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애나大 전설이지만 폭력 감독의 멍에를 쓴 보비 나이트
▲ 바비 나이트 전 인디애나 농구부 감독 ⓒ로이터=뉴시스 |
농구에 대한 철학도 분명했다. 그는 슛을 잘 하는 선수나 몸이 민첩한 선수보다 부지런하고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선수를 원했다. "누구나 이기려는 의지는 갖고 있지만 이기기 위해 준비하는 의지는 부족하다"는 그의 말처럼 선수들은 짜여진 프로그램에 맞춰 이기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나이트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그는 화를 참지 못했다. 79년 미국 대표팀 코치로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팬암게임에 출전했을 때, 그는 경찰관 폭행 사건 때문에 체포됐다.
85년에는 퍼듀 대학과의 경기에서 자신이 앉고 있던 오렌지 색 의자를 코트에 내동댕이 쳤다. 심판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이를 지켜 본 모든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지만 인디애나 선수들은 놀라지 않았다. 연습할 때마다 그는 수없이 많은 의자를 집어 던져왔기 때문.
다혈질 감독 나이트는 2000년 최대 위기를 맞는다. 3년 전 연습할 때 그가 지도하던 선수에게 부적절한 폭행을 가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결국 동영상이 공개됐다. 이와 함께 코치에게 의자를 던졌고, 학교 체육 홍보 담당관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린 사건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인디애나 대학에 몸담고 있던 브랜드 총장은 나이트 감독에게 '향후 또 다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경우 더 이상 정상참작은 없다' 는 최후 통첩을 했다.
감독 영향력에 굴복하지 않고 원칙 지킨 대학 총장
그러나 나이트 감독은 또 사고를 쳤다. 한 인디애나 신입생과 말다툼 끝에 그는 또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 그는 함부로 지껄이는 신입생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서라고 변명했지만 결국 인디애나를 떠나야 했다.
나이트 감독을 영웅처럼 떠받드는 약 2천명의 인디애나 대학생들은 그의 경질 소식을 듣고 총장의 집 앞에서 항의 시위를 했다. 총장의 부인은 대피해야 했고, 경찰이 출동해 겨우 시위가 진압될 정도였다.
나이트 감독이 인디애나 대학에서 고별 인사를 할 때도 8천 여명의 학생들이 운집했다. 대부분 나이트 감독이 부당하게 학교를 떠나게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브랜드 총장은 나이트 감독의 영향력과 재학생들의 저항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불미스러운 사건은 내가 알고 있는 나이트 감독과 관련된 수많은 사건 중 하나일 뿐이다. 대학에서 체육활동은 중요하지만 핵심은 아니다. 이번 나이트 감독의 경질이 이를 일깨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일갈했다.
"박철우가 대드는 바람에…"
▲ 배구 국가대표 박철우 선수가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상렬 코치에게 폭행당했다며 얼굴에 난 상처를 공개했다. ⓒ연합뉴스 |
브랜드 총장은 전국구 스타 나이트 감독의 명성과 재학생들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았고,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국내 체육계에 만연돼 있던 폭력 불감증에 종지부를 찍었다.
박철우가 기자회견을 한 뒤 그를 폭행한 장본인으로 지목된 이상렬 코치는 "훈련 뒤 선수들에게 몇 마디 질책을 하려고 했는데, 몇몇 선수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박철우가 대드는 바람에 흥분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배구 대표 선수들의 전언에 따르면 전에도 이 코치와 박철우가 훈련자세 때문에 갈등을 빚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코치는 사건이 벌어진 뒤, 김호철 감독에게 이를 보고했지만 김 감독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폭행을 당한 박철우가 김 감독을 찾아갔을 때도 감독은 "참으라"고 말했다.
물론 훈련 기간 중 선수와 코칭 스태프와의 갈등은 있을 수 있다. 선수의 불성실한 태도를 호되게 질책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 부분은 지도자의 몫이다. 하지만 선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와 반발심만을 키운다.
"더 이상 폭력 대물림은 없다"
그럼에도 국내 스포츠 현장에서 이런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해 왔다. 과거로부터 폭력이 지도자의 카리스마 리더십의 수단으로 사용된 경우도 많았다. 최근에는 지도자의 카리스마가 인정 받으려면 오히려 선수들과의 '소통의 리더십'이 절실한데도 말이다. 또 이런 일이 알려졌을 때도 일선 경기단체들은 재발방지 보다는 안이한 뒷수습으로 일관했다.
이번 사건이 터진 뒤 한 배구협회 임원도 "우리도 옛날에 맞으면서 운동했다. 이 코치가 잘못했지만 너무 가혹한 처벌이다"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배구협회가 박철우의 기자회견을 막고 조용히 처리하려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진노했다. 그는 태릉 선수촌장에게 이상렬 코치를 형사고발 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23일 "폭력 대물림 같은 생각은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올림픽 등의 대회를 앞두고 폭력 지도자가 복권되는 사례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잘못된 체육계 관행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폭력 감독의 반면교사, 나이트 감독의 빛바랜 902승
보비 나이트 감독은 경기 도중 의자를 코트에 던진 뒤 퇴장을 당했을 때 라커룸에서 울었다. 그의 한 측근은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는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TV를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보던 그의 어머니는 "오 보비, 오 노(Oh, Bobby, Oh no)"라고 외쳤다.
나이트 감독이 폭행문제 때문에 인디애나 대학을 떠날 때 마지막 연설을 위해 연단에 들어서면서 그의 부인 카렌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눈물을 닦던 카렌은 "이 입맞춤이 (나이트 감독이 저지른 잘못된 행동과는 달리)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농구에 대한 열정, 팀 조직력을 만드는 능력에 있어서는 신의 경지였던 나이트 감독이 남긴 코트에서의 공적은 최고다. 나이트 감독은 인디애나 대학을 떠난 뒤, 텍사스 테크 대학으로 옮겨 미국 대학농구 역대 최다승(902승) 감독에 등극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안타깝게도 폭력 감독이었다는 검은색 꼬리표 하나도 항상 같이 붙어 다닌다. 혹시 아직도 어딘 가에 있을지 모를 폭력 지도자들이 잊지 말아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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