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 씨는 작년 8월 연세대학교 신촌 세브란스병원 청소용역 업체 면접에 지원했다. 청소용역 업체 사무실에서 진행된 면접에서 면접관은 근무 조건과 내용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리고는 청소반장을 불러서는 체력테스트를 시켰다. 청소하러 왔다가 산재를 당했다며 6개월씩 쉬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였다. 손을 올렸다 내렸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몇 번 반복하니 테스트는 끝났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반장은 이후 갈 곳이 있다며 김 씨 손을 이끌었다. 체력테스트를 한 미화 반장 휴게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기존 노조(한국노총 소속) 사무실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노조 위원장은 병원 내 노조가 두개 있다며 이들 중 자기네 노조에 가입해야 한다며 가입 지원서를 건넸다.
"맨날 뉴스에 보면 데모하는 게 민주노총이고 합리적으로 노동운동하는 게 저희 한국노총이에요. 병원에는 한국노총이 58년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작년에 민주노총이 쳐들어와서 또 하나 노조를 만들었어요. 어차피 (채용 뒤) 출근하면 거기(민주노총)서 노조에 들어야 한다고 끌어갈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지금 권하는 거예요. 한국노총은 160명 넘고, 민주노총은 39명 밖에 없어요. 출근하시게 되면 (민주노총에서) 꼭 들어라 할 거니깐 그냥 미리 여기다 들어달라고... 제게 조합 가입서 써주신 뒤, 출근하시게 됐는데 누가 '노동조합 들었냐' 하면 '한노 들었다' 하시면 됩니다.
민주노총은 여기서 자리를 잡을 수 없어요. 한국노총 사람들은 다 떳떳하게 (병원 관계자들에게)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하지만 민주노총은 괜히 데려온 자식마냥 새벽에 나와서 일하면서도 눈치를 보게 돼요. 민주노총은 병원 반대편에 서 있는 거잖아요. 병원이 갑이잖아요. 게다가 원청이란 말이에요. 우리 회사는 용역회사고.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란 말이죠."
용역업체에서 면접을 보는 시간보다 노조 위원장의 가입 권유를 받는 시간이 더 길었다. 거기에다 노조 위원장은 말을 다 마친 뒤, 노조 가입서를 쓰라고 가입서를 내밀었다.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 등을 다 쓰면서도 가입날짜는 쓰지 말라고 했다. 그것은 자기가 쓰겠다고 했다.
이후 면접 뒤 문자메시지로 김모 씨는 채용 통보를 받았다.
1년간 민주노총 가입 노동자는 고작 1명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의 청소 용역업체가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 가입을 막기 위해 채용 면접에 참여한 신규고용자들에게 다른 노조 가입을 종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용역업체가 신규 채용에 지원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노총 계열 노조에 가입을 권유했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일 경우, 고용에서 제외했다는 것.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세브란스병원분회는 6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주장했다. 세브란스병원 내에는 기존 한국노총 소속 노조 외에도 2016년 7월 출범한 민주노총 소속 노조 등 두 개의 노조가 존재한다.
세브란스병원분회에 따르면 청소용역 업체는 면접자의 체력테스트가 끝나면 한국노총 소속 노조 위원장에게 면접자를 보냈고, 위원장은 노조 가입을 종용했다. 또한, 노조 가입원서를 작성한 면접자는 이후 문자로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가입 원서를 작성하지 않은 면접자는 불합격 처리를 받았다.
세브란스병원분회는 "언젠가부터 신규입사자 중 단 한 명도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사람이 없기에 이상하다 생각해서 신규 직원에게 물어보자 '면접과정에서 입사지원한 사람 다 데려다 (기존 노조에) 가입하게 했다'는 증언을 듣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6년 8월부터 2017년 9월까지 59명의 신규채용인원 중 1명만이 세브란스병원분회에 가입했다.
세브란스병원분회 "원청의 지시 혹은 공모 없이 불가능"
이러한 새 노조에 대한 회사의 방해 공작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세브란스병원분회는 "2016년 7월, 강압적 노무관리와 열악한 노동조건에 문제의식을 가진 청소노동자 130여 명이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민주노총 소속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해서 새 노조를 만들었다"며 "하지만 이 과정에서 원·하청이 공모해 노조 파괴 공작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노조 출범 전날에는 직원모임을 소집, 탈퇴를 종용했을 뿐만 아니라, 작업반장들을 동원해 인사배치 등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협박과 회유를 했다는 것.
서순옥 세브란스병원분회 부분회장은 "함께 일하는 노조 소속 노동자들에게 반장은 쉬도 때도 없이 '노조를 탈퇴하라'고 압박했다"며 "견디다 못한 이들이 울면서 탈퇴해야겠다고 하소연한 뒤, 여기에서 탈퇴했다. 그렇게 탈퇴하다 보니 지금은 고작 30여 명이 남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세브란스병원분회는 면접 과정에서부터 기존 노조 가입을 조건으로 신규채용 하도록 한 것은 원청과 하청이 공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판단한다. 이들은 "부당노동행위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가입날짜도 허위로 작성하겠다고 하는 등 노골적으로 채용에 관여하는 것은 원청 지시 혹은 공모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고용노동부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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