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국회 회기 내에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려는 한나라당과 "피해 농가에 대한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며 반대하는 민주당이 대립하는 가운데,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이 "물리력을 동원한 일방적인 강행 처리에 반대한다"며 기권했기 때문이다.
홍 의원의 의사표현에도 불구하고 유기준 법안심사소위 위원장(한나라당)은 "가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홍 의원이 이후 국회 정론관까지 찾아 본인의 기권 의사를 재확인했지만, 법률가 출신의 유 위원장은 홍 의원의 의사를 '찬성'이라고 우기고 있다.
외통위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법안심사 소위에서 벌어진 '해프닝'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다 산회됐다.
'기권'한 홍정욱 "한-EU FTA 지지하지만 일방적인 강행 처리 반대"
국회 외통위는 이날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김종훈 외교통상본부장 등으로부터 한-EU FTA에 따른 국내 산업과 농어업 피해대책을 들었다.
유기준 위원장은 김종훈 외교통상본부장 등 정부 측의 설명이 끝난 후 비준동의안 의결을 시도했다.
민주당 간사인 김동철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이 이를 제지했지만 유 위원장은 "찬성하는 의원들은 기립해 달라"며 의결을 강행했다. 그리고 곧이어 유기준 위원장은 "가결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유기준 외통위 법안심사소위 유기준 위원장은 김종훈 외교통상본부장 등 정부 측의 설명이 끝난 후 비준동의안 의결을 시도했다.ⓒ연합뉴스 |
논란은 찬성자 숫자에서 빚어졌다. "비준안 처리에 찬성하는 의원들은 일어나 달라"는 유 위원장의 말에 찬성 의사를 피력한 것은 한나라당 최병국, 김충환 의원이었다. 같은 당 홍정욱 의원은 공교롭게도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기권하고 퇴장하겠다"며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유기준 위원장은 홍 의원을 포함해 찬성이 4명이라고 주장했고, 김동철 민주당 의원 등 민주당은 홍 의원을 빼면 찬성이 3명 뿐인만큼 부결이라고 맞섰다.
논란이 계속되자 홍 의원은 직접 정론관을 찾아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홍 의원은 "한-EU FTA를 적극 지지하지만 물리력을 동원한 일방적인 강행 처리에 반대해 기권했다"고 분명히 밝혔다. 홍 의원은 "야당의 반대를 위한 반대는 용납할 수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회의 신뢰 회복"이라며 "더이상 생떼와 강행으로 얼룩진 국회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정욱, 왜 한나라 발목 잡았나? 홍정욱 의원은 왜 이런 '소동'을 일으킨 것일까. 홍 의원은 한나라당 내의 '국회 바로세우기' 모임 소속이다. 이 모임은 지난해 말 4대강 사업, 형님 예산 등이 포함된 예산안 처리 당시 극심한 폭력 사태를 빚은 것이 계기가 돼 여당 의원 23명이 책임에 통감하고 국회 자정을 추구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2011년 예산안이 날치기 처리 된지 8일만인 지난해 12월 16일, 이들 의원들은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못 지키면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자성과 결의' 성명서에 서명을 했다. 이들은 "예산안 강행처리에 동참함으로써 국회를 폭력으로 얼룩지게 만든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반성한다"며 기자회견까지 했다. 이들은 이듬해 직권상정 제한 방안 등을 담은 국회 개혁법안을 제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홍정욱 의원은 "한미 FTA에 공감하지만 정부가 설득노력을 해야 한다. 물리력을 동원한 직권상정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이날도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번역 오류로 국민이 납득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만큼 빠르게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는 것보다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의원의 이런 소신으로 한나라당은 톡톡히 망신을 당하게 됐다. 공교롭게도 홍 의원이 소속된 '국회 바로세우기' 모임에는 외통위 위원장인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도 들어가 있다. |
野 의원들 "부결을 유기준이 가결로 둔갑시켜"
홍 의원이 이처럼 기권 의사를 법안심사 소위 회의장 안팎에서 여러 차례 밝혔음에도 유기준 위원장은 "비준 동의안은 가결된 것"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법안심사소위에 이어 열린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유기준 위원장은 홍 의원의 '기권 의사'를 "(가결 선포에 대한) 이견이 있어 논란이 발생"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무슨 소리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유기준 위원장은 '논란'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홍정욱 의원이 본인의 진의가 기권이었다고 한 만큼 비준동의안은 분명히 부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주선 민주당 의원도 법안심사소위 속기록 등을 근거로 "당시 김동철 의원이 '찬성이 세 명 밖에 안 된다'며 분명하게 이의를 제기했고 속기록에 홍정욱 의원은 '기권'으로 기록돼 있다"며 "국회법에 따르면 의장은 그 이의가 정당하다 인정될 때는 다시 표결 결과를 취소할 수 있음에도 유기준 위원장이 가결로 둔갑시켰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유 의원은 "일방적인 주장으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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