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사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미세먼지가 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매스미디어 등에서는 미세먼지에 대한 보도가 공중파, 종편 등을 가리지 않고 부쩍 늘어났다. 이 가운데는 미세먼지 주의보 발령에 따른 서울시의 대중교통 요금 출퇴근 시간 면제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남경필 경기도지사 간 뜨거운 공방도 빠지지 않는다.
공방의 주 내용은 '서울시의 조치가 실효성이 없어 하루 50억 원의 혈세만 낭비한다'와 '아무런 대책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효과가 낮더라도 무언가 실행에 옮겨 미세먼지의 위험성에 대한 시민들의 경각심과 미세먼지 저감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서로 상반된 주장이다. 한마디로 무대책(남경필)보다 과잉대책(박원순)이 낫다는 것이다. 양비론자들은 둘 다 문제가 있다고 거든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미세먼지는 사회적 재난이다. 그 어떤 정지 치도자도, 그 어떤 환경과학기술자도, 개인이나 집단을 가리지 않고 미세먼지를 확 줄일 수 있는, 그래서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실행에 옮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미세먼지에 관한 한, 한 발짝씩 뚜벅뚜벅 미세먼지 없는 안심사회를 향해 걷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중국에서 오는 미세먼지든,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든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은 크게 다를 바 없다. 중국에서 발생해 한반도까지 오는 미세먼지는 우리 힘으로 줄일 수 있는 묘책이 거의 없으므로 현실에서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정부, 기업, 전문가, 시민 등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참하는 길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미세먼지는 인력, 예산 등 모든 것을 쏟아야 할 현안
미세먼지의 위험성과 이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두고 벌어지는 공방은 뜨거울수록 좋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올 6월 벌어질 지자체 선거를 의식해서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미세먼지가 더는 미룰 수 없는, 그리하여 그 모든 수단과 인력, 예산을 들여 씨름을 벌여야 할 화두임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위험은 급성위험과 만성위험으로 나눌 수 있다. 미세먼지는 이 두 위험 모두에 해당한다. 미세먼지는 당장의 위험이자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서서히 갉아먹는 침묵의 살인자라고도 할 수 있다.
미세먼지는 어린이와 노약자, 호흡기질환과 심혈관질환을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는 매우 짧은 시간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이들은 다른 사람에 견줘 훨씬 더 적은 농도의 미세먼지에 훨씬 더 짧은 기간 노출되어도 심하면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다. 미세먼지 대책을 세우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상이다. 이들이 안전하면 다른 이들도 모두 안전하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이 미국의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10여 년간 연구한 최근 결과를 보면 미세먼지(PM2.5) 농도가 입방비터(㎥)당 10μg 증가할 때마다 노약자의 사망률이 1.0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00만 명당 하루 평균 1.42명이 추가로 사망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1년 중 3개월만 미세먼지 농도가 ㎥당 1μg 증가해도 미국 내에서 13년간 7150명이 추가로 사망하는 수치이다.
미세먼지는 만성위험도 고려해 대책을 세워야 하는 위험요인이다. 미세먼지는 심혈관질환이나 뇌혈관질환과 같은 급성·만성질환을 유발하고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암을 발생하게 만드는 발암물질이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기준치 이하라도 안심할 수 없는 위험
미세먼지는 기준치 이하라도 안심할 수 있는 성격의 위험이 결코 아니다. 암에는 건강역치, 즉 안전한 기준치가 없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미국에서 대부분(94%)의 조사 대상자가 미국 환경청(EPA) 기준(하루 평균 ㎥당 35μg, 연평균 ㎥당 12μg)보다 미세먼지 농도가 낮은 지역에 살았는 데도 사망률 증가 추세는 똑같거나 오히려 높았다고 밝혔다.
매에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미세먼지는 낮은 농도라도 꾸준히 노출되면 위험은 그만큼 커지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아는 상식이 되었다시피 사실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 등 선진국보다 미세먼지 농도 관리기준이 훨씬 더 느슨하고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는 훨씬 더 심각하다.
이러한 것들을 고려한다면 미세먼지 대책과 관련해 비용효과를 따지는 것은 그리 좋은 태도가 못된다. 미세먼지는 비용효과적인 대책이 있으면 이를 가장 우선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러한 방안이 보이지 않으면 때론 비용 대비 효과가 낮더라도 차량2부제, 출퇴근 대중교통 요금면제와 같이 과잉대책이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미세먼지에 대한 시민들의 경각심을 높이고 조금이라도 농도를 줄일 수 있는 것이라면 실행에 옮겨야 한다.
예산을 쏟아야 할 생명·건강 위협요인 가운데 미세먼지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어떤 것이 있는가. 미세먼지 저감이나 미세먼지 대책은 어느 특정 지자체만이 시행해야 할 일은 물론 아니다.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은 물론이고 충청권 등 전국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힘을 모아도 해결이 정말 어려운, 힘이 부치는 현안이다.
생명·건강과 안전은 정치적이자 사회적이다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 발언을 하는 것은 정치가 지닌 어쩔 수 없는 생래(生來)적인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이라도 할지라도 정말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심이 크고 또 오랫동안 이에 천착해 정책을 개발하고 실천해왔다면 그가 말하거나 내놓은 정책은 일단 비판적 지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시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인정받으면 다시 표를 얻을 수 있을 터이다.
미세먼지 문제는 매우 정치적인 현안이다. 우리의 생명과 안전은 곧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현안은 또한 사회 문제이다. 정치와 사회는 별개가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영역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세먼지 문제는 정치적이자 사회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미세먼지라는 위험의 특성이 만성위험과 급성위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또한 단기와 중장기로 나누어 마련해야 한다. 학교나 가정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거나 농도측정기를 설치하는 것 따위는 단기적인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중장기적 근본 대책은 미세먼지 발생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거나 대폭 줄이는 것이다.
여기에는 산업 형태와 에너지 사용 형태를 미세먼지가 나오지 않거나 적게 나오는 쪽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당연히 포함된다. 이와 함께 시민 스스로도 때론 불편함을 감수하는 행동이나 생활양식을 실천해야 한다. 큰 차를 굴리지 않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는 행동을 자나 깨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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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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