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오류로 기존안이 철회되고 새로 제출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의 경제적 손익계산을 담은 비용추계서가 3년 전 내용을 그대로 재탕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 3일 296건의 번역 오류가 발견된 기존 한미FTA 비준 동의안을 철회하고 새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문제는 새 비준동의안을 제출하면서 3년 전 비용추계서를 그대로 갖다 붙였다는 것. 국회법에 따르면, 정부가 예산 또는 기금상의 조치를 수반하는 의안을 제출하는 경우에는 그 의안의 시행에 수반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에 대한 추계서와 이에 상응하는 재원조달방안에 관한 자료를 의안에 첨부해야 한다. 따라서 비준 동의안이 새로 제출됨에 따라 비용추계 및 재원조달계획도 새로 제출돼야 한다.
정부가 3년 전 비용추계서를 재탕한 것은 최대한 빨리 6월 임시국회 내에 한미FTA 비준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목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미FTA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비용추계서와 재원조달계획을 다시 작성하기 위해선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새 비준동의안에 첨부한 비용추계서와 재원조달계획은 4년 전인 2007년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어 있고, 2009년 발효를 전제로 하고 있다. 두 문서는 2007년 8월 한국조세연구원이 분석한 '한미 FTA 체결에 의한 조세수입 변화 추정' 보고서를 기초로 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950원?
이에 따라 야당들은 "정부는 국민을 바보로 아느냐"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2011년 예산상 기준환율이 1150원임에도 (2007년 전망치인) 950원을 사용함으로써 FTA로 인한 세수감소 효과를 과소 추계했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지난 해 자동차 분야 재협상 결과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고 5년 전인 2006년 불변가격기준으로 효과분석을 추계했다. 또 재협상에 따른 경제적 효과분석 자료를 제출해 달라는 국회 요구에 대해서 정부는 '점검 중'이라고만 답변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이) 정부가 손익분석도 없이 미국 입맛에 맞게 미국 제안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 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국회는 한미 FTA가 국익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에 대한 검토 없이 FTA 비준 동의안을 처리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정책위의장도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가 3년전 비용추계서를 재탕한 것에 대해 "국민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는 법"이라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재상정하면서 어떻게 비용추계서를 단 한 자도 바꾸지 않고 3년 전 것을 그대로 제출하냐"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특히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이명박 정부 들어 추진된 대대적인 감세정책, 국가부채의 증가 등 기본적인 경제여건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에서 한미FTA의 경제적 효과는 새로 계산돼야 한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또 오는 7월부터 한-EU FTA가 발효될 예정이라는 점도 새로 고려해야할 지점이다.
박 의장은 "한미 FTA는 선(先)대책, 후(後)비준이 원칙"이라면서 "한미 FTA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될 산업분야나 그 종사자에 대한 대책 없이 무분별하게 동시다발적 FTA를 체결하는 것은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뿐 아니라 국민통합에 저해요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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