에 답방이 필요하다"면서 "북쪽에서 먼저 전격적으로 내려온 부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점"이라고 했다.
법적 근거는 남북관계발전법이다. 이에 따르면 '대북 특별사절'은 "북한에서 행하여지는 주요 의식에 참석하거나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정부의 입장과 인식을 북한에 전하거나 이러한 행위와 관련하여 남북합의서에 서명 또는 가서명하는 권한을 가진 자"로 규정한다. 대북 특사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법에 근거한 공개적 방식으로 파견되는 만큼, 청와대, 국가정보원, 통일부 등 공식 라인에서 대북 특사단이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관계를 잘 풀어가기 위해서는 특사단이 가는 게 맞다"고 했다. 특사단을 이끌 적임자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정의용 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 조명균 통일부장관으로 좁혀진다.
특히 서훈 원장은 2000년 6.15 정상회담과 2007년 10.4 정상회담 등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긴밀하게 관여했던 인사라는 점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조명균 장관도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경험이 있다. 청와대는 내주 초쯤 대북 특사를 공식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사 파견 시기는 오는 9일 평창 패럴림픽 개막 전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한) '조만간'이 아주 긴 시간은 아닐 것"이라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청와대가 대북 특사 파견에 속도를 내는 배경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 시점과 관련이 깊다. 한미 군사당국이 패럴림픽 종료 후 연합 군사훈련 재개 시점을 공개키로 한 가운데, 중재역을 맡은 우리 정부로선 그 전에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야 운신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북 특사 파견이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까지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북한과 미국이 탐색적 대화에 개방적인 메시지를 내고는 있으나 최대 관건인 '비핵화' 문제에서 여전히 간극이 크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 통화 후 "완전하고(complete), 검증가능하며(verifiable),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핵폐기(denuclearization)"를 주장했다. 북미 대화의 입구를 논의하는 단계에서 비핵화의 최종 단계인 소위 'CVID'를 대화의 조건으로 언급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백악관의 발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생각을 얘기 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피했지만, 북미 대화의 문턱을 크게 높인 백악관의 입장은 우리 정부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대북 특사 파견을 통해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 의사를 북한에 타진하고 한미 간 입장을 조율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정상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특사단이 가면 북한의 반응과 그에 대한 일들을 우리에게도 잘 정리해줬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언급이 있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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