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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밀어낸 건 공포였다 "강제집행, 너무 무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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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밀어낸 건 공포였다 "강제집행, 너무 무서웠어요"

11일, 건물주와 조정안 합의..."손님 있는한 영업 계속한다"

"90년대에 나온 최신 가요집을 찾는데요. 있나요?"

40대 남성 손님이 이리저리 책을 뒤지면서 묻자 '공씨책방' 대표 최성장 씨가 이내 책들로 빽빽한 책장 깊숙한 곳에서 손님이 원하는 책을 찾아 건넸다.

"여기 있잖아. 바로 코앞에 있는데..."

12일 오후 1시. 평일 영하의 날씨임에도 손님들이 공씨책방을 찾았다. 방문객 대부분은 자신이 필요한 책을 콕 집어서 책방 주인에게 말했다. 방대한 책 중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손님들은 오래전 절판된 책을 많이 찾아요. 사실 '알라딘' 같은 곳에서는 그런 헌책들을 팔지 않거든요. 아니, 못 팔죠. 그렇다 보니 우리 책방을 찾는 분들은 그런 책을 많이 찾는 편이죠."

최 씨와 함께 공씨책방을 운영하는 장화민 씨는 공씨책방 설립자 고(故) 공진석 씨의 조카다. 공 씨 처제인 최 씨와 함께 책방을 꾸려나가고 있다.

▲ 공씨책방. ⓒ프레시안(허환주)

5일까지 가게를 비우기로..."강제집행이 두렵다"

공진석 씨가 1972년 동대문구 회기동에서 시작한 공씨책방은 1980년대 광화문 근처에 자리 잡으며 한때 전국 최대 규모 헌책방으로 명성을 날렸다. 1995년 신촌 현대백화점에서 100미터 떨어진 지금 자리로 이사한 뒤, 22년째 운영하고 있다.

공씨책방은 오랜 기간 서울에서 헌책방으로써 그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시는 '미래유산'으로 공씨책방을 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헌책방 운영이 쉽지 않다. 오는 2월 5일까지 현재 영업 중인 장소를 건물주에 내어주기로 했다. 새 건물주가 지난해 임대차 계약 갱신을 거절하고 건물명도 소송을 냈다. 올해 9월, 1심 재판부는 건물주 손을 들어주었다.

장화민 씨는 1심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이대로 쫓겨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장 씨는 "공씨책방의 사회적 의미와 우리가 왜 이 책방을 지키려 하는지를 법원에 좀 더 이야기해보려고 했다"고 항소 이유를 설명했다.

1심 재판부도 이례적으로 쫓겨나야 하는 공씨책방의 상황에 대해 "현행법으로는 이런 결론밖에 가능하지 않다"며 "재판장으로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1일, 건물주와 장 씨 측은 조정안에 합의했다. 일정 보상금을 받고 2월 5일까지 가게를 비우기로 했다. 강제집행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법원 집행관이 언제든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웠어요. 작년에 궁중족발 강제집행 현장에 갔었는데, 그때 집행관이 강제집행을 하면서 족발집 사장님 손가락이 절단됐잖아요. 그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죠."

1심에서 패소한 자신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강제집행이었다. 장 씨가 2심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정안을 받아들인 이유다.

▲ 공씨책방. ⓒ프레시안(허환주)

"손님이 있는 한 책방을 접을 수는 없어요"

공씨책방이 자리를 비워주기는 했으나, 간판까지 내리는 것은 아니다. 현재 새로운 장소를 물색 중이다. 하지만 다음 달 5일까지 이를 찾기란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워낙 방대한 책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김포에 위치한 헌책방 협동조합에서 쓰는 10평정도 창고에 책을 가져다 놓기로 했어요. 거기에도 여기 책이 다 들어가지 못하기에 인근에 책을 보관해놓은 지하창고가 있거든요. 워낙 오래되고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책은 그곳에 보관해 두었어요. 우선 그곳에 여기 책들을 옮기기로 했어요."

일단 5일까지 지금 장소를 비우기로 했으니, 그것부터 해결해야 하는 장 씨다. 공씨책방 간판이 달릴 곳은 추후 살펴봐야 하는 상황. 하지만 갈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아마 지하로밖에 갈수 없을 듯해요. 그간 높아진 임대료와 보증금을 맞추려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슬프지 않을 수 없죠. 오래 지켜온 공간을 내어주고 내몰려야 한다는 게..."

그럼에도 공 씨가 헌책방을 이어가는 이유는 손님 때문이란다. 공 씨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책을 우리 책방에서 찾을 경우, 손님은 무척 기뻐한다"며 "나 역시도 책의 주인을 찾아준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공 씨는 내몰리는 현실이 두렵고 불안하지만, 그런 손님이 존재하는 한 책방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공씨책방 간판을 언제쯤, 그리고 어디에서 우리는 다시 찾아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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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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