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속담에 ‘햇빛이 있는 곳에는 중국인이 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 세계 구석구석에 중국인들이 포진해 있다.
화인화교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화교 인구는 4000~5000만 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동남아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IMF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GDP가 12조 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동남아 화교들의 유동자산은 4조 달러로, 대한민국 GDP의 2,5배 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화교들의 경제력은 가장 막강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중국계 이민자들은 화교(華僑), 화인(華人), 화예(華裔)로 분류하고 있는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화교는 외국에 살면서 중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또 화인은 현지 국적을 갖고 있지만 중국계 사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고, 화해는 중국계 사회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본인이 중국계인 것을 아는 현지인을 화예라고 부른다.
추진기(가명)씨는 대만출신의 화교로 어려서 부모님을 따라 대전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는 대전역 주변에서 구두닦이와 신문팔이를 하다가 소매치기를 거쳐 도박세계와 인연을 맺은 뒤, 평생을 도박으로 살아온 국내 유일의 화교출신 도박사로 알려졌다.
도박세계에 발을 들인 그는 전문 도박꾼들만 참여하는 기획도박단에 참가하면서 ‘도박기술자’로 차츰 자리를 잡았다.
아무리 돈이 많은 재력가라도 도박판에서는 장사가 없다는 것을 숱하게 목격한 그는 어떠한 경우에서도 돈을 잃지 않는 기술을 갖추면서 약육강식의 치열한 도박세계를 경험하였다.
그의 도박세계를 지켜본 이모씨는 “화교출신인 추씨는 느긋한 성격에 예리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 상대가 어떤 베팅을 하거나 심지어 사기도박을 해도 마지막까지 판돈을 지킬 정도로 도박판에서 추락하는 일이 없었다.
스타일 자체도 차분하기 때문에 치고 빠지는 일에도 능했기에 절대 돈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30년 이상 도박판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2000년 강원랜드가 개장하자 고한에 정착했다.
사교성이 좋은 탓에 VIP룸에 출입하면서 돈 많은 VIP고객의 대리베팅 전문으로 강원랜드에 출입하였다. 화교는 외국인 신분이기 때문에 내국인과 달리 출입일수에 아무런 제한이 없었기에 그는 VIP룸의 병정으로 근무하는데 있어 적격이었다.
특히 그는 손님의 칩을 몰래 가로 채거나 거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VIP 고객들로부터 가장 인기 높은 병정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는 주먹출신 고객이나 꽁지들이 호텔에서 비싼 식사를 하고 콤프로 결제를 요구해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그 요구를 다 들어준 사람이다. 그만큼 자신을 한 없이 낮추고 남과 말다툼 한 번 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추진기는 강원랜드 VIP 고객으로 카지노에서 게임을 했지만 자신이 번 돈으로 베팅을 하는 일은 전혀 없었고, 불필요한 용돈도 지출하지 않았다.
병정으로 대리게임을 하면서 그는 수고비로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벌고 콤프(게임 마일리지)로도 연간 1억 원 이상을 벌게 되었다.
이렇게 번 돈과 콤프를 이용해 그는 2남2녀의 자녀를 모두 프로골프로 만들 정도로 강원랜드에서 가장 ‘성공한 병정’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가 2006년 6월 말, 강원랜드 VIP룸에서 병정으로 대리게임을 하면서 강원랜드 리조트 카드에 쌓인 콤프가 3억 원을 넘었다.
콤프깡 업자 이미숙(가명)씨가 당시 1억 원 어치의 콤프를 추씨에게 3000만 원을 주고 매입한 뒤 여름 휴가철 하이원 골프장에서 여행사를 상대로 1박2일, 혹은 2박3일 패키지 상품 판매로 돈을 버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래, 저거야. 콤프를 제대로 팔려면 여행사와 손잡고 골프 36홀, 골프텔 숙박, 식사제공을 포함하면 1인당 150만 원, 팀당 400만 원, 10팀이면 4000만 원이 된다. 내가 여행사와 직거래를 해야겠다.”
이때부터 진기는 여행사를 통해 남은 콤프 2억 원 어치를 처분하면서 불과 2개월 만에 목돈을 만들 수 있었다.
진기는 3형제 가운데 큰 형이지만 공교롭게도 그의 두 동생도 형이 돈을 잘 버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곧장 대전에서 강원랜드로 생활터전을 옮겼다.
바로 아래 동생은 강원랜드 카지노 일반 영업장에서 수천만 원을 가지고 꽁지를 하면서 게임을 하며 형과는 다른 세상을 살았다.
또 가장 성격이 유순한 막내는 전당포에서 청소를 하거나 겜블러의 대리게임(병정)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들 3형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 돈을 거래하는 일이 없었고 급한 일이 생겨도 형이나 동생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07년 봄 진기씨는 수원에서 모텔 등 10억 원대의 부동산을 소유한 50대 여성(이혼녀)을 만나 그의 친동생과 ‘작업’을 하는 바람에 강원랜드를 떠나고 말았다.
“마카오에서 정켓사업을 하는 동업자가 있는데 5억 원만 투자하면 1년에 10억 이상을 벌 수 있다. 외국여행도 하면서 남은 인생을 멋지게 살아야 할 나이 아니냐. 수원의 부동산을 처분해 동생과 함께 정켓사업을 하자.”
그러나 진기와 그의 동생은 이 여성의 돈을 모두 챙긴 뒤 오히려 사기를 당했다고 그럴듯한 자료를 보여주며 그 여성을 속이려 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진 이 여성은 곧바로 진기를 경찰에 사기혐의로 고소하자 그는 그해 여름 필리핀으로 도피 하였다.
마닐라의 맥심카지노와 COD카지노를 전전하며 하루에 수십만 원을 버는 ‘생활도박’으로 근근히 생활해가고 있는 그는 벌써 65세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흘러간 가수’ 임수미(가명)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 강남에서 조그마한 카페를 운영하면서 2002년부터 강원랜드에 출입하였다.
그래도 명색이 전직 가수라고 돈 많은 ‘실버고객’이 강원랜드 VIP고객인 탓에 임씨도 그 회원의 배려로 VIP 회원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은퇴 가수는 카페 단골고객 겸 강원랜드 실버고객들과 강원랜드를 출입하는 날이 잦았다.
안면 있는 고객이 수천만 원의 돈을 따면 조용히 임씨를 불러 부탁 하였다.
“임 가수! 내가 오늘 재수가 옴 붙어 재미를 봤는데 혼자 잘 수가 없네. 지금 당장 후배 가수 3명만 불러 줄 수 있을까?”
임씨는 곧장 전화를 걸었다.
“야! 수정아, 오늘 돈 많고 멋있는 오빠가 한 턱 쏜다는데 진실이하고 영애랑 3명이 이쁘게 옷 입고 얼른 택시 타고 와라. 화장은 택시에서 하고. 강원랜드 커피숍에서 보자.”
임수미 가수를 잘 아는 A씨의 회고.
“1980년대 후반까지 잘 나가던 임수미 가수는 돈 많은 실버층과 강원랜드 VIP룸에 자주 방문하였다. 돈을 딴 손님 2명이 후배 가수나 연예인 3명을 부르게 된다. 파트너를 못 구한 여성은 교통비로 300만 원을 챙겨주었고, 파트너로 선택된 여성은 하룻밤에 500만 원이나 그 이상을 받았다. 그 은퇴한 가수는 강원랜드 VIP룸에서 마담뚜로 통했다. 그 가수는 중간에서 이런 역할을 하면서 용돈을 버는 재미에 강원랜드를 자주 찾았다.”
강원랜드에서 꽁지를 시작한 주씨 3형제도 다양한 사연을 남겼다.
그가 돈을 많이 번 것은 2003년 메인카지노가 개장한 이듬해부터 강원랜드 꽁지 가운데 ‘톱3’에 들 정도로 재미를 보았다.
큰 형인 주자강(가명)의 회고.
“강원랜드 VIP룸에서 원래 5일에 1할 이자를 받으며 돈을 빌려주는데 대부분 하루에 원금과 이자를 다 회수하는 일이 많았다. 선이자를 떼고 돈을 빌려 주는 사채업은 은행이 문을 닫는 야간에 손님이 줄을 이었다.
신용이 좋은 고객은 하루에 10억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지금까지 최고 많이 번 날을 기억하는데 2004년 여름 단 하루에 8억 3000만 원을 벌었다.
그날은 디퍼런스 게임을 하는데 고객이 플레이에 1억 원을 베팅하면 상대 고객이 뱅커에 1억 1000만 원을 베팅하게 된다. 이런 큰 게임을 하는 고객에게 10억 원을 빌려 주고 다른 고객에게도 비숫한 액수를 빌려줬다.
돈을 딴 고객이 빌린 돈을 갚았는데 다시 돈을 잃으면 또 대출을 받았다. 또 고객들은 빌려준 돈으로 돈을 따게 되면 원금을 상환하면서 기분이 좋다고 몇 백만 원은 기본이고 몇 천만 원을 덤으로 받는 일이 많았다.
당시 이런 식으로 꽁지를 하면 대한민국 돈을 다 끌어 모을 것으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불과 2년여 만에 경비를 제하고도 200억 원 이상을 벌었다.”
그러나 그는 마카오에 원정도박을 하면서 하루에 수십억 원을 날리는가 하면 사북의 하우스에서 바둑이 게임을 하면서 불과 몇 개월 만에 강원랜드 꽁지로 번 200억 원을 몽땅 탕진하고 말았다.
그는 원정도박 때문에 경찰에 몇 차례 구속됐지만 대부분 곧장 석방되는 재주를 보였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는 그에게 ‘불사조’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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