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예술 창작 환경을 개선하고 복지를 강화하여 예술인의 창작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과제의 주요 목표는 예술가의 지위 및 권익 보장을 위한 법을 제정하고 예술인 고용보험제도를 도입하는 것.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와 고용노동부는 2019년 시행을 목표로 예술인 고용보험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고용보험이라면, 고용된 노동자들이 가입하는 것 아니었던가? 누군가에게 고용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노동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예술인을 위한 고용보험이라니,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해서 예술인들이 어떤 노동을 하고 있으며, 어떤 형태의 고용보험을 필요로 하는지, 현장 예술인들로부터 직접 들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여기 여성무용인 A씨가 있다. 그녀는 어느새 50대에 들어섰다. 명문대 무용학과를 졸업했고 무용계에서는 나름 실력 있다고 인정받기에 주요 기금은 대부분 받아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해 왔다. 작품 평판도 나쁘지 않았고 나름 해외 공연도 꽤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그는 대학교수도 아니고, 입시 시장에서 인기 있는 강사도 아니다. 덕분에 그 앞에 놓인 현실은 무주택자, 마이너스 통장, 낮은 신용등급, 불투명한 노후대책, 그리고 앞으로 사람들에게서 잊혀 질 것 같은 불안한 미래뿐이다.
혹자는 "자기가 좋아서 한 짓"이기에 감내해야 한다고 하고, 또 누구는 "몰랐어?"하며 처음부터 돈 있는 집 애들이 하는 것이 예술이란다. 무용은 더더욱 그렇다. 예쁜 애들이 자기 끼에 겨워 공주, 혹은 왕자놀이 하는 정도로 취급한다. 과연 예술, 좁게는 무용은 그런 사람만 해야 하고 또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일까?
슬프게도 무용인들 대부분은 앞서 언급한 A씨처럼 가난하다. 물론 처음 무용에 입문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유 있는 집 자제분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정작 무용계에 남아 예술 창작 활동하시는 분들은 예술에 미쳐서, 덕분에 현실감 없고 철없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경제관념 확실하고 이해관계 분명한 사람들은 돈 되지 않는 무용 창작 활동에서 일찌감치 떠난다. 무용작품은 돈으로 환원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특이점 때문에 공연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진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더군다나 부상은 얼마나 많은지 무용인 대부분이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다. 그런데도 올림픽이나 엑스포와 같은 국가 거대 사업에서는 문화선전대 노릇을 최일선에서 해낸다. 속된 말로 그림이 나오니까...
그런 차원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예술인고용보험에 관한 관심과 기대감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가 들고 나온 문화예술 정책 중 하나인 예술인고용보험은 적어도 표준계약서를 작성하고 활동한 예술 활동에 관해서 만이라도 인정해 주고 이에 따른 일정 기간 동안의 실업급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연 일수로만 계산되면 무용은 예술인고용보험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이때 작성해야 하는 표준계약서에는 공연 활동 외에도 연습시간과 작품 준비를 위한 기획 시간도 포함되어야한다. 사실 무용 공연의 대부분은 2~3일 정도 짧게 진행된다. 몸을 사용하는 분야인 관계로 오랜 기간 공연이 어렵다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이점은 외국도 마찬가지인데, 유명 단체나 안무가의 공연도 2~3일 공연하고 다른 나라나 도시 순회 공연하는 형식이다. 그럼에도 무용 공연에 따른 준비 기간은 장기공연을 하는 뮤지컬과 연극 못지않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무용전문 단체인 시, 도립 무용단의 연평균 공연일도 60일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습시간 포함은 당연하다. 참고로 프랑스에서 시행되고 있는 앙테르미탕 제도에서도 연습시간은 포함되고 있다.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용가들의 평생 소원 중 하나가 월급 한번 받아 보는 거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술 창작 관련 지원금을 받아도 정작 창작자인 본인에게는 인건비 지출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사업자가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니까 국가 세금을 공적으로 쓰라는 취지로 고용된 해당 사업의 무용수들에게만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원제도들은 실력이 있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일수록 가난해 지는 구조이다.
이런 이유로 직접 무용수로 뛰기에는 좀 그렇고, 실력 있는 중진 무용가일수록 내일을 책임질 수 없는 암담한 현실로 내몰고 있다. 현대무용가 장은정은 기금에 대해 "무용수로 아르바이트도 못하는 중진무용가들에게 1000만 원 정도의 창작기금은 받으면 받을수록 빚만 늘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느새 실력은 있지만 돈 안 되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중진 이상의 무용가들은 기초수급 대상자가 된다. 그들이 무용에술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얼마나 훌륭한 무용수였는지는 상관없다. 그냥 늙어서 사라지고 누구보다도 불안한 삶을 맞이한다. 그런 이유로 무용가들은 안정된 생활의 대명사인 ‘월급’ 한번 타보는 것이 소원이 된 셈이다.
더불어 무용인들은 대한민국에서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복지제도의 사각 지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무용인들 대부분은 4대 보험이 뭔지도 모른다. 자기가 가입 대상인지, 연말 정산은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무슨 고지서가 날아오면 덜컥 겁부터 난다. 가난하니까 나한테 돌아 올 환수금은 당연히 없을 것이라 여기고 있고, 또 치사하고 구차해 보일까봐 누구한테 말도 못한다.
무용인들은 나름 열심히 살았다. 최선을 다 했지만 안타깝게도 세기의 걸작은 못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춤추었기에 조금이라도 발전했고 인식도 과거보다 좋아졌다. 국가 행사라면 제일 먼저 호출당하지만 언제든지 나서 주었다. 그런 그들이 처한 국민소득 3만 불의 대한민국은 너무 가혹하다. 그렇다고 공헌 했으니 구제해 달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일한 것을 일한 것으로 정당하게 평가해 주고 응당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 안전망에서 벗어나 방치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이는 당장 내 통장에 얼마나 들어오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공연무용창작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 그리고 예술가로서 응당 받아야하는,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를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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