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되기 전에 발생했던 범죄조직에 대한 다양한 살해사건은 ‘삼합회’의 위상과 파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되기 직전인 1999년 8월 15일 카지노를 무대로 활약중인 삼합회 조직원 용의자 2명이 이날 새벽에 마카오에서 폭탄사고로 사망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이날 사고는 새벽 3시께 중국 국경 부근에서 사제폭탄이 폭발하여 각각 자동차와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30대 2명이 숨지고 여성 1명을 포함한 4명이 경상을 입었다고 경찰이 밝혔다.
경찰 대변인은 당시 사고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수사진과 밀접한 한 소식통은 이날 사고가 9개 카지노의 이권을 둘러싼 삼합회 내 라이벌 조직 간의 유혈 참극인 것으로 추정했다.
이보다 앞선 1998년 5월에는 14K파가 불법 카지노 영업단속을 펴던 마카오 경찰청장과 정보국장, 담당반장 등이 탄 차량을 상대로 리모컨으로 폭탄을 터뜨려서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하였다. 조직폭력 세력이 공권력에 정면 도전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마카오의 삼합회는 가라오케, 식당, 디스코텍은 물론, 강력사건 전담 특경에게 까지 무차별 총격과 방화를 가해 매일 밤 마카오 곳곳은 피로 얼룩졌다.
심지어 삼합회 조직원에게 실형을 선고한 판사가 대낮에 거리에서 살해될 정도였으니 이는 이탈리아의 마피아를 방불케 하였다.
또한 1997년 5월4일, 오후 3시께 마카오 시내 중심가에 있는 리스보아 호텔 앞, 고급 승용차 옆으로 두 대의 오토바이가 다가왔다. 오토바이에 탄 청년 2명은 중국제 반자동권총을 꺼내기가 무섭게 9발의 실탄을 발사, 승용차에 있던 3명 모두를 살해하고 도주하였다.
리스보아 호텔은 마카오의 ‘카지노 황제’인 스텐리 호가 소유한 당시 마카오 최고의 카지노호텔이었다.
이날 살해된 3명은 홍콩 삼합회의 최대 파벌 중 하나인 14K의 중간 보스들이었다.
이들 중 한 명인 섹윙쳉(37)은 차세대 두목으로 꼽히던 거물이었고. 한 달 전인 4월 17일 마카오를 근거로 한 우온록(일명 수방)파의 보스인 람푸이창(44) 저격살해사건을 배후 조종한 인물로도 알려졌다. 이날 사건은 람푸이창 사건에 대한 우온록파의 보복인 셈이었다.
그로부터 다섯 달이 지난 10월 20일, 마카오 시내에서 차량으로 10분쯤 떨어진 타이파섬의 하얏트 리젠시호텔 밖에서 14K파 소속 조직원 2명이 총을 맞고 살해된 채로 호텔 직원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어 일주일 뒤인 26일 새벽에는 같은 14K파의 다른 파벌 두목인 량꿔시융(40)이 자기 아파트 주차장에서 5발의 총알을 맞고 현장에서 숨졌다. 일주일 동안에만 3명의 삼합회 조직원이 살해됐고 1997년 들어 10개월동안 24명의 조직폭력배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마카오 경찰은 2건의 총격 살해사건에 대해 “같은 14K파 소속의 라이벌 들간에 카지노 이권과 고리대금업을 둘러싼 분쟁에서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마카오 반환을 앞둔 당시 토착 조직폭력 조직인 우온록파와 홍콩세력인 14K파 간에 시작된 마카오 삼합회 세력 전쟁이 우온록파의 기세가 꺽이면서 14K파 세력끼리 치고받는 내전(內戰)으로 증폭된 것으로 경찰은 분석했다.
당시 한 경찰간부는 “1999년 주권 반환 직전, 포르투갈 당국의 느슨한 치안공백기를 틈타, 14K파와 우온록파 외에 중국계 다이후엔(大園), 홍콩계 선이온(新義安), 쩡즈웨이(曾志偉)등과 대만, 태국조직까지 가세해 1996~1999년 조직폭력배가 1만 가까이 활개를 쳤다”고 말했다.
또 그는 “당시 1주일이 멀다하고 조직폭력배 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경찰 내부에 단속 사실을 몰래 알려주는 부패한 밀거래자들이 만연하여 경찰이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호텔이나 모텔의 침대 밑에서 토막 난 시체가 발견되는가 하면, 조직폭력배들은 권총 이외에 기관총과 시한폭탄, 박격포 등으로 무장했다.”고 회고했다.
삼합회는 홍콩에서도 1990년대 초반까지 조직범죄로 악명을 날렸다.
하지만 홍콩의 삼합회는 민간인이나 관광객들에게는 성역처럼 손을 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홍콩의 민생치안 수준은 삼합회에서 경비회사를 차려 보호해 주기 때문에 잡범들이 설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예로 과거 택시 기사들은 삼합회원이 많았던 회사는 절대 강도당할 일이 없고 금은방이나 전당포도 삼합회원이 차린 경비회사에서 경비를 서줘주어 강도가 들지 못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삼합회는 중국 본토 및 마카오, 홍콩을 비롯해 대만, 화교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동남아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홍콩과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된 이후 삼합회 조직은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았던 지역에서 명맥이 거의 끊긴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동남아에서는 삼합회에 베트남계와 캄보디아계 등 현지 출신들이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삼합회는 동남아 외 유럽과 남미, 중동에도 진출해 있고 이라크, 레반트 등 이슬람국가나 카르텔 등 중동과 남미 조직들과의 유착의혹도 있다.
서유럽에서는 이탈리아 마피아들과 네덜란드 마약조직과 결탁해 마약을 들여오고 동유럽에서는 러시아 마피아와 동맹을 맺고 벨라루스, 터키, 우크라이나 등을 무대로 차량밀수사업을 벌이거나 러시아 여자들을 서유럽이나 터키, 그리스의 유흥업소로 팔아넘기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5년 대만의 수도 타이페이에서 조폭 거물인 쉬하이칭 장례식에는 아시아의 삼합회 조폭 두목과 조직원 등이 무려 1만 명이나 참석해 가두행진을 펼치기도 하였다. 수배중인 조폭들도 이날만큼은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경찰에서도 특별히 배려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마카오 반환을 앞두고 중국 공산당 정예병력 6000여 명을 투입해 치안을 장악했다.
1999년 5월부터 중국당국은 마카오 인근 주하이와 광동성 등 8개 도시에 산재한 삼합회 조직원 소탕작전에 나서서 1차로 1859명을 체포하였다.
특히 중국정부는 마카오보다 2년 앞서 중국에 반환된 홍콩에서 악명 높은 삼합회 일당 4명을 체포해 중국에서 공개처형 하였다. 이는 마카오 삼합회에 보내는 일종의 경고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1999년 반환을 앞두고, 공안요원들을 마카오에 비밀리에 보내 소탕작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현재 마카오에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타이파 섬과 마카오 시내에 600여 명, 인근 주하이에 400여 명 등 모두 1000여 명이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동섭 한인회장은 “삼합회 조직원들은 경찰은 우습게 알아도 인민해방군은 기를 펴지 못할 정도로 쩔쩔 매고 있다”며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된 이후 삼합회는 마카오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99년 반환당시 4000명에 불과했던 마카오 경찰병력은 2010년 8000여 명에서 현재는 1만 여명으로 대폭 증가한 것으로 알려진다.
세계에서도 가장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마카오 경찰은 치안경찰, 사법경찰, 특경, 정보청 등 4개 수사파트와 교통담당, 사복근무 경찰 등으로 구분되어 마카오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지난해 11월 초 홍콩에서 삼합회 두목의 체포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홍콩의 삼합회 조직이 건재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2017년 11월 1일 ‘상하이 보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홍콩 폭력조직 삼합회 두목 궉윙훙(59)이 돈세탁 혐의로 체포됐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SCMP에 따르면 이날 홍콩 리펄스 베이의 아파트에서 체포된 궉잉훙은 지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홍콩의 4개 시중은행 계좌를 이용해 1억 홍콩달러(약 143억 원) 이상의 돈세탁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홍콩 경찰은 궉잉훙이 이 돈을 불법 마권업(사설 경마 도박업)을 통해 벌어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궉잉훙의 아파트 집에서 관련 서류들을 압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SCMP는 경찰은 이날 밤까지 궉잉훙을 조사했으나 아직 검찰에 송치하진 않았다고 전했다.1998년부터 2000년까지 홍콩 삼합회의 총두목 지위에 있었던 궉잉훙은 지금도 삼합회의 한 분파 조직을 이끄는 것으로 전해졌다.
궉잉훙은 2012년 홍콩 경찰이 3억 홍콩달러(약 430억 원)의 돈세탁을 한 혐의로 삼합회 조직을 대대적으로 단속할 때 130여 명의 조직원과 함께 체포됐다.
그러나 그는 돈세탁 혐의로는 기소되지 않았으며 2015년 조건 없이 석방됐다.2016년 7월에도 그는 협박, 상해 등 혐의로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는 2012년 당시 행정장관 후보로 출마했던 렁춘잉과 저녁 식사를 같이하는 장면이 포착된 이후 대중에 알려졌다.
당시 렁춘잉이 삼합회와 손을 잡은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으나, 렁춘잉은 궉잉훙을 초대한 적이 없다며 이를 부인했다. 홍콩 반부패 기구인 '염정공서(廉政公署·ICAC)’도 이를 조사했으나 무혐의 처분했다. 201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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