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민심이 어떤가?"
"한마디로 안 좋다. 상당히 안 좋다."
"어떻게 안 좋나?"
"당의 어떤 분들은 패배주의적 반응을 보일 필요 없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제가 지역구에서 직접 느끼는 반응은 거의 임계점에 도달한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지방 사람들, '내가 거지냐' 하는 느낌 들수밖에"
"그렇게 민심이 악화된 계기가 있었을 텐데 역시 동남권 신공항 문제인가. 아니면 그 전부터 민심이 악화돼 온 것인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이 제 2의 도시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30년 동안 정권은 바뀌었지만 부산만 보면 한나라당이 계속 여당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그 결과가 뭐냐'라고 부산 시민들이 생각하시는 것 같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부산은 제 2의 도시고 인구도 400만 명이 넘고 우리나라 GDP의 20% 정도를 차지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부산의 브랜드나 내용물이 전반적으로 '다운스트림(쇄락)'됐다. 이제 인구도 360만이 채 안될 것이다. GDP가 전국의 5%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은 부산말로 어떤 '알량한 자부심'이라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지지할만한 객관적인 데이터가 없는 것이다. 제 2의 도시라는 자부심이 깡그리 무너진 것이다."
▲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 ⓒ프레시안(여정민) |
"정치적으로 뭐라 하든 경제적으로 악화되고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부산 시민들이 모두 피부로 느끼겠다."
"그렇다. 울산이 GDP가 4만불이고, 거제가 3만불이다. 기업들이 양산, 김해, 창원 등 외곽에 다 있다. 부산은 특별한 먹거리가 없다. 신공항 문제로 왜 부산시민들이 폭발했느냐. 신공항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20~30년 동안 계속 '다운스트림'돼 온 것이 임계점에 달해서 울고 싶을 때 뺨을 때려준 꼴이 된 것이다."
"부산이 60년대, 70년대에는 수출의 선봉이었는데..."
"그렇다. 목재, 신발 등..."
"그것이 다 사양산업화 됐는데, 그래도 신발을 첨단 소재로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대구의 밀라노 프로젝트처럼 부산만의 발전 전략 같은 게 없었나?"
"부산 시민들이 다 공감하는, 부산 전체를 아우르는 그런 프로젝트는 없었다. 소소한 시도는 있었지만."
"그렇게 보면 가덕도 신공항, 신항만 건설이 지난 20~30년의 부산 역사에서는 가장 큰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 신공항은 부산 시민들 입장에서는 마지막 살아나갈 유일한 출구같은 것이다."
"굉장히 절박했겠다."
"그렇다."
"신공항 관련 토론회를 보면 수도권 사람들은 '국토도 좁은데, 인천공항 하나 있으면 됐지' 'KTX로 3시간도 안걸리는데...' 하는 얘기들을 하더라. 그런 얘기를 부산 시민들이 들으면 굉장히 마음이 상했을 것 같은데?"
"저도 솔직히 그런 말씀 많이 들었다.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따져보자. '나라도 좁은데 공항 하나만 있으면 되지' 하는 식으로 말하는데, '국가 이익'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애매모호한 것이다. (수도권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 기저에는 국가의 이익과 지방의 이익이 같이 갈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인식이 깔려있는 것 같다. 지방의 희생과 국가 이익을 동의어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국가는 부산, 대구, 광주, 서울이 다 모여서 되는 것이다. 부산이나 대구에 공항이 있어서 잘 되면 그것이 국가 이익이다. 수도권에 있는 정책 입안자들 생각의 이면에 '지방에서 뭘 하면 국가 이익을 해친다' 그런 편향된 인식이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갖고 있다."
"지방을 잘 발전시키면 그게 국가 이익이다.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하는데 중앙 중심으로 보다보니까, '지역에서 뭘 하는 것은 그냥 나눠주는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인식의 출발점을 수도권 중심적인 시각에 두면 답이 없다. 도로도 길도 공항도 수도권에만 건설하면 되나. 그것은 국민 통합을 위해서도 옳지 않고 장기적인 효율성 측면에서도 옳지 않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 없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많은 것 같은데?"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이 쪽을 달랠 필요가 있다. 저 쪽을 달랠 필요가 있다' 하는 식으로 우는 아이 젖 주듯이 하는 접근 방식, 그런 인식이 정부에 팽배해 있다. 지방민들이 볼 때는 '내가 거지냐!' 이런 느낌을 갖게 된다."
박 의원은 시종 차분하게 말했다. 감정적으로 격앙될 수 있는 대목에서도 원론적인 얘기로 마무리를 하곤 했다. 그러나 '내가 거지냐'는 대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서울 의원들 공포? 부산도 서울이랑 다를 게 없다"
▲ "부산 정치 지형이 질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싫어도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로 지역 주민들 만나 보면 한나라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이 식은 것을 느낄 수 있다."ⓒ프레시안(여정민) |
"아까도 말했듯이 일부 의원들은 지나치게 '어렵다'고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분들에게 그것은 과장이 아니라 눈앞에 다가온 현실이다. 상황이 질적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통계가 그렇다. 지난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김정길 후보가 44.57%를 받았다. 구청장도 무소속 후보가 3군데나 당선됐다. 구의원은 야당이 약진했다.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부산 정치 지형이 질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싫어도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로 지역 주민들 만나 보면 한나라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이 식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부산 의원들끼리 자주 만나서 공동 대책을 논의하나?"
"그 동안은 '공동 대응책' 같은 것을 (논의) 안 했는데 최근에 한두 번 했다. 심기일전이 아니라, 정말 환골탈태 하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다 망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는 분들도 있다."
"부산 지역구가 18개다. 지역구 사정이 많이 다른가? 이를테면 서울의 강남북 같이."
"그렇다. 서울의 강남북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비슷하게 '동서' 격차가 있다. 동쪽이 비교적 잘 사는 곳이고 제 지역구가 포함된 서부산권은 낙후된 곳이다."
"지역에 따라 의원들의 체감도가 다를 것 같은데?"
"특정 지역구를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한 두 개 지역구를 빼고 나머지는 전반적으로 어렵다."
"이명박 정부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했던 정치인이 부산 지역에 많이 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정의화 현 국회부의장, 안경률 의원도 핵심실세 역할을 했고, 김무성 원내대표, 허태열 전 최고위원도 있다. 이 지역에서 이명박 정권 심판론이 불면 '나는 관계없다'고 얘기하기가 참 어렵겠다."
"그런 지적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어찌됐든 DJ정부다 참여정부다 하면서 정권은 변했지만, 지금까지 부산은 한나라당이 여당이었다는 것이 객관적인 팩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야 어찌됐든 간에 계속 (부산 시민들의 생활 수준이) 다운됐다. 경제도 인구도 그렇다. 지금은 제 2의 도시가 아니지 않나. 그러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그동안 부산에서 배출한 대통령, 시장, 정치지도자들이 많았지만, 그 분들이 시민들에게 '내가 이렇게 잘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정치 선배들이 훌륭한 역량과 인품을 가졌다고 보지만, 시민들은 상당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박 의원은 부산 민심 악화를 당장의 한 두 가지 사건으로 돌리려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20~30년간 이 지역으로 여당 노릇해 온 한나라당의 역사적 책임문제로 접근했다. 그만큼 문제인식의 심도가 깊었고 대안 모색에 대한 절박함이 크게 느껴졌다.
"한나라당이 수도권-영남 두 축으로 버티고 있는데, 수도권 의원들은 굉장히 힘들다고 한다. '강남 3구 빼고는 안심할 수 있는 곳이 한 곳도 없다.'는 말도 나온다. 수도권의 110곳 지역구 중에서 한나라당이 안심할 수 있는 지역구가 20군데도 안 된다는 느낌이다. 부산 경남이라고 해서 그렇게 낙관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사석에서 어떤 분들은, 특히 수도권 정치 선배들은 '부산 영남권은 말뚝만 박아도 되는 것 아니냐' 이렇게 농반진반으로 말하시는데, 지금은 그렇게 말씀하는 분들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 다음 총선에서 수도권 못지않게 파란이 일어날 소지가 있는 곳이 부산이다. 지난 지방선거가 일종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많은 지역구에서 친여 무소속 후보가 출마를 했다. 여야 1대1 구도로 가면 '7대3' 정도로 유리하지만, 이 7이 친여 무소속으로 이분되면서 '4대 3대 3'구도로 바뀌었다. 4대 3대 3이면 서울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아닌가. 그냥 '민심이 어렵다' 이런 추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느끼고 있는 위협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 정말 공천을 잘 해야 할 것 같다. 특히 한나라당은 좋은 사람을 공천하는 것 뿐 아니라 공천에 불복하고 탈당 출마해, 여권 분열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을 공천 과정 속에서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과정 관리가 굉장히 중요하겠다."
"그렇다. 지금 민심이 임계점에 다달아 있다고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다. 기왕의 스타일, 기왕의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저는 회의적이다."
"한나라당에 대한 영남의 '애정'이 무너지고 있다"
▲ "대구 시민들, 밀양 시민들, 또 부산 시민들 모두 전문적인 것까지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일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엄청난 서운함을 갖고 있다. 서운함이라기보다는 분노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프레시안(여정민) |
"신공항 백지화 결정과 관련해 부산 의원들과 대구 경북 의원들 사이에 반발의 강도가 다르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대구 경북은 '백지화 결사 반대'였는데, 상대적으로 부산은 '그래도 밀양에 가는 것보다는 낫다'는, 약간은 미온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보도를 봤는데, 실제로 그렇게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박감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대구 쪽으로(신공항이) 가야 하는 게 맞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
"중요한 국책 사업이나 대통령 공약 사안이 백지화되거나 바뀔 경우에는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지역 집권당 의원이나 자치단체장과 사전 조율을 하지 않나. 이번 경우에는 그런 과정이 거의 없었다고 하던데?"
"정부를 이끄는 대통령의 입장이나 장관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내용을 떠나 가장 아쉬웠던 게 지금 지적하신 절차의 문제다. 대구 시민들, 밀양 시민들, 또 부산 시민들 모두 전문적인 것까지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일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엄청난 서운함을 갖고 있다. 서운함이라기보다는 분노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왜 일을 이따위 식으로 처리하느냐'는 것이다. 뭔가를 결정하려면 절차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동남권 신공항은 공약 사업이고 최대의 국책 사업 중 하나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느냐에 따라 해당 지역에 있는 국민들이 느끼는 실망이나 기대가 엄청나게 클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았나. 절차를 제대로 정상적으로 밟아가면서 소통했어야 하는데 그런 게 깡그리 무시됐다. 누가 보더라도 미리 답을 정해놓고 막바지에 급하게 현장 실사 하고, 평가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부산 시민들 뿐 아니라 대구 시민들, 밀양 시민들 다 선선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내용을 떠나서 그 점이 가장 아쉽고 아프다. 지역민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다."
"정부나 청와대에 그런 절차와 관련해 문제제기를 안했나?"
"저도 그렇고 모든 의원들, 시민단체, 자치단체장들이 여러 차례 얘기했다. 저도 지난해 예결위원으로 정부에 질의도 했다. 그 때마다 정부의 대답은 똑같았다. 정상적으로 되고 있다고 했다."
"안 믿을 수가 없었겠다."
"그렇다. 부산에 가서는 부산 시민들이 딱 믿기 좋은 말을 하고 대구 가서는 또 대구 시민들이 믿기 좋을 말을 하고. 그것을 듣는 부산 사람들은 '신공항을 부산에 짓겠다고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나."
"결론을 내 놓고 나중에 요식적으로 형식을 맞추려고 했다고 했는데, 이번 백지화 결정은 경제성이 낮아서였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를테면 이렇다. B/C(편익/비용) 분석을 해서 적합성 평가를 하는데, 전문적인 부분, 즉 수요 등의 문제는 추정치이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상식의 눈높이에서 보자. 예를 하나만 말씀드리겠다. 가덕도를 해야 한다 밀양을 해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이번 평가가 미리 둘 다 탈락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것을 입증할 자료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국제공항을 만들려면 소음이 없어야 한다. 예컨대 영종도에 (인천공항을) 할 때 소음 부분을 100점 만점에 93점을 줬다. 그곳에는 소음 피해 세대가 약 20세대 정도 있었다. 가덕도는 피해 세대가 하나도 없고 영종도는 20세대인데, 영종도가 93.3점, 가덕도가 44점을 받았다. 이것을 누가 믿겠나. 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안개일수다. 영종도가 60일이었다. 가덕도가 11일이었다. 그런데 영종도가 90점이고 가덕도가 67점이다. 이것은 기상 조건, 자연 조건이기 때문에 누가 어떻다 해서 바뀔 수가 없다. 점수의 출발점이 달랐다는 것이다."
"실사팀이 달라서 기준이나 방식이 다른 것 아닌가?"
"그렇다면 (실사팀의 기준 등을) 공개를 해야 한다. 전혀 공개가 안 돼 있다. 조금 전에 절차를 제대로 못 밟은게 가장 아쉽고 시민들이 분노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는데, 지나치게 '크레믈린식(소수의 정보 독점)'으로 진행돼 왔다는 것이다."
"왜 미리 탈락시키려고 결정했을까?"
"모르겠다. 정책 핵심당국자의 속내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언론에도 여러 번 나왔지만 정치적인 고려가 있었던 것 같다."
"어떤 고려?"
"선거도 있는데 영남권이 이 문제 때문에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로 갈라설 소지가 많기 때문 아니었겠나?"
"한 쪽을 주면 다른 한 쪽의 민심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예 둘 다 안주는 것으로 했다는 것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정략이지 국정운영이 아니다."
"좋게 말하면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역에서 보면 국책 사업을 지나치게 정치적 고려에 의해 결정했다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계산 끝에 결론을 냈다고 치자. 그 계산대로 효과가 나오는 것 같나. 오히려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결과가 된 것 아닌가?"
"재보선 이후 당내 변화가 있지 않겠나.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은데 단박에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그럴 가능성(TK, PK 민심을 다 잃을)도 없지 않다고 본다. 기존의 한나라당이나 정부에 대한 영남권의 무차별적인 애정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만든 정부다'라고 하는 시민들의 생각이 있었는데, 그런 애정에 대해 일각에서 회의를 표시하는 분들도 늘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대세론, 확실히 있는 것 같다"
대담 주제를 한나라당 전반으로 넓혔다. 영남권 초선의원이 보는 한나라당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한나라당 3년 해보니 어떻나. 미래가 있는 것 같나?"
"민주노동당은 제가 같은 것을 잘 모르니까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정치적인 스펙트럼을 보면 그렇게 크게 차이가 있는지 가끔씩 의심이 든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하고 있다. 지역의 많은 분들에게 들어보면 특히 20대, 30대 초반까지 한나라당을 많이 싫어한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안티가 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넌폴리티컬(non-political, 정치에 관심이 없는)이 아니라 앤티 폴리티컬(anti-political, 반정치적)이 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정치라는 게 국민들의 갈증에 대답을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20대, 30대 보면 학교 나와서, 취직하고 결혼하고 사회적으로 역할을 하고 성장을 해야 하는데, 학교 나오자마자부터 그냥 구렁텅이다. 연애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살아가는게 삶의 기쁨이고 가치다. 이런 게 국민들에게는 중요하다. 그런데 88만원 세대라는 말도 있듯이 암담한 것이다. 정치가 국민들의 갈증에 대답을 해야 한다는 명제가 맞다고 한다면 대한민국 정치는 지금은 모르겠지만, 앞으로 10년 쯤 지나면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다. 20대가 10년 지나면 30대가 된다. 10년 지나면 지금 20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50%가 넘을 것 같다. 거기에 대해서 답을 못 주면 아주 출중한 역량을 가진 정치 지도자를 우리 한나라당이 배출을 해낸다고 해도 극복하기 힘든 그런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 "언론이나 여의도 돌아가는 스타일을 보면 모든 것을 대선, 대권이라는 블랙홀로 다 설명하고 귀결시키려고 하는데,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 같다." ⓒ프레시안(여정민) |
"정치권 전체에 대해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정치권이 국민에게 제대로 응답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내년 대선 전망은 어떻게 보나?"
"대한민국 현실 정치에서 대통령이 차지하는 현실적인 비중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언론이나 여의도 돌아가는 스타일을 보면 모든 것을 대선, 대권이라는 블랙홀로 다 설명하고 귀결시키려고 하는데,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 같다. '정당 정치 개혁해야 한다', '당정, 당청간 수평적 소통이 돼야 한다' 이런 얘기들을 한다. 그러나 많은 논의가 있음에도 그게 잘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국회의원이 대통령의 하수인이 되고 국회의원 스스로 '계파 줄서기를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국회의원은 프라이드를 가져야 하지 않나? 어떤 대통령, 어떤 대선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과 별도로 나는 국회의원이지 하수인은 아니지 않나. 국회의원의 자율적 지위와 특정 정치 실세의 참모로서의 지위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대선, 대통령에만 관심을 갖고, 국회가 당에 종속되고 당이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하는 것 아닌가."
"박근혜 대세론은 어떻게 보나?"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보다... 지역 여론을 보면 박근혜 대세론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부산에서, 최소한 제 지역구에서는 현재 운위되는 후보들, 정치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제가 들은 대로다."
"내년 선거에 박근혜 전 대표가 유세해주면 도움이 될까?"
"저한테까지 그렇게 뭐...(웃음)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박 전 대표님이 오시면 저야 고마울 것이다.(웃음)"
박 의원은 웃음으로 대답했지만 이 문제는 4.27 직후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 됐다. 박근혜 대세론과 박근혜 역할론은 과연 어떻게 접점을 만들어낼 것인가?
"18대 국회 등원해 제정법만 3개 만들었다"
박민식 의원은 기록을 갖고 있다. 제정법 최다 발의 의원이란 기록만큼은 그 어떤 의정활동 관련 기록보다 가치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임을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지표이므로.
"초선 의원들은 재선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공약을 열심히 챙기려 한다. 그러다 보면 상대적으로 중앙 정치에서의 활동이 취약해질 수 있다. 당론에 따라야 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고. 그런데 박 의원은 누구보다도 중앙에서의 활동이 활발했던 것 같다. 기억나는 것 중 하나가 아동 성폭행 관련 입법안이었다. 이른바 '화학적 거세법'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직접 대표 발의를 했나?"
"그렇다. 제정법으로 만들었다."
"초선 의원이 제정법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여러 분들이 많이 도와줬고 기회도 줬다. 저도 몰랐는데 제정법을 18대 국회에서 가장 많이 통과시킨 의원이 저더라. 세 건을 제정했다. 범죄 피해자 구제 법안하고, 공정한 채권 추심에 관한 법, 화학적 거세법이다. 특히 '범죄보호자기금법'이 아주 큰 의미가 있다. 기금법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다. 기금을 새로 만든 게 17대, 18대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발의한 문화재 기금법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처음이다."
"기금법 제정이 어려운 건 예산 때문인가?"
"그렇다. 기금법 만든다고 하면 예산 당국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한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 만들 때도 선배 의원들이 도장을 찍어주면서 '당신이 초선이라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이것(기금법)은 5년, 10년 걸려야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더라."
"기금법의 내용은 뭔가?"
"출근하다가 일반 국민이 범죄자로부터 아무 죄 없이 피해를 당했을 때 국가가 어떻게 돌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범죄 피해를 당하면 지금까지는 '재수 없었다고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책무는 국민의 안전,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무고한 사람이 범죄 피해를 당하면 국가는 제 1책무를 잘 못한 것이 된다. 범죄자 인권도 개선을 많이 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반 국민의 인권과 안전이다. 범죄자 관련 예산은 한 3000억 원 되는데 이에 비해 무고한 일반 국민인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는 턱없이 낮다. 예산이 40억 원 밖에 안 됐다. 그래서 별도 기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경우는 약 3조 원 정도 되더라. 이번에 600억원 정도의 기금을 만들자고 했다."
▲ "지역에서 형사 사건이 터지면 민원이 오는데, 대개 처리 방식을 추적해보면 담당 검사가 누구냐, 담당 판사가 누구냐, 담당 검사는 어느 대학을 나왔고 연수원 몇 기인가, 어떤 변호사와 친한가, 이런 식이다. 외국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일처리가 되고 있다." ⓒ프레시안(여정민) |
"1년 정도 만에 됐다. 저도 깜짝 놀랐다.(웃음)"
"공정한 채권 추심에 관한 법률은 어떤 것인가?"
"소위 말하는 빚쟁이들, 채권 추심을 하는데 채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밤에 가서 문 두드리고 돈 내놔라 이런 것을 어느 정도 선을 그어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일반 서민들에게는 체감도가 높겠다."
"그럴 것이다. 지금 마지막으로 목표로 하고 있는 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하는 양형기준에 관한 법률인데, 이게 통과되면 4번째 제정법이 된다. 그것 때문에 대법원에서 저를 미워하고 있는 것 같다.(웃음)"
"지금 추진하는 양형법 논란의 핵심은 뭔가?"
"양형법은 사개특위 사안중에서도 핫 이슈중 하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고무줄 판결'이라는 말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비슷한 사안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징역 1년, 어떤 사람은 징역 10년 하는 식으로 판결이 내려지는데 이게 사법 불신의 근원이다. 이것을 바꾸는 방법 중 하나가 양형에 대한 예측성을 높이는 것이다. 저도 법조인 출신이다. 지금은 국회의원을 하지만 지역에서 형사 사건이 터지면 민원이 오는데, 대개 처리 방식을 추적해보면 담당 검사가 누구냐, 담당 판사가 누구냐, 담당 검사는 어느 대학을 나왔고 연수원 몇 기인가, 어떤 변호사와 친한가, 이런 식이다. 외국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일처리가 되고 있다. 판결이 예측 불가능해진다.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양형의 편차를 가급적 줄일 필요가 있다. 법관의 양형 판단을 존중하더라도 양형 판단에 따른 평가, 그 기준을 독립 기구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형기준법 못지않게 중요한 쟁점이 중수부 폐지, 그리고 특수청 신설이다. 박 의원은 어떤 입장인가?"
"제가 검찰 개혁, 특히 사법 개혁 얘기를 하면 어떤 신문에서든지 검사 출신 박민식이라고 쓰더라. 저는 인정하기 싫지만 많은 분들이 '박민식 의원은 바이어스(편중 현상)를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검찰 개혁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안 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중수부 폐지에 대해서는 (검사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좀 유보적이다. 찬성 반대를 떠나 중수부 폐지는 어떤 기관을 없애는 문제가 아니라 (그 기관을 운영하는)사람의 문제라고 본다. 중수부 폐지에 대해 지역구에 가서 한번 물어봤다. 의외로 중수부 폐지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하게 나뉘는 것 같다. 언론에서 중수부 폐지와 관련해 여론이 어떤지 제대로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제도나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좋은 사람이 검찰총장 되고 좋은 사람이 중수부장 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중수부가 그 동안 잘못한 검찰의 상징처럼 돼 있다. '중수부 폐지하자'고 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중수부가 잘못한 검찰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중수부 문제를 검찰 전체의 신뢰 회복 차원에서 봐야 한다. 마음에 안 든다고 기관을 없애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중앙 정치와 지역구 일, 균형을 갖고 일해야"
▲ "어떤 사람이 과거 시험에서 솔개를 맞추려고 활을 쏘는데 자기는 실력이 없었지만 옆에 시험관이 활을 탁 쳐서 우연히 솔개를 맞췄다. 그 후부터 그런 사실이 드러날까봐 더 열심히 해서 진짜 활을 잘 쏘는 명궁이 됐다고 한다."ⓒ프레시안(여정민) |
"솔직히 말해 정치라는 영역에 발을 디딜 때 내가 국가를 위해 미래를 위해 정치로 안 가면 안 되겠다, 이것만은 해야 하겠다, 이런 소신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옛날 얘기에 이런 게 있다. 어떤 사람이 과거 시험에서 솔개를 맞추려고 활을 쏘는데 자기는 실력이 없었지만 옆에 시험관이 활을 탁 쳐서 우연히 솔개를 맞췄다. 그 후부터 그런 사실이 드러날까봐 더 열심히 해서 진짜 활을 잘 쏘는 명궁이 됐다고 한다."
"박 의원은 외무고시, 사법고시 둘 다 합격해, 외교부 공무원, 사법부 공무원을 모두 경험했다. 그 때 '정치'에 대해 느낀 게 있을 것 같은데?"
"외교부에 있다가 사표를 쓰고 검찰로 갔는데, 사표를 쓴 계기가 있었다. 외교부에 다녀보니 세상에는 어떤 가치를 배분하는 역할과 가치를 결정하는 역할이 있는 것 같았다. 공무원들은 가치를 배분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실력이 있든 없든 가치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정치를 한다. 두 개를 놓고 보면 내 스타일은 가치를 결정하는 영역에 상대적으로 맞는 게 아닌가. 그래서 당시에 장기적으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정치의 영역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잠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중앙 정치 활동이 지역에 도움이 돼야 의원들이 열심히 할 텐데, 보통은 시간이나 역량이 한정돼 있고, 또 중앙에서 열심히 해도 지역에 직접 도움이 안 돼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고민이 많다. 국회의원이 헌법상 국민 전체의 대표자이지 않나. 자기 지역구에 매몰되지 말고 국가 전체를 보고 활동을 하라는 것이 헌법의 명령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실정치에서 국가 전체의 대표자라는 당위적 명제뿐만 아니라 지역구의 대리자라는 현실적 명제도 있다고 본다. 두 가지의 긴장 갈등 관계가 있기는 한데, 현실 정치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적절하게 밸런스를 가져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을 하고 있다."
시험관의 실수로 얼떨결에 시험에 붙은 후 그걸 숨기려고 열심히 해 진짜 명궁이 됐다는 옛날 얘기를 하면서 박 의원은 겸연쩍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음 깊이 담아놓았던 얘기가 아니면 하지 못할 얘기였다. 사실 3년간 제정법 3개라면 이미 명궁의 경지라 해도 손색이 없을 솜씨 아닌가. 일취월장하는 박 의원의 솜씨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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