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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死地)'로 간 손학규, 살아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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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사지(死地)'로 간 손학규, 살아오나?

[4.27 현장] "분당 생긴 후 이런 선거는 처음이죠"

쫓는 쪽은 여유로웠고, 쫓기는 쪽은 다급했다. 빼앗으려는 자는 홀몸의 힘을 내세웠고, 지키려는 자는 집단에게 기댔다. 변화를 꿈꾸는 이는 배수진을 쳤고, 승리를 자신했던 이는 공격에 열을 올렸다.

경기도에서 가장 흡연율이 낮고(17.2%), 술을 자주 많이 마시는 사람의 비율도 6.4%로 가장 낮은 곳. 개신교 신자가 전체 인구의 30% 가까이 되고 고학력 인구 비율은 서울 서초구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 화이트 칼라와 지식인의 비율이 높은 만큼 삶의 질도 높은 곳, 분당이다.

부활절이었던 지난 24일 찾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는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분당을 가로지르고 있는 탄천과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한 중앙공원에는 가족 산책객들이 한가로이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격자 도로 사이 사이 채워져 있는 아파트 단지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냐는 듯 조용했다.

그 분당이 조용하게 들썩이고 있다. 오는 27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그동안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결과가 예측되기 때문이다. 지역 사람들도, 선거운동원도 입을 모아 "분당에서 이런 선거는 처음"이라고 했다.

'천당 아래 분당'의 예측하기 어려운 재보궐 선거

▲지난 24일 분당을을 가로지르고 있는 탄천과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한 중앙공원에는 가족 산책객들이 한가로이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프레시안(여정민)
분당을은 전통적인 한나라당의 텃밭이다. 지역구가 만들어진 이래 지금의 야권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다. 손학규 대표가 민주당의 후보로 출마를 선언하기 전 그의 특보단 간사는 분당을 지칭해 "사지(死地)"라고 했다.

임대아파트 등 작은 평수 아파트가 밀집돼 있는 정자2동이 그나마 야권 성향이 강한 곳이다. 그러나 정자2동의 인구는 이 지역구의 9.0%에 불과하다. 정자1동 등 호화 아파트가 몰려 있는 동네의 인구 비율이 24%로 가장 높다. 수치만 놓고 보면 한나라당의 손 쉬운 승리가 점쳐진다. 그런데 달랐다.

"모르겠다."

직접 현장에서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있는 양 캠프의 선거운동원은 예상하는 선거 결과를 묻는 질문에 똑같이 대답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이 달랐다.

강재섭 후보의 선거운동원은 "우리 (캠프)는 우리가 이긴다고 하는데, 저쪽도 자기들이 이긴다고 하니까"라며 말을 끝까지 잇지 않았다.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지역의 여당 후보 선거운동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강 후보의 짙은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반면 손학규 후보의 선거운동원은 "투표율만 좀 따라주면 이번에는 이길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 선거운동원은 "만나보면 확실히 젊은 층에서는 우리 후보에 대한 지지가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젊은 층의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지난 12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의 조사를 보면, 20대는 50.0%, 30대는 무려 65.8%가 손 후보를 지지했다. 40대 역시 61.7%가 손 후보를 꼽아 같은 연령층에서 33.8%의 지지율을 보인 강 후보를 너끈하게 앞섰다.

30~40대 유권자는 분당을 지역구 전체 유권자의 절반이다. 20대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70%에 달한다. '실버 타운'의 성격이 강했던 분당이지만, 최근에는 노령층이 더 외각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 서울로 출퇴근하는 젊은층이 대거 들어온 것이다.

▲ 직접 현장에서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있는 양 캠프의 선거운동원은 결과를 묻는 질문에 똑같이 대답했다. ⓒ프레시안(여정민)

구체적 공약 들고 집권여당 강조하는 강재섭…변화의 가치로 호소하는 손학규

두 캠프의 분위기도 확연히 달랐다. 내세우고 있는 구호부터 그랬다.

한나라당은 집권 여당의 힘을 강조했다. "중산층 세금폭탄 막아낼 한나라당 강재섭"이라는 구호가 대표적이다. 방어적 뉘앙스가 강한 이 현수막은 부유층이 밀집된 정자1동에 걸려 있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은 구체적인 공약으로 민심을 유혹하고 있었다. 임대 아파트가 모여있는 정자2동을 겨냥해 "한솔 아파트 시설 개선, 분당 아파트 리모델링 힘 있는 한나라당 강재섭과 함께"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반면 민주당은 변화를 호소했다. "이대로 안 된다면, 손 들어 주십시오", "행복한 변화, 분당의 손에 달렸습니다"와 같은 긍정을 강조하는 구호가 다수였다.

또 "함께 잘 사는 나라, 중산층이 튼튼한 나라"와 같은 현수막이 드러내듯, 구체적인 지역 공약 보다는 큰 틀에서의 비전 제시에 주력했다.

▲ 서로 다른 유세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는 손학규 후보(왼쪽)과 강재섭 후보. ⓒ연합뉴스

선거를 사흘 앞둔 24일, 두 후보의 '동선'도 사뭇 달랐다.

손학규 후보는 선거운동 도중 정자1동 선거사무소를 찾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분당을 후보이자 민주당 대표로서 전체 재보궐 선거판을 겨냥한 기자회견이라지만, 그는 이 자리에서 "지금의 당신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께서는 정말 지금의 대한민국에 동의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상대 후보에 대한 공격보다는 근원적인 가치를 호소하는 데 무게를 둔 기자회견이었다.

같은 시간, 강재섭 후보는 하루 종일 세 곳의 교회를 잇따라 돌며 부활절 예배에 참석했다. 손 후보의 기자회견 이튿 날인 25일 그 역시 기자회견을 열어 지지를 호소했다. 그가 남긴 메시지는 "20년 정치인생과 저의 모든 것을 바쳐 반드시 좌파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변화 조짐 보이는데…"문제는 숨어 있는 보수표"

거리에서 만난 유권자들에서도 '한나라당 텃밭 분당'이 변화할 조짐은 보였다. 인물 경쟁력에서 일단 손 후보가 강 후보를 앞서는 분위기였다.

중앙공원에서 만난 40대 김정모(가명) 씨는 "그동안은 한나라당에 투표했는데 이번에는 손 후보를 찍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무래도 인물이 더 낫지 않냐"고 덧붙였다. 손 후보의 화려한 '스펙'과 유력한 대선 주자라는 현재 위치가 주류 지향성이 강한 '고학력' 분당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셈이었다.

아무리 중산층이 많다지만, 높은 물가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주거 문제가 집권 여당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도 분명했다. 불정사거리에 위치한 대형마트 앞에서 만난 가정주부 유지현(가명, 37) 씨는 '어느 후보를 지지하냐'는 질문에 "경제는 살려주겠다고 하더니 이번 정부 들어 점점 더 먹고 사는 게 힘들어지는 것 같다"는 답을 내놓았다.

'초박빙'이라는 양 측의 공통된 판세 분석을 증명하듯,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은퇴하고 쉬고 있다는 이익현(63, 가명) 씨는 "강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 자신했다. 이유는 "손 후보가 정통 민주당 사람은 아니니 민주당 지지자들도 잘 안 믿는다"는 것이었다.

민주당 관계자도 "패배를 상정하고 있지 않다"며 자신감을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야권의 표가 여론조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다른 지역과 달리 분당은 보수표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특히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는 더 그렇다는 것이 민주당의 우려다. 한나라당 후보의 상대로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이면서 현직 당 대표가 직접 나온 만큼 여론조사에서 진심을 숨기는 것은 외려 한나라당 지지자들이라는 것이다.

투표율, 누구의 발목을 잡을까?

결국 당락에는 투표율이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역대 재보선 투표율은 높아야 40%(2001년 10월 25일 재보선, 41.9%), 낮을 때는 간신히 20%를 넘기기도(2000년 6월 8일, 21.0%) 했다. 투표율이 높을수록 민주당에 유리하고, 낮을수록 한나라당에 유리하다는 것은 양 측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다.

강재섭 후보가 이날 무려 3번이나 예배를 보며 교회를 돌아다니는 방식의 선거운동을 벌인 것도, 민주당이 각 의원들에게 연고자를 찾아 직접 전화를 돌리라고 지시한 것도 각자 자신들의 지지자를 한 명이라도 더 투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분당의 경우 특히 서울까지 출퇴근하는 인구가 많다는 것도 문제다. 재보선은 휴일이 아니다 보니, 주로 민주당의 지지층이 많은 것으로 평가되는 젊은층이 투표에 참여하기 어렵다.

정자1동 거리에서 만난 30대 직장인은 "웬만하면 투표에 참여할 생각이지만 직장이 광화문이라 출근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며 "당일 컨디션 등을 좀 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노인층은 이런 고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국회의원만 놓고 보면, 전국에서 딱 3곳에서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의 특징이 누구의 발목을 잡을까?

▲ 국회의원만 놓고 보면, 전국에서 딱 3곳에서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의 특징이 누구의 발목을 잡을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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