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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가설정당론'에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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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가설정당론'에 답한다

[기고] "연대는 양보로만 되지 않는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는 야권연대 관련 주장 가운데 최근 가장 주목을 받은 것 중 하나가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의 '가설정당' 주장이다. 야권단일정당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만 살리는 일시적 정당을 만들자는 것이 요지다. 특히 이런 주장을 진보정당 정치인이 내놓았다는 점에서 '가설정당'론은 더 관심을 모았다. 야권의 단일정당이 이른바 '진보정치 그룹'에 더 불리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기 때문이다.

노 전 대표의 이런 제안을 놓고 김부겸 민주당 의원이 화답하는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 왔다. 3선의 중진 의원이 노 전 대표의 제안에 대해 "지금까지 논의 중 가장 획기적인 진전"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김부겸 의원은 대선과는 선거의 주체도, 이해관계도 다른 총선에서 어떻게 가설정당이 운영될 수 있는지 노 대표가 아직 밝히지 않았던 '총선 전략'을 함께 내놓았다. <편집자>

가설정당론은 진일보

최근 '연합정치'와 관련하여 4당의 대표들이 모여 원칙과 방법을 놓고 이야기를 나눈 자리가 두 번 있었습니다. 시민정치운동단체와 '백만민란' 덕분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빅텐트론'이나 '先진보통합 後민주연합론' 이외에 방법론에 해당하는 두 개의 논의가 추가되었습니다. '오절판 동거론'과 '가설정당론'입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진보신당의 노회찬 전 대표가 주장한 '가설정당'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논의 중 가장 획기적인 진전입니다. 가설정당이 성사되면 한나라당 후보와 1:1 선거 구도를 만들 장치가 생긴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가설정당의 핵심은 공동으로 경선을 치르자는 데 있습니다. 공동으로 경선을 치르게 되면 대통령 후보 경선은 흥미진진해질 것 입니다. 마치 지난 6.2 지방선거에서의 경기도지사 경선과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도 당원 수는 국민참여당이 훨씬 적었지만 유시민 후보가 이겼습니다. 따라서 당원 수가 적은 여타 정당의 후보가 당원이 많은 민주당 후보를 못 이기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총선 경선은 다릅니다. 판이 작기 때문에 동원력이 강한 후보가 유력해집니다. 동원력은 기본적으로 당원 수에 달려있고 아무래도 당원 수가 적은 여타 정당 후보는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컨대 아무리 가설정당을 만들더라도 민주당 후보가 유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타 정당들의 입장에선 가설정당에 대해 근본적 회의가 없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가설정당론은 좀 더 깊이 고민해 봐야 합니다. 안 그러면 가설정당이 되더라도 또 민주당 양보론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양보론 가지고는 연합이 성사되기 어렵습니다.

지금 당내에서 '순천 무공천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른바 야권연합을 위한 민주당의 '통 큰 양보심'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문제는 양보를 받은 민주노동당이 당선자까지 내야 양보의 의미가 실현될 텐데,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지금 예비후보들을 무소속으로 못 나가게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자칫 민주당 출신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다면 민주당은 결과적으로 위선자가 되고, 민주노동당은 뒤통수 맞는 꼴이 되게 생겼습니다.

따라서 무소속으로 못 나오게 하려면 현행 선거법상 공동 경선을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타 정당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가설 정당이 먼저 되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당당한 경쟁

그런데 여기까지도 진전임엔 틀림없습니다만 가설정당만 만든다고 문제가 다 해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대선은 몰라도 총선 경선은 여타정당 후보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지 않으면 애초에 이길 방법이 없는 게임입니다. 안 그러면 여타 정당더러 일방적 희생만 감수하라는 얘기가 됩니다. 따라서 어떤 인센티브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인센티브를 부여하면 공정하겠습니까? 대선에선 공동정부 구성에 따른 조각권의 배분이란 게 가능하지만 총선에선 그런 게 없습니다. 총선에선 비례대표 의석을 각 당에 배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겨우 54석 갖고는 부족합니다. 득표의 몇 %를 가산해주는 식으로는 가능할까요? 그 역시 안 될 겁니다. 몇 %가 정답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따라서 누가 누구에게 주는 인센티브가 아니라 당당하게 경쟁하는 방법으로 가는 게 낫습니다.

단일정당에서 당권 경쟁과 배분

▲ 김부겸 민주당 의원. ⓒ프레시안
제가 생각하는 경쟁의 방법은 이렇습니다. 총선 전 가설정당을 만들면 창당대회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같이 해서 당권을 새로 구성하자는 겁니다. 전당원투표도 좋고 국민 참여 경선도 좋으니, 현재의 각 정당별로 경쟁을 해서 나오는 득표율에 따라 공천권을 포함한 당권을 가지면 됩니다. 문제는 획득한 공천권을 어느 정당이 어느 지역구에 대해 행사하느냐 입니다. 각 당이 우세 지역구를 서로 차지하려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대단히 기술적이고 민감한 만큼 단일정당이 되고난 후 권한이 있는 단위에서 논의될 문제입니다. 그러나 어찌 하건 자기 당의 득표율만큼 의석으로 전환되도록 해주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여타 정당은 가설정당으로는 불확실한 의석 확보가 확실해지는 이점이 있고 민주당 입장에서 더 이상 양보론에 시달릴 필요가 없어집니다. 나아가 현재의 정당 구도는 물론 당내 세력 재편도 가능합니다. 先진보통합의 경우 외에도 예컨대 민주당내 진보그룹이 진보정당과 결합할 공산이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4개의 정당이 들어왔지만 다시 2~3개 정도의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가설정당보다 단일정당을 하는 진짜 묘미입니다.

단일정당이 되어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얻게 된다면 그 힘으로 아예 선거법 개정을 해야 합니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지역구가 사실상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정당은 각자 명부를 작성하고, 선거 후에 당선권 안에서 나누기만 하면 해결됩니다. 브라질의 PT당이 바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단일정당은 진보정당이 원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실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감동이 있는 연합정치

저는 이런 큰 틀을 세워가면서 4.27 재보선 공천문제도 풀었으면 합니다. 예컨대 '민주당이 먼저 재보선에서 깨끗하게 내주면 여타 정당들이 함께 합치겠다는 의사가 확인되었다. 그러니 이번엔 우리가 통 크게 행동하자'는 정도 됐으면, 예비후보들의 무소속 출마를 만류할 국민적 명분까지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래야 양보하고 연합한 보람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그런 전망도 없이 국민참여당은 수시로 민주당을 때리고, 진보정당은 진보정당대로 양보론과 반성론을 번갈아 들이미는데 어떻게 민주당이 마음으로부터 흔쾌하겠습니까? 마치 무슨 여타 정당은 작지만 옳은 당이고, 민주당은 크지만 잘못된 당이기나 한 듯이 매도해대지 마십시오. 대사를 그르칠까 두렵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대선과 총선은 다릅니다. 선거의 주체가 다르고 이해관계도 다릅니다. 지금 거의 매일 선거연합 토론회가 열립니다. 그런데 거기엔 주로 대선 주자급들이 나가서 말합니다. 민주당 평의원이나 평당원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내 분위기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지금 민주당 의원들은 그 어려웠던 18대 총선에서도 살아 돌아왔습니다. 이들이 연합이 안 된다고 해서 불안하겠습니까? 아니면 여타 정당과 같이 경선 한다고 해서 불안해 할 것 같습니까? 그게 불안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어떤 대원칙도 없이, 밑도 끝도 없는 기득권론·반성론·양보론만 난무하고 있으니 그래 가지곤 될 일도 안 될 것 같기에 불안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참고 있는 건 오로지 정권교체가 간절하고, 돌아가신 두 분 대통령의 유업이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는 책무감 때문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지나치게 정치공학적인 접근으로 선거연합에 임하는 것을 국민들은 그다지 감동스러워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정당 차원에서 국민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단과 행동 정도는 되어야 한국정치를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이 나오는 법입니다. 나무보다 숲을 보는 혜안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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