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국회 법사위 질의에서, 민주당 박영선 의원도 관련 편지를 거론하며 '회유 의혹'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한 검사가 '미국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적힌 김 씨의 편지가 있노라고 했다. 김 씨가 어떤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라고 했다. 이귀남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한 이날 질의에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에리카 김과 검찰권력이 이미 거래를 해서,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김경준 씨가 꼭 미국으로 갈 것으로 본다"며 '빅딜 의혹'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날 박영선 의원이 밝힌 내용은 사안의 성격상 특히 휘발성이 강한 이야기였으나, 편지관련 질의가 짧아서였는지, 이 장관이 답변을 하지 않고 넘어갔기 때문인지, 모두들 주목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언론들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맞다. 그런 편지가 있다. 김경준 씨가 최근 자신의 담당 변호사에게 자필로 써서 보낸 편지다. 형이 확정돼(징역 8년, 벌금 100억 원) 복 역중인 죄인이, 만나서 이야기해도 될 담당변호인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내용의 신빙성 등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도 있다.
▲ 김경준 씨 ⓒ연합 |
이어 김경준 씨의 담당변호사 2명을 상대로, 5억 50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2007년 대선직전 "검찰이 김경준씨를 강압수사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이, 수사검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었다. 두 사건 모두 허위사실이라는 주장이었다. 2010년 초, 3600여만 원을 검사들에게 배상하라는 <시사 IN> 소송 1심 판결에 이어, 김 씨 변호사 2명의 소송에서도 3000여만 원의 배상판결이 나왔다. 두 사건 모두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문제가 생긴 건 2010년 연말경, 김경준 씨 변호사 2명의 항소심 진행과정에 탈이 붙었다. "김 씨에 대해 강압수사를 했다"는 증언을 해줄 사람이 갑자기 꼬리를 빼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아닌 김경준 씨가 그랬다. 변호인들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바로 김 씨를 위해 문제를 제기하는 기자회견까지 했던 변호사들이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김경준 씨가 법정증언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1심 재판 때는 한차례 증언을 했으나, 작년 12월의 항소심 재판 때는 증언요청을 잇달아 두 차례나 거절했다.
그리고는 얼마 후 편지가 왔다. 검찰이 미국송환을 추진하고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 자신이 증언에 나섬으로써 '송환'에 지장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 변호사님들에게 죄송하다는 것, 그런 내용이었다. 변호인 측은 이어, 한국에 들어온 에리카 김을 증인으로 신청해 채택됐으나, 그녀 역시 이미 출국해버려 증언은 이뤄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편지 내용대로 미국 시민권자인 김경준 씨가 추방형식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그쪽 교도소로 이송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한마디로 갇혀있는 새가 새장에서 문을 열고 파란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뜻한다. 우선 부모와 누나·처자 등 가족이 모두 그쪽에 있고, 미국 법에 따른 가석방의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국제 수형자 이송법'이 일찌감치 준비되어있다. 이 법은 당초 '해외국적자의 국외 이송'은 국제수형자심사위원회의 심사절차를 거치도록 되어 있었으나, 2009년 3월 '그냥 법무부장관의 결정만으로도 이송이 가능하도록' 개정되었다. 개정 때 '김경준 법'이라고 논란이 있었던 그 법이다.
때문에 에리카 김이 지난 2월 입국한 것은 동생의 미국 송환을 포함한 '최종 빅딜'을 하기위한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는다. 현재의 상대대로라면 우선 의혹을 받고 있는 MB쪽의 입장에서도, 김 씨가 폭탄의 뇌관 같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보고 있다. 언제 어떻게 입을 열어 '일'을 낼지 모른다고 했다. 입만 다물고 있어준다는 '보장'만 있으면, 미국에 가 있는 게 좋을 것이라 했다.
그 '보장'으로 짐작되는 일이 최근에 있었다. 대통령의 큰 형인 이상은 씨와 처남 김재정(작고)씨가 대주주로 돼 있는 다스(MB가 사실상의 주인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2000년 BBK에 190억 원을 투자했다가, 140억 원을 떼였다며, 2003년 5월부터 김경준씨와 에리카 김 남매를 상대로 미국에서 반환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다스는 2007년 8월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심이 계류 중이다. 승패를 예단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작년 11월 8일 김경준 씨가 갑자기 미국법원에 "다스는 이명박 대통령이 실소유주이므로 그가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는 자필 청원서를 낸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그 열흘만인 11월 8일, 다스는 김 씨 남매와 합의하기로 한다. 따로 예금돼 있는 김 씨 남매 재산을 다른 소송으로 빼앗기기 전에, 다스와 김 씨 남매가 나눠 갖기로 합의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김 씨 남매와 다스가 윈윈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범죄인으로 수배상태였던 에리카 김이 한국에 들어온다. 맹활약하고 한 달 만에 출국했다. 수상하다.
에리카 김은 서울에서 "이명박 후보가 BBK 실소유주라 한 2007년 대선 때의 발언은 거짓말"이라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 부분과 주가조작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했다. 또 에리카 김이 동생과 짜고 BBK 자금 319억원을 횡령한 혐의는 인정되나, 에리카 김의 가담 정도가 가벼워 기소유예했다고 했다. 횡령액 중 에리카 김의 횡령부분은 444만달러(약 50억원)였다. 가담정도가 결코 가볍지 않다.
2007년 수사당시 검찰은 에리카 김이 미국에서 다른 사건에 연루돼, 3년의 보호관찰처분을 받아 귀국이 불가능하다며, 범죄인도요청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었다. 한 번도 그런 요청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형사처벌을 모두 면제해줬다. 동생의 미국 송환을 약속 받았으리라는 의혹도 그래서 나온다.
도곡동 땅 판 돈의 일부가 다스로 몰려갔고, 그 회사 자금이 BBK로 흘러갔다. 일찍이 MB 스스로 "BBK는 내가 세웠다"한 그 많은 인터뷰 기사들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채 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MB가 "BBK를 설립했다"고 강연한 동영상도 있다. 'BBK 투자 자문회사 대표 이명박'이라 인쇄된 명함은 이 나라 전직 대사가 MB한테서 직접 받아 갖고 있다. 최근 다스의 지분분포가 'MB쪽으로' 쏠린다 했다. 대통령의 아들이 그 회사에서 초고속 승진을 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데도 아니라고 했다. 도곡동 땅이나 다스나 BBK는 몽땅 MB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몇 년째 너무너무 혼란스럽다. 그래도 믿으라면 그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믿는 시늉만 할 수는 없다. 에리카 김이 백번 천번 왔다가고, MB가 김경준 씨의 입을 막아 미국보다 더 먼 나라에 보낸다해도,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믿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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