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맞바꾼 위험한 기적
지역주민은 사고발생 당일인 12월 7일부터, 자원봉사자들은 12월 8일부터 방제작업에 참여하였다. 사고가 발생한 12월 7일은 바람도 거세고, 날씨도 추워 방제작업을 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사고 초기에는 마스크, 장화, 방제복 등 보호도구도 지급되지 않아 초기에 방제작업에 참여한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은 다량의 유류 오염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2008년 7월 4일까지 연인원 약 212만 명이 방제작업에 참여하였으며, 이 중 약 123만 명이 자원봉사자들이고 지역주민은 약 55만6000명이었다.
태안군청에 등록된 자원봉사자들을 연령별로 분석해보면 10~19세의 어린이·청소년이 전체 자원봉사자의 약 23.9퍼센트였다. 이 수치가 말해주는 것은 방제작업자의 대부분이 방제작업에 대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심지어는 생물학적 취약계층인 어린이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원봉사자와 지역주민, 해양경찰, 군인 등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태안 앞바다는 깨끗해졌고, 세계 언론에서는 이를 '기적'이라고 불렀지만, 환경보건 전문가들은 '생태계 복원을 건강과 맞바꾼 위험한 기적'이라고 부른다.
기름의 독성
유출된 기름에는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Polycyclic aromatic hydrecarbons), 휘발성유기화합물 (VOCs: Volatile Organic Compounds), 중금속 등이 함유되어 있다. 이러한 유해화학물질은 다양한 경로로 인체에 들어와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 호흡기를 통한 노출이다. 기름이 유출되면 강한 독성물질이 기체로 변해 대기 중으로 증발하게 되는데 사고 초기로부터 일주일 이내가 가장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사고 초기 제대로 된 마스크조차 하지 않은 방제작업자들은 호흡기를 통해서 다량의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피부를 통한 노출이다. 사고 초기 방제복 등 보호구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을 때 대부분의 주민과 자원봉사자가 맨손으로 기름을 닦아내거나, 일렬로 줄을 서서 기름통을 옮겼다고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기름은 호흡뿐 아니라 피부에도 묻게 되었다.
셋째, 바다와 공기, 흙 속으로 사라져버린 유해물질이 농수산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사람이 섭취하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는 태아의 경우 태반을 통해 노출된다. 이렇게 노출된 유해물질로 인한 건강영향은 크게 급성과 만성, 치명적 혹은 회복 가능한 건강영향을 미친다.
사고 발생 초기부터 주민 건강 적신호
사고 발생 3주부터 정부와 대학, 환경단체, 연구소 등 전문기관, 산업체 등에서 약 9개월(07~ 08.9)에 걸쳐 급성기 건강영향을 조사했다. 지역주민(성인 및 어린이)과 자원봉사자, 산모를 대상으로 신체증상과 정신건강 등을 연구하였다.
방제작업 기간이 길고, 원유에 많이 노출될수록 눈 따가움, 목 자극, 두통, 피로감, 메스꺼움 등 신체자각증상이 높게 나타났다. 어린이의 경우 집이나 학교로부터 거리가 가까울수록 신체증상 호소율이 더 증가하였다. 자원봉사자의 방제작업 이후 요중 대사체 분석 결과, 방제작업 전에 비해 작업 후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대사체 농도가 높아졌다. 산모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유류 사고 시 거주지역이 오염지역과 가까울 경우 두통의 호소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지역 주민의 정신건강 분석에서는 오염해안에서 주거지까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어업 관련 직업일수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자살 생각, 우울과 불안의 위험이 높았다. 기름 오염 사고는 어린이의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태안지역 어린이의 불안 증상 유병률은 다른 지역에 비해 높게 나타났으며, 사고지점으로부터 집이나 학교가 가까울수록, 우울과 상태불안의 위험이 높게 나타났다.
백혈병과 전립선암 증가율 및 발병률 높아
기름의 노출로 인한 건강영향의 결과들이 발표되면서, 지역주민에 대한 좀 더 긴 기간 동안의 건강영향을 살펴봐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에 환경부에서는 지역주민의 건강영향조사를 중장기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2008년 7월 태안군보건의료원에 태안환경보건센터를 지정하였다. 태안환경보건센터에서는 2009년부터 성인 및 어린이를 대상으로 건강영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2017년 현재까지 연인원 약 1만8121명이 참여했으며, 이중 성인은 1만3739명, 어린이청소년은 4382명이다.
지역주민의 건강영향조사 결과, 사고 발생 1.5년 후 방제작업 기간이 길수록 요중 다환방향족 탄화수소 (PAHs) 대사체 수준이 높았다. 방제작업 참여일수가 길수록 DNA 산화손상지표인 8-OHdG, 지질산화손상지표인 MDA 수준이 높았다.
사고 발생 6년 후 방제작업기간과 산화손상지표수준과의 관련성 분석 결과, 방제작업 일수가 길수록, 사고 지점부터 거주지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DNA 산화손상지표인 8-OHdG와 지질산화손상지표인 MDA 수준이 높았다. 산화스트레스는 암, 당뇨, 심혈관 질환과 같은 만성질환의 위험요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고가 발생한 지 6년이 지났음에도 기름오염에 노출이 많이 되었던 지역주민에게서 이 지표가 높다는 것은 향후 만성질환이 발생하거나 더 나빠지는 것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어린이의 경우, 사고 발생 1.5년 후 조사 결과, 사고 지점으로부터 거주지까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천식 유병률이 더 높았다. 사고 발생 3년 후 사고 지점과 거주지, 학교와의 거리가 가까운 초등학생에게서 천식 증상이 더 높았고, 전국 수준에 비해 2배 이상 천식 유병률이 높게 나타났다. 사고 발생 5년 후에는 기름에 많이 노출된 지역과 적게 노출된 지역의 학생들에게서 천식 유병률이나 폐 기능의 차이는 없어서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이 호흡기의 경우는 많이 회복된 결과를 보여줬다.
암은 그 발생이 많지 않기 때문에 건강영향조사 대상자만으로 결과를 보기에는 어렵기 때문에 국가에서 제공하는 통계자료를 이용하여 태안지역의 암 발생률을 조사하였다. 암 종은 우리나라 국민에게서 많이 발생하는 5대암(남성: 위암, 폐암, 대장암, 간암, 전립선암, 여성: 감상선암, 유방암, 대장암, 위암, 폐암)과 유해물질 노출 이후 가장 먼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백혈병을 분석하였다. 조사연도는 1999~2013년까지이며, 태안군과 전국, 태안군과 다른 군, 태안군 내의 기름오염에 많이 노출된 그룹과 상대적으로 적게 노출된 그룹을 비교하였다. 다른 군과의 비교 시에는 태안군과 인구구조가 비슷한 군을 선정하여 비교하였으며, 지난 5년 발생률을 비교하였다.
그 결과, 태안군과 전국과의 비교에서는 모든 암의 증가율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태안군과 다른 군과의 비교에서 사고 발생 이후인 2009~2013년까지의 5년간 발생률은 남성 전립선암과 여성의 백혈병에서 그 이전보다 증가율이 높았으며, 발생률도 높았다. 기름 노출에 따른 비교에서도 많이 노출된 지역이 적게 노출된 지역보다 남성 전립선암과 여성 백혈병 모두 증가율과 발생률이 모두 높게 나타났다.
주민 건강 위한 정책 수립과 지속적인 조사 필요
암은 만성질환으로서 노출에서 암 발생까지는 최소 10년 이상, 20년 정도 걸리므로 현재 태안지역 주민의 암 발생률이 유류 유출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향후보다 긴 추적 관찰이 필요하지만 지역주민의 건강을 위해서 신속한 정책이 마련되고 시행되어야 한다. 태안환경보건센터에서는 2018년부터 고(高)노출지역 60대 이상의 남성에게 무료로 전립선암 표지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며, 여성 백혈병의 조기 발견을 위해서는 건강검진에 적극 참여하시도록 독려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중장기 건강영향 결과 및 암 발생률 결과를 볼 때 태안지역에서는 건강영향조사의 지속적인 추진을 통해 기름오염의 노출로 인한 건강영향과의 관련성을 심도 있게 밝히고, 지역주민의 건강증진을 위한 정책 수립과 실행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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