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친이계 주류의 핵심 의원도 "재보선 결과 3곳 다 진다면 조기 전당대회 요구가 거세게 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을을 간신히 건진 한나라당은 2대1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아성, 분당과 강원에서 패배한 결과는 뼈아프다.
이재오, 다시 시련의 계절 찾아오나?
정상호 서원대 교수는 한나라당의 재보선 패배와 관련해 "한나라당에선 셋 다 괜찮은 상품을 낸 것이다. 안상수 대표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쪽으로서는 베스트 후보를 낸 것에 대한 결과가 이렇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결국 이번 선거는 이명박 선거라는 방증이다. 이명박 정권의 레임덕을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이 시작되면 '정권 2인자'를 자임한 이재오 특임장관의 힘도 빠질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게다가 이 장관은 "괜찮은 상품"을 내고도 불안한 감을 숨기지 않으며 시끌벅적한 선거 운동을 했다. 자당의 특정 계파를 모아놓고 '선거 작전'을 짰다. 그러나 이 장관이 지원병을 보낸 분당과 강원은 졌다. 정작 '나홀로 선거'를 한 김태호 후보만 당선됐다.
▲ 굳은 표정의 한나라당 지도부가 개표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
민주당은 공무원의 선거 중립 위반으로 이 장관에 공세를 퍼부었지만, 그것은 외부 문제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재오 책임론'이 일부 거론되는 모양새다. 한 초선 의원은 "결국 이재오 장관의 '선거 작전'은 실패로 귀결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근혜-이재오-이상득 세 인사를 당내 계보의 3각 축이라고 한다면 '이재오 축'이 약해지는 계절이 온 것이다. 이상득 의원과 박근혜 전 대표는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온도차가 상당하다. 여기에 중립성향-소장파 의원들이 '박근혜 대세론'을 인정하고 박 전 대표 쪽으로 기울게 될 경우 박 전 대표의 입지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굳이 '반대급부'라 표현하지 않아도 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나라당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단순한 '지도부 책임론' 차원을 넘어서 계파간 재보선 책임 소재, 그리고 '이재오 파워'의 적나라한 실체가 수면위로 드러나는 시점은 5월 2일 있을 원내대표 선거다. '당쇄신'의 대상도 이 때 윤곽이 드러날 수 있다. 의원들의 표심을 추적하면, 향후 한나라당의 역학관계 변화를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 흔들리면 박근혜는 괜찮을까?
박근혜 전 대표는 선거 패배 책임론으로부터 자유롭다. 친이계 일각에서 "일부러 선거에 지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대세에 영향을 줄 만한 정도는 아니다.
박 전 대표가 재보선 다음날인 28일 이명박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 순방을 마치고 오는 5월 둘째주 경, 이 대통령에게 순방 결과를 설명하는 시점이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보선 패배의 아픔을 곱씹고 있을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아쉬운 말'을 할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조성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과 지난 8월 '비밀 회동'에서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에 관한 공감대를 형성한 박 전 대표는 이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동남권 신공항 등 대형 이슈들이 터질때마다 이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제스처를 취해왔다. 이러한 흐름도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침몰하는 한나라당호(號)에 올라선 박 전 대표는 여당내 야당의 수장으로 본연의 역할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당이 위기에 처했는데 이를 외면하고 여전히 "때가 아니다"라는 말로 일관하기에는 본인의 존재 기반 자체가 뿌리째 흔들릴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권 경쟁 구도도 본격적으로 형성될 전망이다. 이재오 장관이 타격을 입는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35명 가량을 거느린 '계파 보스'다. 여기에 김문수 경기도지사, 오세훈 서울시장,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친이계 주자들이 조기 경쟁에 불을 지펴 놓았다. 친이재오계 한 초선 의원은 "어떻게든 박 전 대표에 대항하는 인물을 세워 경쟁시켜야 하고, 김문수, 오세훈 등도 그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힘빠지는 MB, 한나라당 '권력 투쟁' 콘트롤할 수 있을가?
권력 구도는 평화적으로 변하지 않는 법이다. 더구나 계파 색깔이 뚜렷히 존재하는 한나라당의 경우 더 말할 것도 없다. 또 박 전 대표가 정치 일선에 나설 경우 그의 '한계'가 드러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과연 내년 총선에 누가 서울에서 지원 유세를 나서면 먹힐 수 있을까. 없다. 박근혜? 서울에서는 검증된 적 없다"고 말했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박근혜 전 대표가 당 상임 고문을 맡든지 정치 일선에 나선다고 해도 수도권 전략은 여전히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쇄신'을 주장하는 중립 성향 소장파를 중심으로 '수도권 40대 대표론'이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차기 대표군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원희룡, 남경필, 나경원 정도다. 나경원 최고위원의 경우 자신이 만든 공천개혁안을 적용해 서울 중구청장 보궐선거를 치러 승리로 이끌어낸 경험이 있는 등 조금씩 주가를 올리고 있다.
현재 민본21, 그리고 이제는 확연히 '중립파'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정두언 최고위원 등이 주도하는 '감세 반대파'가 일종의 정책과 철학을 중심으로 뭉칠 가능성이 커진 것도 이같은 전망과 맥을 같이 한다. 일부 감세 유예론을 주장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의 '원칙'과 맞아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친박-중립의 느슨한 연대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
일단 '조기전당대회'는 아직 미지수다. 안상수 대표에게 김해을 선거 승리는 '변명거리'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대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강해지면 조기전대 물꼬는 터질 가능성도 있다.
물론 조기전대가 성사된 후 '40대 수도권 대표론'이 떠오른다고 해도, 40대 당 대표가 실제로 배출될 지는 미지수다. 영남 지역 의원들의 소외감도 만만치 않은데다 지역에서는 노골적으로 '영남 홀대론'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무성 원내대표의 당대표 출마론도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이 때문에 당내 권력 투쟁의 시계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확실한 것은 주류-비주류가 충돌하게 될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상황을 콘트롤 할 수 있을까? 지난 4월 초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대통령 탈당론'이 공개적으로 거론됐던 상황을 상기시켜보는 것도 향후 정국 전망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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